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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스트 -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 ㅣ EBS CLASS ⓔ
유영만 지음 / EBS BOOKS / 2021년 4월
평점 :
철학을 체감과 체득으로 알게 해준 『아이러니스트』
이 책은?
이 책 『아이러니스트』는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을 알려주는 철학책이다.
저자는 유영만, <지식생태학자·한양대 교수. 낯선 곳에서 색다른 깨우침을 얻으며, 삶으로 앎을 증명하며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고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 지식생태학자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조립한 지식보다 격전의 현장에서 몸으로 깨달은 체험적 지혜를 사랑한다.>
저자의 책 『공부는 망치다』를 읽었고, EBS를 통해 그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 제목인 ‘아이러니스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기존의 문법을 파기하고 자기만의 언어 사용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만들어가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14쪽)
그러니, 저자가 이 개념을 책의 제목으로 한 이유는, ‘기존의 문법을 파기하고 자기만의 언어 사용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만들어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 철학을 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철학은 곧 체감이요, 체득이다.
몸으로 살아내는, 겪어내는 철학이 철학이다. 철학은 글이나 말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다른 철학자의 생각과 삶을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먼저 12명의 철학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다. 그들을 알고, 그 다음에 나의 생각과 나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만남 ;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두 번째 만남 ; 존 듀이의 예술적 경험론
세 번째 만남 ; 프리드리히 니체의 전복과 파괴의 철학
네 번째 만남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다섯 번째 만남 ;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관
여섯 번째 만남 ; 질 들뢰즈의 우발적 마주침
일곱 번째 만남 ;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방랑하는 예술가론
여덟 번째 만남 ; 미셸 푸코의 자기 배려
아홉 번째 만남 ; 리처드 로티의 아이러니스트
열 번째 만남 ; 자크 데리다의 사이 전문가(호모 디페랑스)
열한 번째 만남 ; 조지 레이코프의 체험적 은유법
열두 번째 만남 ;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아 참, 또 있다. 이 책의 저자 유영만 교수.
그 역시 철학자다. 자신의 말로, 철학을 말하며, ‘낯선 곳에서 색다른 깨우침을 얻으며, 삶으로 앎을 증명하며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고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 지식생태학자다.
여기 12, 13명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철학을 하게 된다.
일단 텍스트를 통해 철학을 배운다. 그들의 철학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 바로 옆에 있는, 보이는 것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음에, 철학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다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과속방지턱을 지나며 -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브뤼노 라투르의 철학이다.
모든 행위자는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행위자를 만날 때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과속방지턱을 예로 든다.
운전을 하다보면 곳곳에 과속방지턱을 만난다. 이때 나도 그렇고 모든 운전자는 속도를 줄여 그 시멘트 덩이를 지나간다. 그러니 그 방지턱은 사람에게 차 속도를 줄이라고 경고를 하는 것이다.
비인간인 과속방지턱이 교통법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경찰의 역할을 하고, 교통 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도덕 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속방지턱이라는 비인간이 인간 운전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라투르가 말하는 인간만이 행위자가 아니라, 비인간도 행위자, 특히 비인간 행위자가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이다. (359쪽)
하루에도 몇 번씩 과속방지턱을 넘어다니는 사람들, 이런 철학을 몸으로 하는 것이다.
바벨 들고 철학하기 .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철학이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자기 생성의 역동적 실체다. 끊임없는 생성활동을 하면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세포 활동자체를 말한다. (205쪽)
자기 생성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원이 바로 구조접속이다.
저자는 구조접속을 이렇게 설명한다. 바벨을 드는 것 운동에서 예를 든다.
무거운 바벨을 들고 벤치 프레스를 하면 가슴 근육이 생기고, 데드 리프트를 하면 어깨 근육과 기립근, 그리고 허리와 허벅지 근육의 구조가 변한다.
이렇게 운동으로 신체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게 바로 구조변화다.
운동하는 동안 내 몸의 구조가 운동기구에 접속하면서 변하는 것인데, 곧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생명체의 구조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
자기생성은 말 그대로 자기 혼자 자기를 생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환경과 만나서 주어진 환경이 요구하는 구조대로 나의 사고나 신체를 바꾸면서 제2의 나로 거듭나는 과정이고, 그 생성과정에 에너지를 지원해주는 것이 구조접속이다. (210쪽)
우리는 이런 철학이 들어있는 바벨을 오늘도 들어가며 운동을 하는 것이다.
헌책을 통해 철학하기
역시 라투르의 철학이다.
인간 행위자가 책이라는 행위자를 만났을 때 생기는 특별한 관계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철학을 체득하게 된다.
특별한 존재와 평범한 존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존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관계다.
남에게는 평범한 존재가 내게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존재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 때문이다. (366쪽)
저자는 이런 사례로, 헌책을 든다.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헌책)가 만났을 때 그 둘 사이의 관계가 그 책을 이전과 다른, 색다른 의미로 완전히 바꾼다.
그 예를 저자는 이미 이 책 97쪽에서 니체의 경우를 언급한 바가 있다.
니체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고 철학에 깊게 매료됩니다. (97쪽)
그러니 혹시 헌책, 그게 무엇일지라도, 의미있는 책을 만난 적이 있다면, 벌써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 맞으며 철학하기
저자는 은유를 말하다가, 심오한 은유 하나를 소개한다.
율리 비스가 말한 백신과 관련한 은유다. 그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나오는 말이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341쪽)
저자의 설명 들어보자.
내가 주사를 맞으면 내 몸이 건강해진다. 개인적으로 통장에 돈을 저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이익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내 몸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의존적 관계망으로 연결된 더 큰 우주의 일부다.
우주라고 하니, 감이 오지 않을지 모르니, 그저 사회,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이라고만 해두자.
백신은 개인 차원의 몸을 돌보는 노력을 넘어 나와 연결된 수많은 관계와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건강을 책임지는 노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가 백신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는 개인의 건강을 위해 사적으로 계좌에 가입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서 신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19 백신 주사를 맞는 것, 그게 바로 철학적 행동이다.
다시, 이 책은?
지금까지 했던 철학이 책을 읽으며 책속으로 들어가, 머리 속에 쌓아두는 철학이었다면, 이번에는 책을 읽은 것은 같았지만, 책속으로 들어가 쌓아두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걸 몸으로 느껴보면서, 체감과 체득으로 소화하려고, 애쓴 철학이다.
실로, 이 책을 읽고나서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바벨, 아령을 들면서, 등등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 몸에 철학이 핏줄을 타고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건 기분탓인가?
오랜만에 철학 공부 제대로 했다.
좋은, 친절한 선생님 한 분 모시고 철학공부 진지하고 재미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