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는 아니지만, 의외로 내 서재에는 스님들의 저서가 꽤 여러 권 자리하고 있다. 법륜스님과 혜민스님 그리고 법정 스님과 팃닛한의 저서까지...!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스님들의 책에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목사님들의 저서에 비해 스님들의 저서는 좀 더 세상사에 눈을 맞춘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타 종교인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기독교 서적보다는 불교서적을 좀 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법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무소유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은 좋아했지만, 독서가 다른 목적을 가지게 되는 경우 반감이 생기는 것 같다. 의외로 법륜스님이나 혜민스님보다 글이나 강의로 먼저였던 법정 스님의 저서 중 하나를 아주 오래전 구입했었다. 여전히 내 서재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책 옆에 이 책이 함께 놓여있다. 이 책은 이미 과거에 나온 책인데, 새롭게 리커버를 한 것 같다. 책 안에 담긴 글에는 어디서 강의를 진행했느냐에 따라 불교의 교리가 진하게 담긴 부분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청중이 불교도가 아니거나 일반 대중이 많은 경우는 좀 더 실제 삶의 이야기가 담겨서 읽기가 편했다. 여러 부분에서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얼굴에서 얼이 정신을, 굴이 꼴(모양)을 뜻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 또한 그런 면에서 얼굴의 뜻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스님 역시 자신의 마음 씀씀이가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정신과 마음을 가지고 삶을 대했는냐에 따라 내 얼굴이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보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여기서 미의 기준은 꾸밈이나 화장, 생김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아름다움에는 자기다움이 포함된다. 내 삶을 스스로 형성하지 않고 타인을 닮아가기만 하면 결국 자신만의 얼굴, 자신만의 삶을 이룰 수 없다.
책 안에서 스님은 욕심을 참 많이 경계하고 있다. 움켜지고, 나누지 않는 삶에 대해 책망을 하기도 한다. 아마 그런 면에서 무소유의 정신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웅다웅하며 움켜진다고 그것이 전부 내 것이 된다는 보장이 과연 있는가? 오히려 나눌 때 그 안에서 행복이 움트고 더 깊은 소유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스님은 자신이 지내다가 떠나게 되면 꼭 자신이 머물렀던 곳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태웠다고 한다. 뭔가를 남기지 않고, 소유하지 않는 모습이 진정한 참선이고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들의 책을 읽다 보면 가장 자주 마주하는 단어가 참선인데, 이 참선은 또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을 읽다가 와닿는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이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