동양고전 잠언 500선
범립본.홍자성.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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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고전잠언500선>은 역자 신동준 씨가 동양고전잠언 중 손에 꼽히는 3대 잠언집으로 명심보감(明心寶鑑), 채근담(菜根談), 유몽영(幽夢影)을 6개의 학습테마로 구분한 범주 안에서 각 테마마다 이들 3책에서 선별, 구성하여 수록한 책이다.
  이들 3책은 모두 유가와 불가 및 도가의 사상을 하나로 녹인 유불도 삼교합일이 난세의 타개방안으로서의 관점으로 제시된다.
  6개의 학습테마는 권학(勸學),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평(治平), 자연(自然), 출세(出世)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잠언의 뜻에 대해 사전에 찾아보게 됐는데, 이를 통해 箴言이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심신에 품고 있을 말들이라는 생각을 세우게 되었다. 이 책이 여러 모로 내용이 우리 말의 구조에 알맞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좋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잠언집을 읽으며 서문에서 밝혔듯 이 3책이 어떤 위상이 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특히 마음이 가지런해지고(정심) 깨달음을 얻고 싶은 바람도 생겼다.
 
  한편 이 잠언집에 수록된 명심보감, 채근담, 유몽영이 동양사상의 큰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을 합일하는 면도 있어 책을 대하는 마음을 갖추는데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나에겐 이 책의 편제상 권학편이 크게 다가왔는데, 내가 요즘 대하는 공부에 대한 자세에서 비롯해 연유한 바가 크다.  학구에 대한 자세가 한층 공고해지는가 하면서도 살아있는 공부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던 게 책에서 얻은 소득이다.
 
  저자의 말대로 고전 <동양고전잠언500선>의 진가는 21세기 현재의 스마트 혁명의 시대에도 적재적소로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잡고, 추동하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수불석권에 어울리는 면모를 두루 갖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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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
나더쉬 피테르 지음, 진경애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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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미노타우로스>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이 나더쉬 피테르가 쓴 소설에서 표현하는 것이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라는 것이었다. 나의 지식의 부재 내지는 부족에서 온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작품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감성과 논리는 무척이나 새로운 것이었다. 속된 말로 그의 글을 읽으며 이어질 이야기를 내다볼 여지가 없이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 속 환경 속에서 그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는 직접 겪고 이러한 성숙과정을 필히 반성해야지만 스토리에 녹여낼 수 있어 보이는 내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기 때문이고, 이후 작가로서 일정 필력을 쌓으면서 써낸 작품에서는 작품의 내적요소보다 창조적 작가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필법으로 작품을 써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의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 시절의 성장환경이 그의 초기 작품에서 작가로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쓴 작품까지 반영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이러한 요인도 그의 선 굵은 개성적 필체가 헝가리 문학에서 입지를 굳히는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나더쉬 피테르자신이 살아가는 동시대를 작품 속에서 자신이 창조한 개성적 환경 속에, 보편적인 정서가 아닌 자신이 느끼는 삶의 역동성, 시대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정서를 투영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학적 정체성을 쌓아올렸음을 느낀다. 조국 헝가리의 면면, 불투명한 미래, 음울한 시대분위기 등이 수면 위에서 부상하는 듯, 잠기는 듯 표현되려 함으로써 그의 문학은 좀 더 자기 고유의 색채를 띠기 시작하고 동시에 완숙해 지는 과정을 거치며 그가 현대의 대표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작가의 신선한 실험적 글쓰기 등으로 새로운 감성과 논리로 다가오는 그의 초중기 작품을 접할 수 있어 헝가리 문학과의 첫 만남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덜 소개가 되었던 동구권 문학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계기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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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차이나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KBS <슈퍼차이나>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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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힘13억의 인구의 힘이라는 말이 대신 말해준다. 마오쩌둥은 인다역량대(人多力量大)라고 하며 사람이 많으면 국가역량이 극대화된다고 보았고, 이는 중국의 노동력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경제성장을 이끌어내고자 한 마오쩌둥의 기획에 의해 실현되었다.
  세계 각국은 값싸게 중국인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중국의 노동자는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소비자로 변모했다. 이 소비자로서의 노동자는 13억 인구의 힘과 13억 명의 내수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의 단초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성장에 있어 중요한 관건은 거대 인구의 일자리 확보와 고용이 유지되는가 였는데, 앞서 말했듯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상품을 판다는 전략을 내 거는 수출무역대국을 지향한 것은 신의 한 수인 것이었다.


