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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한국사 - 고대에서 현대까지 북쪽의 역사
여호규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평점 :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절반의 한국사』
이 책은?
이 책 『절반의 한국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북쪽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여호규, 박준형, 김종복, 박재우, 송용덕 저 외 5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책 내용을 목차를 통해 살펴보자.
01 북녘 산하, 대륙으로 열린 땅
02 북녘 최초의 나라, 고조선
03 동북아 중심 국가 고구려의 군사력과 외교력
04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 발해
05 개성의 호족, 고려를 건국하다
06 서경 천도 운동, 통념을 파괴하라
07 해동 천자의 나라 고려의 외교술
08 고려와 조선 시대 국경 이야기
09 조선을 건국한 북방 출신 이성계와 이지란
10 평안감사와 북쪽 최고의 도시 평양
11 개성과 개성상인
12 북쪽 지역이 겪은 왜란과 호란
13 오랑캐라고 불린 여진
14 1811년 홍경래 난, 평안도 차별에 반기를 들다
15 국경을 넘는 사람들
16 기독 세상이 된 평안도, 친미 엘리트를 배출하다
17 북방을 노래한 북쪽의 시인들
18 북쪽 정권을 세운 사람들
19 평안도에서 내려온 우익 세력
목차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목차만 읽어도 가슴이 아려오기 때문이다.
고조선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는 신라의 빛에 가려졌고, 발해 역시 사라진 역사로만 느껴진다. 이름 자체도 그야말로 죽은 역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그리고 발해. 그리고 평안도와 간도.
일제 강점기에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통한의 역사.
그런 역사가 이제 자칫하면 잊혀져 버릴 처지에 놓여있다.
자랑스러운 역사 고구려
고구려만 해도 그렇다.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고구려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장기간 동북아 중심 국가로 존속하였다.
그 비결은 군사력과 외교력에 있었다. (34쪽)
대내적으로, 귀족 세력들이 함께 멸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권력 다툼의 규칙을 정했다. (42쪽)
수나라가 중원 대륙을 통일하자. 다원적 국제 질서를 활용해 독자적인 천하를 건설했던 고구려는 수와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 (42쪽)
결국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귀족 세력의 내분이 격화되는 가운데 나당 연합군의 협공을 받아 668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고구려가 수와 당의 거듭된 침공을 물리쳤건만,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할 새로운 외교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46쪽)
고조선에 대한 이해
고조선은 단지 개천절에만 등장하는 나라 이름이다. 단군이 대체 누군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단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천신족(天神族)인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 곰을 숭상하는 곰족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호랑이족 중에서 웅녀(熊女)로 대표되는 곰족과 결합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고구려를 ‘맥’으로 쓰면서 ‘고마[熊, 곰]’라고 읽는데, 곰이 바로 맥족을 상징한다. 『삼국지』 ‘예’에는 ‘제호이위신(祭虎以爲神)’이라고 하여 예족에서 호신(虎神)을 숭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단군신화는 맥족과 예족 사이에서 맥족이 주축이 되어 고조선을 건국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예맥 사회에서 가장 먼저 정치적으로 성장한 것이 고조선이다. (26-27쪽)
이런 나라가 고조선이니, 단군도 실제 역사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또, 발해는?
발해는 유득공이 지은 책 이름 『발해고』로만 알고 있다.
‘해동성국’이라고 알려졌던 나라가, 그저 역사책 한 페이지로만 남아있다.
고구려를 계승하고자 했던 나라이기에 오히려 잊혀진 나라가 발해다.
신라와 발해가 소원하면서도 서로 경쟁한 이유는 신라가 나당 전쟁 이후 백제 유민은 물론이고 고구려 유민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삼한, 즉 삼국을 통일했다고 자부한 반면, 발해는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고구려 유민이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발해의 등장은 삼국을 통일했다는 신라의 자부심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60쪽)
고려와 조선이 중국에 사대(事大)를 한 이유?
흔히들 우리 선조들의 중국에 대한 외교를 비판하면서 사대주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당시 중국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서양에 대해서도 조공무역을 실시할 정도였으니, 우리 선조 들이 중국에 사대를 하면서 실리를 챙겼던 것은 오히려 지혜로운 처사라 할 수 있다.
고려가 천자, 황제를 칭하면서도 한족이나 한족이 아닌 세력이 세운 나라에 사대를 했던 것은 국제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고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바탕으로 한족이 세운 송을 서국(西國) 또는 남조(南朝), 여진이 세운 요를 북조(北朝)라고 하여 방위에 따라 부르기도 했지만, 송·요·금을 고려와 대등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93쪽)
지리지 - 국경 이야기, 함흥, 평양, 개성,
함흥은 이성계의 고향이다. 함흥차사라는 사자성어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함흥차사라는 말에서 이성계의 고향이라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또한 이성계의 무덤 릉 봉분에는 고향인 함흥에서 가져온 억새를 심었다 한다. (118쪽)
평양,
평양감사라는 말로 유명한 곳이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많은 고초를 겪은 땅이다
개성,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땅이다.
개성의 인물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개성은 유명인물들과도 관련이 있다.
서경덕, 전우치, 황진이, 한석봉 (한호) 등이 모두 개성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재미있는 일화들을 남기면서 민중 속에 그 이름을 깊게 각인시켰다
허균은 개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서경덕, 한호, 차식과 차천로 부자, 황진이를 꼽았다.
그런데 왜 개성의 인물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을까?
개성 지역의 장사꾼들이 상행위를 위해 여러 곳으로 이동했다. 전국을 기반으로 했던 개성 상인들이 자기 지역에서 배출된 서경덕이나 황진이, 전우치, 한호의 이야기를 곳곳에 전파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143쪽)
다시, 이 책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 아직 분단국가라는 오명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자유로 왕래하지 못하고 가보지 못하는 곳이 있다. 북쪽의 땅, 북한.
지리적으로 살펴보자면, 그곳은 우리 눈에 단지 지도에서만 보인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는?
그것 역시, 책으로만 알 수 있다. 가보지 못하니 최근 연구 자료에 업데이트된 내용을 알 수 없다.
단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중단된 역사만 알 수 있다.
그나마,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심도 이제 멀어져만 가는데, 다행하게도 관심을 갖자는 책이 나왔다. 제목도 처량한 『절반의 한국사』
책 제목 그대로 북쪽을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는 역사책이다.
그래도 이런 책으로나마, 나라 전체의 역사에서 북쪽이 차지했던 역사를 새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 하나가 된 한나라의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