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집
송영화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수필집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다

 

1. 이 책으로 극복한 수필집 트라우마

 

'내가 어느새 수필 읽는 재미에 빠졌나 보다.'

이 책을 스스럼 없이 들고 있는 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냈노라며 보내오는 수필집들, 이게 종이의 낭비 아닌가? 애꿎게 나무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깜냥이 못되는 수필집이 시중에 차고 넘치는데, 그래서 내가 그런 책을 기피하는 습관이 저절로 들었었는데, 이 책은 예외임에 틀림없다.

 

그런 책들은 보내준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읽고나면 남는 것은 씁쓸한 감정의 무더기뿐이다.이거 자기 자랑 아닌가? 이제 먹고 살만하다고, 여고 시절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수필인척 하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빠지지 않는 것이 다른 동창들은 다 속물로 늙어가는데 자기만은 교양있게 늙어가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끝내면, 이제 남편 출세했다는 이야기로 방향을 옮기며 아들 자랑에 며느리까지 더하며, 더하여 자기는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국화빵들을 열심히 찍어낸다. 또 추천사를 보면 어떤가? 문화교실의 지도교사쯤으로 보이는 수필가가 이 책이야말로 수필의 정수를 보여준다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책들을 두권쯤 읽고나면, 그것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내 머리에 남게 된다. 그래서 다른 수필집을 대하면 이 책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하는 자라보고 놀란 토끼모양이 되는 것일까? 미사여구만 잔뜩 모아다 짜깁기 하는 것이 수필인줄 아는 유한마담의 책이 아닐까, 하며 지레 겁을 먹게 하는 그런 트라우마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수필집이란 저만치 밀어 놓았다가, 목차를 훑어본 후 그 중에 몇 개 읽어보고는 팽개치는 그러한 장르의 문학이었다. 해서 수필이라면 손을 휘휘 내저을 정도가 되었는데, 어느 새인가 수필을 읽는 재미에 빠졌으니, 그것은 김서령의 <참외는 참 외롭다>를 읽고 난 후부터다. (http://blog.yes24.com/document/7792325)

그 책을 읽고나서 수필도 작가 나름이구나, 하며 수필집 트라우마에서 회복하는 기미가 보였는데, 이 책 <반집>,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그 트라우마가 말끔히 고쳐졌음을 알게 되었다.

 

2. 글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룬다.

 

일단 이 책의 글은 아름답다. 그냥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며 작자가 그려내고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경치를 완상하고 음미하듯,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생각과 상황들을 그저 따라가며 즐기면 된다. 그만큼 이 안에 들어있는 글들이 편안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더하여 글들이 잘 짜여 있다. 노련한 솜씨로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내는 솜씨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작자가 그려내는 글의 무늬는 굳이 덧붙여 설명하거나,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이루어짐(完成)이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3. 문장 공부하려거든 이 책을 읽어라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을 이루고 있는 문장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명문장이다. 그런 문장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문장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된다. 운율도 어느 사이에 문장 사이에 생겨난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이런 문장이다.

동생네 화장실 수도꼭지는 빛이 난다. 스텐 손잡이에 물방울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변기와 가지런히 걸린 수건까지, 볼 때마다 깨끗하다.”(86)

 

읽어보시라. 두 번 정도 읽으면 저절로 운율이 입에 따라오지 않는가?

이 문장의 형식을 패러디 해서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이 글들은 빛이 난다. 글 가운데 억지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글들과 가지런히 배치된 행간내용까지, 읽을 때마다 빛이 난다.”

 

그런 글들을 몇 편만 읽어가노라면 내가 서두에 수필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문장공부를 하게 되는 셈이다.

 

4. 엄마로서, 아니 부모로서 생각 좀 하고 살려면 이 책을 읽어라

 

이 저자의 생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글은 글쓴이의 인격과 생각을 보여준다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이 얼마나 올곧고 바른 길을 가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아들에게 보여주는 모습- 바둑을 하겠다고 나선 아들에게 대하는 태도 - 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부모가 무릇 어찌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모든 어머니가 그랬으면 좋을테지만, 그래도 이런 어머니가 있다는 자체가 이 사회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믓했다.

