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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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대리모.. 아르바이트?"



도쿄의 병원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리키'. 어느 날 동료 '데루'의 '쏠쏠한 제안'에 넘어가 난자 제공이라는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고, 뜻밖에 업체로부터 '대리모' 제안을 받는다. 난자 제공보다 훨씬 큰 보수를 제안받고 고민하던 리키는 결국 대리모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기리노 나쓰오 작가님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처음 읽은 작품부터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싶었고, 두 번째로 읽은 대표작 [아웃]의 극단적인 전개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이 작가님의 책은 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를 손에 들게 되었던 건 아마도 심상치 않은(?) 이 책의 설정 덕분이었을 거다.



스물아홉, 독신, 지방 출신, 비정규직

리키가 원한 건 더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뿐이었고,

그녀가 가진 것은 자궁 하나뿐이었다



단 세 줄의 카피인데 보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혀오며 2년 전에 읽었던 '장기 이식'을 소재로 한 책이 떠올랐다. 가난한 집 아이는 가진 게 없어서 장기를 팔고자 했고, 있는 집에서는 마치 쇼핑하듯 아이를, 장기를 골랐다. 자궁 역시 장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또 상황이 다르다. 리키는 장기를 팔고자 하는 게 아니라.. 와, 이게 표현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순간 아찔했는데.. 어찌 보면 대리모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자궁을 임대..(미치겠다 진짜..) 어쨌든 그런 상황인데.. 대리모라는 것 자체가 단순히 한순간, 내 자궁을 빌려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최소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한없이 성스럽고 아름다운 -혹은 그렇게 포장된- 행위에 일면식조차 없던 여성이 대리모로 관여한다는 자체가 윤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기에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하면.. 이거 정말 쉽지 않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 반까지 근무한 끝에 받는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으로 14만 엔. 본가가 지방인 리키는 그중 5만 8천 엔을 월세로 써야 하니 남는 돈은 8만 엔 남짓. 여유로운 삶은 꿈 꾸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런 그녀에게 업체에서 대리모를 제안하며 제시한 금액은 300만 엔. 거의 1년의 시간을 써야 하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치고는 너무 낮은 금액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꿈도 못 꿀 금액'이라는 리키의 첫 반응에 그녀가 처한 현재 상황의 암담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소설은 리키의 시점 외에도 그녀에게 대리모를 의뢰하고자 하는 부부.. 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리모를 원하는 남편 '모토이'와 여기에 자신이 관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음에 갈등하는 아내 '유코'의 시점이 교차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 교차 시점이 참 불편하다. 알고 싶지 않은, 특히 대리모 제안을 받아들인 리키는 몰랐으면.. 싶은 불편한 진실을 당사자의 시점으로 적나라하게 알아야 하는 게 진짜 어질어질하다.



유명한 발레리노였던 모토이는 자신의 '우월한'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기간 동안 리키를 철저히 '관리'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게 모토이의 입장에서는 관리지만 리키의 입장에서는 자유의 제한 혹은 속박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모토이의 생각은 자신을 제외한 두 여성에게 한없이 이기적이다.



유코의 상황은 복잡하다. 임신을 위한 시술로 인해 임신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녀는 아이를 포기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리모를 원한다. 남편의 정자와 대리모의 난자, 그리고 대리모의 임신과 출산.. 그 과정에 유코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게 낳은 아이를 과연 '나의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써놓은 것만 봐도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실제로 소설 속 상황은 훨씬 더.. 뭐랄까,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옥죄어 오는 듯한 답답함이 있다. 다소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을 상황의 설정에 그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을 인물들의 생각이 더해지는데 그게 마냥 소설 속 이야기, 상상 속 이야기라고 할 수 없는 절박함과 현실감이 있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끈적끈적하고 질척질척한 심리 묘사가 더해지니 읽을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너무 아슬아슬한 이야기에 마치 내가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는 내내 한순간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뻔할 수도 있을 이들의 '결말'이 궁금해서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돌릴 것인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소설에 더 깊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입체적이고, 뭐랄까.. 잘 포장되어 있어도 한 꺼풀 벗겨내면 자신의 욕망에 지극히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시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그게 소설의 초반과 중반, 후반에 꽤나 다르게 다가온다. 이 책 속에는 한없는 선인도, 한없는 악인도 없다. 그냥 그 상황에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나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아슬아슬했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임신과 출산'이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그런 책이 으레 그렇듯 '모성'을 강조하는 책도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모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 그중에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강요되던' 것도 분명 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스러미처럼 왠지 모르게 거슬리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까뒤집는 '무언가'가 나올 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눈을 돌릴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며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것인지..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정말로 불편했고, 정말로 질척질척했지만 눈 돌리고 싶지는 않았던 책,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였다.




