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맹가노니 - 이야기의 탄생
이송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나랏말싸미 맹가노니

 

이 책은 한마디로 "<나랏말싸미> 각본가 시나리오에 토 달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영화 <나라말싸미>를 쓴 시니리오 작가 이송원이 시나리오에 하나하나 토를 달아놓은 것이다.

몇 편의 시나리오 읽어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시나리오에 토를 달아놓은 것은 처음 접한다.

 

스토리텔링 실전 사례

    

 

이 책을 통하여 먼저 스토리텔링 이론과 실제를 공부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발언과 해당되는 시나리오를 동시에 접하니, 스토리텔링 실제 공부가 된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듯한 딜레마가 없으면 이야기의 긴장과 재미도 떨어진다. (38)

 

하나의 매듭이 매듭으로만 그치고 또다시 원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만담이다. 이야기 한 마디의 매듭이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그 힘으로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냥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폭이 확장되고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물길이 흘러야 긴장과 흥미가 유지된다. (91)

 

예측불허의 스토리 라인을 구축한답시고 꽁꽁 숨기기만 해서는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없다. (92)

 

어떤 경우엔 예상을 넘어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어떤 경우엔 예상에 못미치는 지점에서 멈추는 방식으로 관객과 밀당을 하는 것이다. 가끔은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긴장이 유지된다. (92)

 

아이러니와 딜레마가 크고 깊을수록 드라마는 더 힘차게 전진한다. (103)

 

한글 창제의 주역은 누구인가?

 

먼저 이런 진술 들어보자.

 

<많은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는 비밀리에 수행된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신하의 반대를 피하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한다. 어떤 이는 언어학의 천재인 세종이 혼자 만들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세종의 딸 정의공주가 변음토착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 모두 1443년의 마지막 날, 임금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실록 기사가 난데 없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문자 창제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158)

 

그래서 이러한 역사적 기록의 공백에 드라마를 짜는데 상상력이 작동하게 된다.

그래도 무한의 상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만 한다.

 

저자가 이 영화에서 상상력을 발휘, 불교의 신미가 한글 창제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토대로 줄거리를 끌고 간다. 그러면 그런 주장의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조선의 유생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불승들이 언문제작에 참여했다면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213)

 

한글 반포 이후 새 문자로 번역된 책의 대부분을 불경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231)

 

구결 (230)을 토대로 한글 만드는 작업을 한다.

구결이란, 한문(漢文)에 토()를 넣어 읽는 한국적 한문독법(漢文讀法) 내지는 그 읽은 내용까지를 통틀어서 이르는 말.

 

훈민정음에 깃든 동아시아 표음문자들의 자취를 확인할수록 창제과정에 참여한 불승들의 존재가 실감으로 다가온다. (247)

 

이러한 논리를 토대로 하여, 상상력을 발휘 역사 기록의 빈 공간을 채우려 하는 것, 이런 정도는 용인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시험 대비를 위한 역사 강의록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들이대는 역사기록의 엄정함이라니? 영화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이에 대해서, 이런 말 들어보자.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지만 그와 구별되는 하나의 가능한 세계. 남은 목숨과 바꿔서라도 쉬운 문자를 만들려는 분투 끝에 위대함의 반열로 진입하는 인간 이도(세종의 본명)의 험난한 여정을 우리는 그리고자 했다. 그 길의 동반자로 신미(信眉)라는 실존인물에 주목했으며, 세종과 맞서고 협력하고 격돌하는 영화적 캐릭터로 탈바꿈시켰다. 신미 캐릭터는 세종의 내면에 도사린 그림자를 분리하여 인격화한 또 다른 자아(alter ego)’. 세종의 마음속에서 벌어졌을 치열한 싸움을 외면화한 상대역으로 신미를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14431230일자 실록기사 이전의 역사공백을 개연성 있는 허구로 재구성한 작업의 요체다.>(10)

 

이런 부분, 의미 있게 들린다.

신미를 불교의 실제 인물로 보지 않고, 세종 안의 또 다른 생각으로 보면, 세종의 내부에서 한글 창제를 가지고 치열한 생각들이 오고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인문학적 사고가 아닌가?

 

이런 것, 새롭다.

 

산스크리토로,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데 쓰는 장작을 의미하는 단어가 걱정을 의미하는 단어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전자는 죽은 사람을, 후자는 살아있는 사람을 태운다. (225)

 

언문은 얕잡아 부르는 명칭인가?

그게 아니라는 여러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329)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저수지의 물은 구체적인 용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냥 물일뿐이다. (81)

 

분석심리학자 칼 융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 내면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인 그림자를 타인에게서 발견할 때 그를 증오하고 경멸한다. (168)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305)

因地而倒者 因地而起 (인지이도자 인지이기)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 되고 인연이 반복되면 운명이 된다. (337)

 

, 책들

 

남자들은 자꾸 가르치려 한다, 레베카 솔닛 (38)

멀고도 가까운

세종은 왜 불교 책을 읽었을까, 오윤희 (84)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지프 캠벨 (127)

문자와 국가가라타니 고진 (243)

후흑학(279)

군주론(280)

한비자

파랑새의 밤마루야마 겐지 (316)

문명의 불만프로이트 (397)

 

다시 이 책은?

 

책을 읽다가 , 이거 웬 떡이냐하면서 기대가 급상승, 흥분을 넘어 감격지수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별 기대 안했는데, 거의 횡재 수준의 책을 만났다는 얘기다. 이 책, 나랏말싸미 맹가노니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치열함이 필요한가?

스토리텔링의 세밀한 적용 방법들.

역사와 허구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조선 초기, 임금과 신하의 권력관계는 어떠했는가?

한글은 창제된 후, 어떻게 확산이 되었나?

다양한 책 소개는 덤이다.

 

그리고 영화는 무엇인가? 까지. 생각해 본 것들, 얻은 것들이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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