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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생 때 꼭 참가해보고 싶은 행사가 있었다.
해마다 7,8월이면 전국의 한총련 학생들이 모여 국토순례를 하는 ‘통일선봉대(이하 통선대)’ 행사이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선배들이 여름이 되면 통선대를 다녀 온 후, 무척 달라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국토를 순례하는 통선대 기간 동안,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학생운동과 자신에 대한 신념을 그토록 확고히 다지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 기간 동안에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활동과 경험들, 힘든 도보여행을 이겨낸 자신에 대한 믿음이 주는 성찰의 결과물이 아닐까? 목적이 무엇이었던 내 모든 것을 맡기는 여행이 주는 자아와 삶에 대한 성찰은 무척 값진 것이라 생각한다.
독일 최고의 코미디언인 하페 케르켈링은 바쁜 스케줄로 인해 찾아 온 건강악화로 인해 우연히 ‘야고보 순례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빠르게 연예계에 데뷔하여 쉼 없이 성공 가도를 달려 온 그는 청력약화와 담석 수술, 거기에 심근경색까지 겹쳐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기쁨의 야고보 길』이라는 책을 통해 ‘야고보 순례길’을 알게 되고, 무작정 자신의 찾아 떠나는 여행 ‘야고보 순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국경 마을인 생장 피드로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을 휘돌고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를 가로질러 산티아고에 이르는 야고보 순례길. 야고보가 복음 전파를 위해 걸었던 전도의 길로 중세 로마 교황청이 이 길을 걸으면 죄를 감해준다는 칙령을 발표하자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길로 떠올랐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1,800여 곳의 유적이 남겨지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길은 최근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 류가 생의 의미와 작가로서의 소명을 발견했다고 밝혀 더욱 유명해진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자신을 찾는 다는 이유로 걷기를 선택하는 이 길에서 하페 케르켈링은 전혀 순례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순례자들이 묶는 숙소에서 전혀 묶으려 하지 않고 근처의 호텔에 숙박하는가 하면, 다른 순례자들과도 전혀 어울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귀찮아한다. 또한 비가 오는 날은 걷기를 포기하고 지나가는 프랑스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가기도 한다. 이러한 그이기에 순례를 시작하면서 계속 자신에게 했던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엉터리 같은 순례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그것은 순례길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과 자연,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몇 년 전 유방암에 걸린 딸과 순례길에 올랐다가 급작스러운 딸의 병세 악화로 순례를 중단하고 14일 만에 딸을 하늘로 보낸 후, 다시 순례길에 오른 라리사, 분노를 일으켜 그에게 숨기고 있던 울화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해준 인디언 루코 우르코, 순례길 내내 그의 의지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준 FC 바르셀로나 티셔츠를 입고 있던 리버풀의 앤, 엄마와 같이 그들을 돌봐 주었던 쉴라, 순례길에서 만났던 학대받고 외로운 개들, 그가 끔찍하도록 싫어했던 주둥이 아줌마 잉게보르크까지. 그는 순례길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과 자연, 그 모든 것들을 통하여 자신이 찾고자 했던 질문의 답을 점차 찾아 간다. ‘나는 누구인가?’,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그 길 위에, 자신의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는 깨닫게 된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혹시 내가 전혀 모르는 종교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였다. 특히, 기독교적인 것에 무척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의 선입관 탓에 기독교적인 신에 대한 감동을 강요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면 책을 읽다가 중도에 포기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러한 나의 우려를 말끔하게 지워주었다.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이 호텔에 머물고 쇼핑을 하질 않나, 비싸게 주고 산 지팡이를 도로 찾으러 가질 않나, 중간에 힘들다고 차를 얻어 타질 않나, ‘이 사람 순례자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솔직하면서도 짝퉁 같은 순례길이 오히려 무척 재미있고 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야고보 순례길은 이 책의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며,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의 길이 존재하기에, 순례하는 이들 각각 나름의 길이 존재하기에 짝퉁 같은 순례자 하페 케르켈링에게도 자신의 해답을 찾게 해준 것 같다. 그러한 그의 재치 있고 솔직한 순례 여정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이게 다가온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문득 ‘여행’이라는 것이 하고 싶어진다.
단순히 즐기고 쉬기 위한 ‘여행’이 아닌, 나만의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나도 야고보 순례길에 오르면 그 길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그 언젠가 나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