  ‘슈퍼차이나’는 방송 이후, 일각에서 중국의 밝은 부분과 중국의 낙관적 미래만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는 ‘슈퍼차이나’에 자문으로 참여한 외국 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에서 비판을 상쇄할만한 여지를 찾아볼 수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에서 고작 세계 3위의 콩 수출국으로 전락한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은 중국이 해외 트렌드에 기민한 태도를 보이며 자국의 산업지형도를 바꾸는 발빠른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데 그 예가 세계의 차밭이었던 윈난성이 커피 재배지로 변한 것이다. 현재로선 현지 지역민의 생활형편을 보다 나아지게 한 점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13억 인구의 힘을 다룬 챕터를 지나 차이나머니를 다룬 챕터를 보면 중국의 경제파워가 여실히 드러난다. 차이나머니의 근원은 중국인의 저축에 있다. 중국에서는 저축률이 50%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저축률이 상당히 높은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정부에서는 국내 투자를 제한하고 규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국영기업은 중국인 전체의 예금액이라는 넉넉히 장착된 머니 실탄으로 자본조달이 용이하다.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중국정부 산하 기업이 이 실탄으로 돈을 벌든, 잃든 지는 큰 문제가 될 것이고, 그리고 만약 번다고 하더라도 인민들에게 반대급부로 그 이익의 과실을 제대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인민의 원성을 샀을 때엔 중국의 뇌관인 부의 양극화 등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쯤에서 개인적 견해는 각설하고... 차이나머니의 한 사례로 자원을 두고서 이미 전 세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 세계 속에서 영동적으로, 그리고 활발하게 대처하며 국민으로서 전력투구를 다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팍스시니카(Pax sinica)로 표현되는 중국 중심의, 중국이 세계패권국가로 올라서는 미래는 그 과정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주동작위(主動作爲)’ 기조 미·중간 대결구도와 더불어 중국 주변국들의 대(對) 중국 관계에 큰 변화와 영향을 줄 것으로도 본다.


  중국의 다양한 기후와 지형·지질은 그것에서 비롯한 천연자원, 생물자원 등의 다양성을 낳으면서 중국을 실로 부강하게, 윤택하게 만든다. 책에서 언급하는

 한 나라의 산업 구조는 그 발전 단계에 따라, 또는 비교우위에 의해 몇 가지 분야에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북방 지역은 농업 생산, 동부 연해 지역은 제조업, 서부 지역은 에너지 산업, 남방 지역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기묘한 지형으로 인해 3차 산업인 관광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지역별로 다양한 산업이 고르게 발전한 것이다. 이로써 중국 대륙은 진정한 패권국가에 요구되는 자급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종합적인 산업 포트폴리오를 꾸린 셈이다.”

라는 대목은 퍽 공감이 갔다. 그리고 특히 ‘물류혁명으로 변화하는 대륙’, ‘교통혁명으로 젋어지는 중국의 경제권’이라는 텍스트는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일대’ 및 신실크로드 전략과 맞물려 동부 연안의 발전과 파급력을 서부로 향하게 하는 전략과 중국전역 균형개발, 전국의 도시화 전략 하에 낙후된 서부를 대개발하고, 도농간 격차를 해소하는 등의 정책 수립이 양날 검으로써 중국이 슈퍼차이나로서의 위상을 확산시킬 가능성을 두고 그 성패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 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끄는 대목이었다. 또 3,500조원에 달하는 지방정부의 부채는 이러한 중국 내부의 대변화 과정에 뇌관이 될 요소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교통인프라 구축으로 지역간 네트워크 형성을 추구한다는 점, 4횡4종의 ‘고속철도사업’을 추진하는 점은 중국의 무한한 가능성을 함축하는 모양새다.

 

