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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아! - 돌아온 바람의 딸 한비야의 떠나며, 배우며, 나누는 삶에 대하여
한비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비야 작가의 책인지라, 무척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한비야라는 이름을 만난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서점 나들이를 했다. 책보다도 선물 받는 느낌이, 부모님과 서점으로 놀러 간다는 느낌이 더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서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생겨서 인 것 같다.) 내가 산 책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빠가 구입했던 책 두 권은 여전히 떠오른다. 한 권이 『태양의 아들 잉카』라는 책이었고, 또 한 권은 바로 한비야 작가의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이었다. 바람의 딸이라는 제목이 어린 내게도 흥미롭게 여겨졌던 것 같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기에 책의 글 밥이 너무 많아서 사진만 좀 봤던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바람의 딸 시리즈를 제외하고 한비야 작가의 책을 여러 권 만났던 것 같다. 1그램의 용기도 읽었는데, 그게 벌써 5년 전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싶다.

알다시피 한비야 작가는 여성 배낭여행 1세대로 불린다. 그녀 덕분에 배낭여행뿐 아니라 세계여행에 대한 관심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바람의 딸이라는 이미지를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우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제는 오지 여행가 보다는 국제구호가 주 업이 되었기에 과거의 이미지가 구호활동에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되어서 일부러 더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여행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 생각을 접었다고 한다. 바람이 딸이 있었기에 지금의 국제구호가도 교수도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국제구호가 답에 책 안에는 다양한 도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러워진 것은, 나는 움켜지는 것은 잘하지만 나누는 건 잘 못하는 사람이어서다. 물론 나 역시 십수 년 전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에 있는 한마을을 다녀온 후로, 그곳에서 만난 선교사님의 강의를 들은 후로, 그때부터 계속 매달 여러 단체를 통해 후원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저자처럼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덜먹고, 좋지 않은 곳에서 자고, 편하게 가기 보다 걸어가는 것을 택하면서 모은 돈으로 나눈다는 사실이 내겐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비야 식의 다양한 모금과 구호, 후원활동이 책 여기저기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아이에 이야기가 있다. 남수단에서 구호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부모가 일하러 나가는 낮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는 7살 미만의 아이 100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책과 색연필을 나누어 주었단다. 시각장애가 있는 동생에게 받은 색연필과 공책을 만져보게 하는 7살 아프리카 꼬마 아이를 본 저자는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남은 2세트를 더 챙겨주려고 했단다. 그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보통은 선물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했을 텐데, 이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걸로 만족하며 하는 이 한마디가 저자는 물론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꼬마 덕분에 그날 새삼 깨달았다.
행복의 조건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가진 것에 감사하며 지금 이걸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책에는 무국적자 취급을 받고 난민으로 살아가는 로힝야족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북서쪽과 방글라데시의 국경 지역에 사는 무슬림으로 150만 명의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아랍.벵골계 무슬림이라 주장하는데 비해, 미얀마 군부는 이들을 영국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에서 이주한 불법 이민자로 간주하고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살고 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저자는 2024년 난민촌이 있는 곳으로 떠났는데, 책 안에는 이들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미얀마로 갈 수도 없고, 제3국으로 가기도 힘들고(이들은 무슬림이다 보니 테러 등을 우려하는 제3국에서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에서 제공하는 지역으로 가기도 싫어한다.(방글라데시에서 제공하는 곳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거주이전의 자유 자체가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교육시키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역할을 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앞에서 십여 년 전 미얀마와 태국 국경지대 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메솟에서 사는 카렌족이었다. 이들 역시 군부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었는데,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염소를 지원해 주고 공부를 시켜주는 학교를 다녀온 적이 있다. 나무로 얽기 설기 지은 나무 집에서 이들은 새벽마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알고, 가진 것조차 나누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불평불만만 쏟아내던 나 자신을 많이 반성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 기억이 살포시 떠올랐다. 누구도 로힝야족 같은 상황에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추운 날씨에도 따뜻하게 입을 옷도, 머무를 집도, 식당에 가서 사 먹을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불평이 터져 나왔다. 오늘도 나는 출근길 갑자기 밀면서 들어온 한 남자에게 눈을 흘기고 속으로 많은 욕을 삼켰고,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서 걸어가야 했던 것도 불만이었다.
덕분에 잠깐이지만 내가 가진 감사할 것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불만투성이지만, 서평을 쓰면서 오늘 하루를 또 돌아보게 된다. 내일은 좀 더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책의 제목처럼 비교하고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도, 오늘도 좋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