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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생활철학 - 유쾌한 삶을 위한 '에티카' 해설서
황진규 지음 / 인간사랑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스피노자의 생활철학
이 책은?
이 책 『스피노자의 생활철학』은 <유쾌한 삶을 위한 ‘에티카’ 해설서>라는 부제 그대로 『에티카』를 해설해 놓은 책이다.
저자는 황진규, < 7년 동안 다닌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필실’로 들어가 ‘철학 오타쿠’가 되었다. 생활철학에 관한 글을 쓰고, 수업을 하며 삶으로 연결되는 철학의 ‘쓸모’를 발견해 내는 일을 한다. 철학과 밥벌이를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일단 이 책을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기 위한 입문서로 읽을 수 있다.
<유쾌한 삶을 위한 ‘에티카’ 해설서>라는 부제 그대로, 저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조목조목 인용하면서, 그 구절을 최대한 쉽게 해설해주고 있다.
앎과 삶, 우리는 일상적 삶에서 철학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에 빠져들게 된 하나의 문장, 바로 이거다.
우리네 일상적 ‘삶’이 어떠한가요? 먹고 사느라 정신없는 삶 아닌가요? 그 삶에 지쳐 그저 때우듯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맨얼굴입니다. (10쪽)
이런 말, 숱하게 들어왔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이 말을 읽었을 때 다르게 다가온 것은 그 말 앞에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움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셈이지요. ‘앎’으로 ‘삶’에 이르는 방법과 ‘삶’으로 ‘앎’에 이르는 방법. 바로 여기에 우리가 ‘앎’으로서의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삶’으로 ‘앎’에 도달하기 어려운 시대를 삽니다.(10쪽)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는 행위로, 살아가면서 ‘사는데 필요한 앎’을 결코 얻지 못한다.
왜냐? 살아가느라 바쁘고 또한 살아가는데 지쳐서, 그런 삶에서는 결코 앎다운 앎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앎의 단계를 거쳐 삶의 단계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필요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 이 간단하면서도 쉬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니, 비로소 철학이 무엇인지, 왜 철학이 필요한지를 알게 된 것이다. 해서 스피노자에 앞서 ‘신도림 스피노자’인 저자를 괄목상대, 이 책을 다시 잡고 구절 구절 묵상하는 자세로 읽게 된 것이다.
우리 앞의 타인, 그들의 인생과정은?
흔한 지식인들은 타인을 볼 때, 그 타인이 어떤 연결과 마주침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타인이 되었는지 보지 못한다.
이것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턱없이 부족한 지식인이 그리도 많은 이유다. 그들은 ‘지식’이 있을 뿐, ‘지성’은 없기 때문이다.(27쪽)
내 앞에 서있는 타인, 만약 그 사람이 노숙자라 가정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그 노숙자를 그냥 앞에 있는 노숙자로 본다. 그래서 기피해야 할 인물로 간주한다. 그러니 그 노숙자가 어떻게 해서 노숙을 하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리 되었는지, 아예 생각하지 않기에 그렇게 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로로 타인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다음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생산된 자연’만을 본다. 그 자연물들을 있게 한 ‘생산하는 자연’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26쪽)
의지박약, 그걸 벗어나려면?
의지라는 말이 있다. 의지가 있다. 의지가 투철하다, 또는 의지박약, 하는 식으로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런 의지가 과연 내 맘대로 되던가? 내가 마음먹는다고 없던 의지가 생겨나고, 펄펄 기운넘치며 의지를 활활 불태운 적이 있던가?
아니다. 왜 그럴까? 애초에 의지라는 것을 잘 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말 읽어보자, 묵상해 보자.
“강한 의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스피노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한다.
“의지는 자유원인이라고는 부를 수 없고, 단지 필연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43쪽)
이런 말 읽었다면, 그전 같으면 ‘이게 무슨 말이야? 말이야 막걸리야?’ 하고 넘어갔을 텐데. 저자의 도움을 받아 본다. 어떤 말일까?
필연적인 원인이란, 특정한 외부 원인으로 인해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즉 필연적인 원인은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필연적(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원인이다.
스피노자는 이 필연적 원인을 '의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의지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 진정한 의지가 무엇인지를 오해하게 만든 것이었다.
다시 저자가 제시한 예를 인용해본다.
저자는 스물 몇 살 때 100kg에서 70 kg까지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외부로부터 강제로 그를 의지박약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라 한다. 그때 저자에게 작용했던 외부적 원인은? 매혹적인 여인 때문이라는 것, 그 여인이 저자의 의지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역시 스피노자 역시 같은 결론인데,
의지는 자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즉,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이다. (47쪽)
따라서 강한 의지를 원한다면, 자신의 내면에서 세상의 타자들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자신의 의지를 불러일으킬 원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48쪽)
이 글에 나는 굵은 밑줄을 그었다. 지금껏 모르고 있던 철학적 진리다.
이게 바로 ‘앎’에서 ‘삶’에 이르는 방법이다.
우리는 스피노자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저자는 스피노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책 제목을 『스피노자의 생활 철학』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철학은 지식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하는데 필요하기에 ‘철학 하는 것’이다.
1장_ 더 나은 ‘나’를 위해
2장_ 더 편안한 ‘마음’을 위해
3장_ 더 성숙한 ‘관계’를 위해
4장_ 더 작은 ‘슬픔’을 위해
5장_ 더 큰 ‘기쁨’을 위해
6장_ 더 맑은 ‘지혜’를 위해
7장_ 더 깊은 ‘삶’을 위해
하나 하나 묵상하듯 읽어가면서 흠뻑 빠져드는 경험, 이게 바로 철학이다. 생활철학!
해서 이 책은 스피노자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자체를 위한 방편으로 읽을 수 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교재로 하여, 철학을 해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용도로 이 책을 읽었다. 생활 속에서 철학 하는 책.
마치 경전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듯이 한 구절, 한 구절을 새겨 읽으며, 새삼 철학의 바다로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