  소프트파워 면에서는 전 세계로 확대일로에 있는 공자학원과 국영방송(엄밀히 말하면 당영黨營방송)인 CCTV의 확산을 보자 중국정부의 추진력에 놀랐고 한데 똘똘 뭉친 중국인의 자존감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최근 중국의 부상(浮上)과 함께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매우 잘 이해해서 활용하는 국가 중 하나가 중국이라는 점도 느꼈다. 국가 간에 직접적인 충돌에 이르지 않는 방편으로 인식하면서 간접적 영향력을 최대한 행사하고자 의도하고, 하드(hard, 딱딱)한 힘이 주는 정치의 거부감을 최소화해 자연스러운 설득의 힘(설득력)을 퍼뜨리고자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리더십 챕터의 도입부분을 읽으면 공감이 가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공존이 기묘하고”와 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물음에서였다. 나 개인적으론 이러한 ‘중국의 이원(二元)체계’가 중국이 보여주었던 최강대국으로서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근저에 있는데서 비롯된 저력이자 자존심, 결의의 태도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이원체계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진 않을진대, 다만 중국이 다시금 최강대국으로의 지위를 탈환하기 전까지 큰 고난은 있을지언정 실패하진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한편 이 책에서는 이 이원체계의 핵심동력이자 심장부로 일컫는 대상이 중국 공산당이고 이러한 공산당의 프레임을 중심에 두고 궁금증과 논의를 풀어간다. <슈퍼차이나>는 공산당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진화한다고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이를 생생히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가 2001년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는 ‘삼개대표론’이다. 그리고 또 ‘집체학습’으로 공산당 실세 50여 명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공부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산당의 밝은 면 외에 어두운 면도 공존하고 있다. 당관료의 부정부패나 수많은 인민의 희생을 딛고 얻은 경제성장의 측면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목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중국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계층 간의 불평등, 도시와 농촌 간의 불평등, 무호적자(헤이하이즈) 등 다각도로 산재해 있는 불평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어느 사회이든 다층적인 불균형을 그대로 안고서는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슈퍼차이나>를 통해 중국의 현재를 바로 알고, 감히 중국의 미래도 그려보는 시간을 갖게 될 수 있었다.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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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꿈결 클래식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민수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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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직도 소외되고 고독해서 현실과 괴리된, 현대인의 아픈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사회에서 고립되고 상처받은 현대인으로서의 ‘나’가 현대인의 전형적 인물(자의식과 연계해서, 특히 심리적 측면에서 진단해 봤을 때..)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면서.... 따라서 그러한 ‘나도 일종의 현대인이다’라는 인식의 전제하에 ‘나’는 정신적, 심리적으로 나에 대한 일련의 구속, 소외, 파편화된 사회적 자아(사회적 위치에서 바라본 내 ‘자아’), 물질에 경도된 ‘나’, 등을 스스로 진단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처방은 여전히 범람하는 현대를 상징하는 군중속의 고독 속에서 여태껏 요원하기만 했다. 이런 지경에서 이 책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게 됐다. 마음 속 기대에 부응한다면 변신은 ‘환상적인, 내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그런 나의 욕구를 충족하는 이상적인 나가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변신하게 되는 대상은 ‘갑충(甲蟲, 딱딱한 등을 가진 벌레)’ 이었다. 나는 흥미를 잃고 무덤덤하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 이상 읽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고, 의식적으로 책을 다시 손에 쥐고 읽어나갔다. 역시나 내용은 처음의 당혹감에 이어 전체 3장 내내 내가 가진 환상의 이미지를 쫓는 비현실성적 사고와 현실적 욕망으로 내재되어 더 발전한 모습의 변신으로라는 무리한 기대를 한 바 환상적 존재는 못되더라도 기적적으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상상을 하다 ‘갑충’이 벌레로써 본연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읽는 것으로 종내 결말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의 별도로 구성한 작품해설을 보며 흔히 주변 사람들이 <변신>을 읽는 이유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카프카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주석들을 보면 그를 ‘실존주의문학의 선구자’라고하며 이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카프카문학에 대한 휘황한 수사나 표현도 보면, 반면 그를 단편적으로 인식하긴 쉽지만 그의 작품 속 내용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의 문학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현대인의 심리적, 병리적, 문제를 인식, 진단하는 ‘카프카의 정신’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보고 나를 되돌아보자고 말이다. 이것은 일견 귀납적 추론이 말하는 오류에서 여전히 벗어나진 못하지만, 무식하고 단순한 역발상의 발로였고 그것의 심화였기로서 썩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뭔가 풀려가는 듯 했다.

 현재의 ‘나’는 병리적(병에 걸린 상태) 상태이다.”라고 단언하기 시작해 “어제와 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또 “이 소설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아니 감정조차 없다라는 것은 카프카가 말하는 문학의 소명으로서 요구한 인간을 깨우는 고통, 자극제,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각성제로의 역할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라고까지 생각을 하면서...

 

 이 지나친 기대는 ‘책을 읽고 있다’라는 의식작용 中 임에도 무의식이 침투당해서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말미를 보면 카프카 사후(카프카는 40세에 요절했다) 출판한 초판의 표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이었을 이미지였다.

