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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한 초보 부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가족 만들기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쭈쭈'라고 하는 개가 있었다. 우리 집에 있던 강아지들은 모두 '쭈쭈'라는 이름이었는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쭈쭈는 검회색 긴 털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다. 우리 집 대문 옆에 항상 묶여 있던 쭈쭈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무척 잘생긴 개다. 옛날 할리우드 서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였던 배우인 찰슨 브론슨과 얼굴이 비슷해서 쭈쭈의 별명은 찰슨 브론슨이기도 했다.
쭈쭈는 무척 착하고 순한 개였다. 가끔 끈을 풀어 탈출을 감행했지만 결국 아빠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거나, 겨우 도망친다고 간 곳이 우리 집 옥상이었다. 그런데 겁이 많은 이 녀석은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해 벌벌 떨고 있다가 결국은 아빠 손에 질질 끌려 내려와야만 했다.
너무나 착하고 순했던 잘생긴 개 쭈쭈. 우리 집이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가면서 키울 수 없게 되어 가까운 동네의 엄마 친구 분 댁에 맡겨지게 되었던 우리 쭈쭈. 옛 주인에 대한 충성심에 엄마가 가끔 그 댁에 놀러 가시면 엄마 발소리와 냄새를 골목 어귀부터 알아채고 반가움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는, 그리운 내 유년 기억 속의 강아지 쭈쭈.
존 그로건의 『말리와 나』는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 리트리버견 말리와 그로건 가족들 간의 사랑이야기이다. 작가 존 그로건은 아내 제니와 어느 날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정한다. 우연히 신문 광고 속에서 발견한 집에서 리트리버견 강아지를 데리고 와 키우게 된 그들. 그날부터 그로건 가족과 말썽쟁이 말리와의 시끌벅적한 생활이 시작 된다.
말리는 그로건 가족에게 단순한 애완견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족이었으며 삶의 동반자요, 기쁨과 행복, 그 자체였다. 아마도 이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강아지를 처음 집으로 데려 오기로 결정하고, 그 날을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 그리고 키우는 동안 겪게 되는 여러 우여곡절들. 가끔은 여기저기 집안을 물어뜯거나 이불, 카펫 따위에 오줌을 싸놓아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모습에 그 모든 미움들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이 책의 제니가 유산했을 때 말리가 조용히 그녀를 위로해준 것처럼, 마치 나의 슬픔과 아픔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내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너무나도 듬직한 모습의 눈망울들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존 그로건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개와의 관계에서도 대가가 따른다. 이러한 대가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사실 이것은 말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 만족, 보호, 동반자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완견을 키운다는 것은,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우리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단순한 것이 아닌 그 어떤 책임감과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춘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형제, 자매가 없이 홀로 키워지는 요즘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애완견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이는 이기적이고 외롭게 자라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애 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에게 무척 감동의 스토리로 다가올 이 책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아지를 싫어하거나 애완견을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혀 공감가지 않은 내용이라는 점이다. 지금 애완견을 키우고 있는 나는 그로건 가족에게 완전하게 감정이입이 된 상태로 이 책을 읽었다. 말리가 말썽을 피우는 모습에서는 함께 킥킥거렸고, 말리의 재롱에 기뻐하며, 말리를 하늘로 떠나보낼 때는 함께 울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그들의 경험과 거의 같은 일을 겪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개를 싫어하거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에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무척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말리와 나』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헐리웃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얼마 전 개봉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도 동물이 주인공인 그저 그런 헐리웃 가족 영화로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나는 시추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아치'인데 태어난 지 3개월 되던 때에 우리 집에 와서 벌써 8살의 장년견이다. 피부도 민감하고 귓병도 심한 이 녀석은 나를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드는 녀석이다. 배변훈련을 시켰는데도 배변 판에 한번 용변을 보면 새것으로 갈아줄 때까지 배변 판 주변에 용변을 보는 깔끔을 떨기도 하고, 한참 이빨이 날 때는 우리 집 가구란 가구는 모두 갈아대서 초토화를 시켜 놓기도 한 말썽쟁이이다. 하지만 이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행복한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온다. 잠 잘 때는 꼭 내 옆에 꼭 붙어서 자려고 하거나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꼬리가 부러지도록 흔들어대며 엄청나게 날 반겨주는 우리 예쁜 아치. 가끔 내가 우울하거나 슬플 때는 가만히 내 옆에 앉아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너무나도 든든한 나의 자식과도 같은 강아지.
지금 나의 가장 큰 걱정은 과연 내가 아치가 하늘나라로 가야 할 때가 오면 그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 책 『말리와 나』를 읽으면서도 엄청 눈물을 흘렸으며, 텔레비전에서 하는 동물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기견의 사연만 봐도 펑펑 울어대는 내가 과연 나에게 닥친 슬픈 현실을 견뎌 낼 수 있을까? 어떨 때는 그 때가 너무 두려워서 아치를 키우는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키우지 않았다면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아치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주었다. 그 옛날 우리 집을 지켜주던 '쭈쭈'가 우리 가족에게 무한한 사랑을 남기고 떠났듯이 아치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도 많은 추억과 사랑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하기에 나는 매일 다짐한다. 결국 아치는 내 곁을 떠나게 되겠지만 내가 아치에게서 받은 사랑과 행복, 그에게서 배운 행복은 영원할 것이며, 후에 그와 꼭 닮은 그 누군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 것임을….
"사랑해, 아치 그리고 기억해, 쭈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