*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들었던 의문은 왜 이 책의 제목이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일까.. 였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아보니 제목의 '제비' 혹은 한자 '燕'에 다양한 뜻이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나무위키)

연상의 여자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남자, 제비족, 젊은 정부(情夫), 젊은 남첩(男妾)(파파고)

일본에서 제비는 봄을 알리는 길조(吉鳥)이자 행복, 풍요, 육아의 상징으로 여겨지며...(구글 AI)


여러 뜻을 보니 왜 제목에 제비가 들어갔을까..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좀 더 힘내보라고, 맘만 먹으면 더 위로 돌라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다. 스스로 노력하라고 해도 이미 출발점에서 저평가된 그룹에 들어가 버리면 자기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생식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오로지 법과 인간의 감정뿐일지도 모른다.

돈으로 자궁을 산 다음엔 모성까지 사들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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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행복 톤 텔레헨의 어른을 위한 철학 동화
톤 텔레헨 지음, 김고둥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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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어른들을 위한 철학 동화" 시리즈 중 국내에 2017년에 출간되었던 [고슴도치의 소원]의 후속작 [고슴도치의 행복]이 '아르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고슴도치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외에도 다람쥐, 코끼리, 귀뚜라미 등을 주인공으로 한 책도 같은 '아르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기존 책들을 읽었다면 반가울 만한 요소들이 [고슴도치의 행복]에 있고, 당연히 읽지 않았어도, 심지어 전작인 [고슴도치의 소원]을 읽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볼륨에 에피소드만 무려 61개! 한 에피소드가 짧으면 한 장, 길어도 두 장 정도? 귀욤귀욤한 일러스트도 그렇고, '고슴도치의 행복'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짤막한 에피소드도 그렇고.. 한동안 유행했던 힐링 에세이를 귀여운 동물을 의인화해서 쓴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앞쪽 몇 편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당황스러웠다. 주인공인 고슴도치는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다. 무엇보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가시에 대한 불만도 많다. 고민은 많지만 쉽게 해소되지 않고,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잘 되지는 않는다. 가시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때로는 가시를 없애고 싶어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초반에는 고민 많고, 생각 많고, 불만 많더라도 에피소드를 거듭하다 보면 점점 힐링의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찌 보면 한 권 내내 고슴도치의 생각과 행동은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런 고슴도치에게 조금씩 익숙해지며 고슴도치를 받아들이게 되는 느낌? 그런데 그게 그냥 내 이야기 같았다. 내가 가진 고민이나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하나가 해결되어도 금방 또 다른 고민이나 걱정이 찾아온다. 거듭한다고 더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참 쉽지 않다. 흔히 말하는 '지나면 다 잘 되리라..'는 어쩌면 마음 편한 판타지 같은 느낌이라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그냥 고슴도치를 고슴도치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마냥 쉽지는 않지만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고슴도치를 받아들이며, 그냥 그 자체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아, 나도 그냥 그 자체로도 괜찮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고슴도치, 그게 나구나.." 싶었다.


왜 동물들은 나무들과 꽃들처럼 매년 봄에 개화하고 여름 내내 피어 있다가 가을에 시들고 다시 다음 봄에 개화하지 않는 걸까? 라고 고슴도치는 생각했다. 그럼 정말 멋질 텐데? 활짝 핀 곰, 꽃봉오리가 핀 코끼리, 싹트는 하마......