 

이런 사례는 굳이 여기에서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이 수필집의 1 , <몰래 나선 여행>에 포함된 10편의 글이 모두다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부모로서, 생각 좀 하려고 한다면 이정도 되어야 하고, 그러면 이런 글쯤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5. 기억 이야기 하나 - 기억을 꺼내는 법

 

저자는 기억을 꺼내는 법을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그가 어떻게 기억을 내어 우리에게 보여주는지, 이런 기억을 보자. 98쪽부터 시작되는 <돈쓰기>라는 제목의 글이다.

 

저자는 먼저, ‘이십여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돈 없다는 타령을 해 댔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학창시절에 같이 지내던 친구, 이제 이십 여년만에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창시절에 매점에 가면 언제나 빵 값을 내지 않고 그냥 저자가 내는 것이 당연한 양 먹던 친구다. 그 친구를 이십여년 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 ~~ 의 문장이 바로 기억을 꺼내는 방법이다. 그 말 한마디로 기억은 자연스럽게 할머니로 옮아간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저자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내놓는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라는 말에 기대어, 나도 “(내가 아는) 누구도 그랬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내 이야기도 하나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6. 기억 이야기 둘 - 기억을 닦아 윤내기

 

이번 역시 기억에 관한 글을 읽어보자. 86쪽의 <기억닦기>. 

잔잔하고 애잔하다. 이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 기억도 한번 꺼집어 내어 닦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애잔한 가족사를 꺼집어 내어 현재의 생활을 관조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억을 닦는 것이다.

 

아까 문장 공부가 저절로 된다며 예를 들었던 부분, “동생네 화장실 수도꼭지는 빛이 난다. 스텐 손잡이에 물방울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변기와 가지런히 걸린 수건까지, 볼 때마다 깨끗하다.”(86)로 시작되는 한편의 애잔한 드라마같은 수필이다.

 

읽고나면 그 기억이 얼마나 깨끗하고 예쁘게 보이는지, 정말 기억을 잘도 닦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 글중에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저자의 숨겨놓은 위트 한 조각도 음미할 만하다.

동생이 내 말을 너무 새겨들었나 싶어 웃음이 난다. 지나쳐도 탈이라고, 이젠 동생이 화장실이 깨끗하다 못해 수도꼭지 손잡이에 자국을 남길까봐 조심스러울 지경이다.”(87)

 

어린 시절, ‘꿈에서조차 어수선한 집에서 살았기에 걸레를 빨아 수없이 닦아도 늘 쌓이는 먼지들로 닦으나 안닦으나 그게 그거였던 집에서 살았던 기억들, 그런데 고모가 집에 다니러 올때에는 그런다고 자매는 혼이 난다. 애쓴 보람이, 수고한 보람이 없이 그게 그거니까, 혼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안타까운 시절을 보내고, 이제 각자 살림을 하게 된 자매는 닦기에 열심이다. 그런 닦음에 대한 기억을 저자는 잘 닦아 내놓고 있다.

 

7. “사족이다!!!!” - 이 말이 사족이기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흠이라면? 바로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송영화론>이다. 문학평론가 김종환이 쓴 일종의 서평인데, 이게 문제다. 차라리 이것이 없었으면 그냥 아름다운 글, 어머니이며 수필가인 송영화의 수필을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읽었다 싶을 것인데, 이 평론이 붙는 바람에 입맛을 버려버렸다. 왜 꼭 이런 것을 덧붙인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사족이 아닌가? 왜 굳이 수필을 읽으면서 작가 자신의 성격연구’(273)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못한 것이 수필의 문학세계가 심층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인가? 꼭 문학이 개인 구원(274)에 역할을 해야 한단 말인가? 더해서 저자의 글에 꼭 사회의식’(284)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인가?

 

해서, 이 책이 훌륭하게 수필집 트라우마를 해소시키는 역할을 해 주었는데 이 평론으로 또다시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이번에는 수필집 끝부분 평론 트라우마’! 일종의 사족 트라우마. 다른 분들에게는? 제발, 이 덧붙임 말이 사족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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