 


  현 시점에서 나는 이 소설의 진가를 모르지만 당시엔 갑충으로 변하는 현신(現身)의 변화가 당대 프라하 지식인들에게는 커다란 인상을 주었을 것이었음을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나’가 생각하는 이러한 스토리(갑충으로 변한 주인공이 쓸쓸히 죽는 것)에서 느끼는 무덤덤함은 병리적 징후이므로 카프카가 말했던 바 문학적 비수(긍정적인 충격을 주는 비유로 이해해 주시기 바람)인 <변신>이라는 작품을 읽음으로써 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 깊은 곳에서 인정하기 위해 모종의 생각(사유라면 더 좋겠지만...)을 이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변신>은 주인공(곧 갑충)의 자의식의 변화(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다가 점차 가족  - 억압이 시작되는 가장 원시적인 제도인 가족...! - 에게서 마저 벌레로 취급되면서... )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자의식이 받은 충격이 현신(現身)의 자살(식음전폐)을 촉발하게 되었다.


  한편 작품과 작가는 따로 떼서 설명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작가의 생애가 문학작품에 투영되기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카프카의 <변신>을 해부하면  주인공이 갑충으로 변하는 것의 메타포(은유)적 의미는 현실에서의 해방, 치열한 삶에서의 면제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이러한 해석을 도출하기란 나 개인적으로는 문학평론가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력이나마 자신에게 유익한 작품의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이므로,

 ​역자 박민수 교수가

 

  “우리의 모든 논의와 성찰은 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라고 언급했듯 경우에 따라서 작품해석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도를 해본다면 현실의 부조리, 부당함에 따른 자기상실을 토로하기에 앞서 굳건한 자아를 형성키 위해 부단히 노력을 경주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한다. 덧붙여 주체적인 의식형성을 위한 자기만족감을 충족시키려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까지 얘기를 종합해보면 어찌됐든 현실에서 개인의 이상에 몰두한 기대는 하지 말고, 자기실존의식을 제고함으로써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이 주는 무게와 문학사적 의의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 때로는 각성하면서 이 효익을 극대화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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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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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차일드44>는 1932~33년의 수백만의 아사餓死자를 낳은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해내며 묘한 흥분감과 긴장을 유발하며 시작한다. 나는 <차일드44>를 읽으며 소설의 구도나 캐릭터에 대해 개별적 특성에서 스릴러作적 존재감을 찾으려 하기보다 이 소설이 불러온 반향 - 영미권에서 과거 적대시했던 대상국가의 사회체제와 그 내부모순을 들추어 낸 - 을 생각하며 책의 전반부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 이러한 접근방식은 문학(소설)이 독자에게 우회해서 제시한 즉,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에 관심과 촉을 집중한 것 이었다 - 읽는 내내 사회전체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체제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 경직된 사회분위기라기 보단 체제유지를 위한 조직이 구조적 모순에 빠진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사회근간을 유지해야할 국가의 공식 비밀조직이 아이러니하게 사회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순과 그에 기인한 폐해(혁명정치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공포정치와 지도자 우상화, 지위에 따라 형식적으론 평등사회지만 실질은 계급사회)가 조성한 공포와 암묵하는 분위기를 - 빤하게 드러내고, 암시하는 대목에서 많은 인민들의 억눌림, 즉 압제, 강압적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이 소설에서 부분 부분, 대목 대목마다 작가가 은연중에 전하는 - 정확히 말하면 어떤 감정조차 섞이지 않은 관찰자로서의 객관적 시각에서 대상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지만 - 1950년대 시기 소비에트연방의 국가정의와 국가를 원활이 운영키 위한 당위적 목적을 뒷받침하는 국가이성의 무결점을 완수하라는 소비에트연방의 카르텔을 말하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체제의 무결함의 허점을 역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스토리 전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차일드44>에 대한 정보를 여러 경로로 들은 연후에 책을 읽게 됐지만, 구체적으로 내용을 보면서 느낀 것은, 경우에 따라 생사여탈권을 진 국가체제에게서 눈 밖에 난 주인공이 대의에 의거해 악전고투를 감내하며, 다시 국가체제에 의해 회생하는 과정 속에서 인물에 대한 내밀한 심리묘사와 인물 간 갈등을 첨예하게 표현해 낸 것에 감정이 이입되었다는 것이다. 워낙에 작품 속에 드러난 '사회체제'를 향한 문제의식과,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이 겪는 다양한 사건들로 인한 감정의 극적 변화를 현실적이게 잘 표현하고 있어 실제의 사건이라는 느낌을 들게 했는데, 역시 상상과 실화에 기반했다는 -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 것을 알고 난 후 작품 속 여러 극적인 구성을 위한 장치들이 잘 작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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