이 시리즈에는 "어른을 위한 철학 동화"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처음에는 '철학...?'하는 의문이 있었다. 고슴도치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철학이라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참 묘하다. 이 책은 술술 읽으려고 하면 그냥 동화처럼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다. 물론 내용 자체가 마냥 밝거나 가벼운 건 아니지만,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고슴도치가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금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든지, '지금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 해당 에피소드를 읽고 또 읽으면 '어...?' 하고 느껴지는 게 있다. 뭐랄까, 단순히 text뿐만 아니라 context가 보다 깊이 와닿는 느낌이랄까? 문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문장에 담긴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분명 이 책은 '철학'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제목은 [고슴도치의 행복]이지만, 이 책 속에 행복이 담겨 있던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보면 '행복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다. 그냥 하루하루를 어찌어찌 살아가고, 때로는 다른 내가 되는 걸 상상하기도 하고, 가끔 너무 화가 나면 '분노!!!!'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결국 그게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해주는 대신 어쩌면 그 끝에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슴도치의 행복]은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고, 날카로운 것 같으면서 폭신하고, 안 괜찮지만 또 괜찮을 것 같은 게, 그냥 나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누구에게나 '나 같은 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어쩌면 내일 나는 나와 장소를 바꾸고 싶어 하는 매머드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멸종하고 매머드가 내 집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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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소녀 사이드미러 3
소향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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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내 딸 대신 수능을 쳐서 서울대에 합격하면 10억을 줄게"



수능날 아침,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며 '영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아버지가 운전기사로 일하던 식품 회사 회장 '나희'는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내 딸 대신 1년 동안 학교에 다니고, 수능을 쳐서 서울대에 합격하면 10억을 줄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만 나희의 딸 '초롬'은 영리와 쌍둥이처럼 닮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나희의 제안을 받아들인 영리였지만...



"PTSD 오는 스릴(?)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소설"



대기업 회장이 찾아와 '이러이러하면 거액을 주지!' 하는 제안을 한다면 어떨까? 나라면 일단 거액을 어디에 쓸지 즐거운 상상부터 할지도 모르겠다.(철이 없다..) 그런데 그 제안이 자칫하면 내 인생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일종의 '범죄'라면 어떨까.(금액에 따라 다를 지도..) 아마 좀 더 고민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제안이 표면적으로는 제안이지만, 내 입장과 상황상,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그러니까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면.. 눈 딱 감고 '어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한 게 [모방소녀]의 주인공인 영리이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있고, 당장 전셋집은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서울대 입학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사고로 수능을 보지 못하게 되며 인생은 본의 아니게 철로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벗어난 거, 크게 벗어나더라도 다시 철로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심지어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그 사람과 내가 얼굴도 키도 거의 쌍둥이처럼 비슷하다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외관상 비슷하더라도, 1년 동안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꽤나 폐쇄적인 집단인 학교에서,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주해야 하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이미 한참을 함께 보낸 친구들을 완벽하게 속이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영리는 초롬으로 살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허점이 차츰 드러나며 위기에 처한다. 언제 들통날지 모를 살얼음판 같은 영리의 하루하루가 그 어느 스릴러 소설보다 긴장감 있고 스릴 넘쳤다. 마치 내가 영리가 된 듯한 느낌으로, '제발 수능날까지만..' 하고 바라기도 하고, 챕터가 거듭될수록 '혹시라도 들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300페이지 남짓한 볼륨 동안 영리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독자도 마찬가지였다.


[모방소녀]의 매력은 아슬아슬함이다. 일단 설정 자체는 어디까지나 소설이라서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연히 대기업 회장 딸과 회장의 운전기사 딸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래서 운전기사의 딸에게 자신의 딸 대역으로 1년 동안 살 것을 제안한다? 두 사람의 외모가 똑 닮은 건 그렇다 쳐도, 그렇게까지 해서 서울대에 보내는 메리트가 과연 리스크보다 클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왜 나희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딸을 서울대에 보내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고, 말이 안 되는 설정보다는 그 상황에 처해진 영리 혹은 초롬의 생각과 행동에 집중해서 읽게 된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 위에 쌓아 올린 스토리지만,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그 나이대라서, 혹은 그 상황이라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여기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위협'과 그 이면에 자리 잡은 '현실'을 생각하면 한층 더 몰입이 된다. 무엇보다 누구나 한 번쯤을 해봤을 상상에 대부분은 겪어봤을 '수능'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PTSD 오는 스릴(?)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닐지..



"한국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된 소설..?"



[모방소녀]는 뭐랄까.. 한국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된 소설..처럼 느껴진다. 어느 소설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이 책은 한국인이라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모성애도, 대학교 간판에 대한 집착도, 학창 시절을 즐기는 학생들의 마음가짐도, 내가 한국인이라서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으로 보이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다소 극단적인 부분이 없지 않고, 특히 후반부의 전개는 그동안 차근차근 쌓아 올린 상황 및 감정선에 비해 다소 급하게 느껴져서 아쉽긴 하지만 어느 정도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구성, 슬며시 자리 잡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미스터리적인 요소 등 매력적인 포인트가 많은 소설이었다. 하루빨리 출간되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모두가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며 :)



삶에 무게가 있다면 얼마일까, 아마도 다 가지고 태어난 저 애에겐 깃털 같겠지,


추락하며 영리는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란 당연한 일이 아닌 축복이고 축복에는 저마다 가격표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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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나쓰키 시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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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특별한 나, 혹은 이상한 나..."


"고이치는 독특해.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이유는 주위 수준이 너무 낮아서야. 너는 그대로 당당하게 지내면 돼."


어머니의 입버릇이었고, 그래서 고이치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저 '이상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런 고이치에게 담임인 '니키'는 한없이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때,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이런 설정으로 잘도 이런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냈구나...(?)"


‘소아성애증’이라는 선천적 정체성을 지닌 남성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철저히 통제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파격적인 소설입니다.


위에 적은 건 처음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소개글의 한 부분이다. '소아성애증'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실제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 인물에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그 공감은 몰입을 이끌어 낸다. 그런데 소아성애증이라는 용납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남성이 주인공인 소설이라니.. 과연 이 소설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을까..에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떠올랐던 게 재작년에 읽었던 '아사이 료'의 [정욕]이었다. 이상 성욕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제목은 '바른 욕망'이라는 뜻의 '정욕'이었던 소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고민했지만, 읽은 후에는 '읽기 잘했군!'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니키]도 내게 그런 책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손에 들었는데.. 거의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재미있었다'라고 표현하면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위의 책 소개글을 보면 꽤나 처절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소설은 분명 니키의 소아성애증에서 시작한다. 이들이 단순히 담임과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조금 벗어나 서로의 비밀을 아는 사이가 된 데에는 니키의 정체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관계 속 이들 나름의 교류(?)는 예상과 꽤 다른 모습이었다. 니키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분명 자신이 우위에 있을 거라는 고이치의 생각과 달리 니키와 대화를 하면 늘 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도록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 온 니키의 말은 -고이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뜻밖에 설득력이 있고, 그가 하는 조언은 분명 스스로의 비밀을 숨기기 위한 방편일 텐데 묘하게 고이치의 마음에 와닿는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이상하다'는 시선에 상처받으며 '남들과 같은 나'를 추구해야 할지, '남들과 다른 나'를 고수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한, 가치관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소년이 다소 불온한 계기이기는 해도 '그나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어른을 만나 조금씩 달라진다..라고 하면 어쩐지 [니키]는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어른이 소아성애증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기는 해도, 적어도 일상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욕망은 비교적 건전한 -이걸 건전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 방향으로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읽었던 '샤센도 유키'의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속 한 구절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저 선량하기만 한 사람이 착하게 행동하며 사는 것보다, 실은 잔인하고 포악한 사람이 착하게 행동하며 사는 게 훨씬 선량한 것 아니려나."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샤센도 유키)] 중에서..)

     

이 구절에 대해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은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본성을 억누르고 정말 착한 행동만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그쪽이 훨씬 어렵겠지.."였고, 이번에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정체성을 억누르며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건 정말 어렵고, 순간순간 자신은 '가짜'라는 생각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소설처럼 타인에게 단 한 번의 위해도 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정체성이 그렇다..라는 것만으로 그를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다시 감상의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이들의 시작은 다소 불온했지만, 적어도 서로가 상호작용하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는 건 아슬아슬하지만 나름대로 유쾌한 면이 있고, 그래서 재미있었다. 등장인물에 공감하며 몰입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는 달리,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풀렸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이런 설정으로 잘도 이런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냈구나..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다름'이 무조건적인 '틀림'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감상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아서 짧게 마무리를 하자면.. 분명 소설은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극적인 설정보다는 이들의 상호작용과 그를 통한 성장에 보다 집중하게 된다. '다름'을 가진 이들이 때로는 '특별함'을 추구하고, 때로는 '평범함'을 동경하고, 때로는 그래서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모습이 한 편의 청춘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뭔가 청춘의 싱그러움은 좀 부족한 듯싶지만... (?)) 이 소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그래도 이들의 다름이 무조건적인 '틀림'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감은 오컬트가 아니야. 눈과 귀로 들어온 정보로 확실히 깨닫고는 있었는데 아직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게 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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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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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단으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1939년 7월의 어느 날, '명성아파트'에서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다. 301호 '최연자'의 집에 식모로 함께 살고 있는 '입분'을 비롯한 아파트 사람들에게 촬영은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촬영 도중,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로 한 아파트 관리인 '우에다'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현장에서 붉은 글씨로 쓰여진 '불온한' 메시지가 발견되며 아파트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다. 경찰은 입주민들을 의심하고, 수사를 해나갈수록 여러 가지 수상한 정황이 드러나는데..



일단 이 책은 배경부터 지나칠 정도로(?) 흥미롭다. 1939년이면 일제강점기인데, 의외로 배경이 '아파트'이다. 그리고 이 아파트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두루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웃사촌으로 보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적개심 같은 건 -실상은 어떤지 차치하더라도- 일단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 그리고 그 사건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로 인해 이들 사이에도 어딘지 모를 미묘한 공기가 감돈다. 뭔가 '인 듯 아닌 듯'한 아슬아슬함이 주는 흥미로움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 등장인물 역시 배경 못지않게 흥미롭다. 일단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열두 살에 불과한 조선인 소녀 '입분'이다. 기존에 일하던 집에서 쫓겨나 겨우겨우 최연자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살고 있는 소녀지만 눈치도 빠르고 관찰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그런 입분이 모시는 마님 연자 역시 평범하지 않다. '셜록 홈즈'나 쓸 법한 모자를 쓰고, 수상한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드나들고, 무엇보다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마님과 식모지만 한편으로는 탐정과 조수 같기도 한 이들의 기묘한(?) 관계 역시 책에 큰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기존 작가님 책 속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입체적이고 매력적이었는데, 이번 책은 그와는 어딘가 다를 묘한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이들 외에도 명성아파트의 입주민들은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건과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이들을 보면서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푹 빠져서 읽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 명성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의 에피소드만 봐도 '와, 미쳤다.. 너무 재미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기묘한 메시지까지 등장하며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시대 상황을 잘 살린, '이때라서 가능했다!' 싶은 발상부터 촘촘하게 심어 놓은 복선, 예상을 하든 못 하든 놀라울 수밖에 없는 결말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다. 추리소설로 봐도 재미있고, 시대소설로 봐도 흥미진진하고, 드라마로 봐도 몰입도가 높다. 아, 앞의 감상은 취소, 이 책에 유일하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다음 권이 없다는 거죠...ㅠ



나는 무경 작가님 책을 정말 좋아하지만, 기존 작가님의 책이 술술 잘 읽히는 편인가.. 하면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는 쉽지 않다. 내용이 복잡해서.. 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시대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는 것과 다소 많은 인물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보니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1939년 명성아파트]는 정말 읽기 쉽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읽어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읽기 쉽다. 아무래도 시대 배경의 소설은 시대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특히 당시 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가 그들의 행동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런 허들을 아주 쉽게 넘어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시대 배경 소설이 지닌 매력을 너무 잘 드러나서 '와, 이 소설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경 작가님 작품을 좋아한다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이고, 아직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 보지 않았다면 입문작으로도 강추하고 싶은 책이었다.



"사람은 다른 이의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길 뿐, 본질이 어떤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겉이 그럴듯하게 보이면 속도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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