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평점 :
개인적으로 경찰에 의해 사건이 풀어지는 형태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물론 직업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태도 좋긴 하지만, 탐정은 실생활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데 반해, 경찰은 실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이다 보니 조금 더 실제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추리 소설들의 경우 유독 탐정이나 경찰이 사건을 풀어가는 형태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즈물도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군마 현경 수사 1팀의 가쓰라 경부가 사건을 풀어내는 주인공이다. 총 5편의 단편소설이 연작소설 형태로 책 안에 담겨있다. 그중 4번째 등장한 가연물이 바로 이 책의 표제작이다. 가연물(可燃物)이 뭘까 싶었는데, 불에 타기 쉬운 물건을 말하는 단어였다. 제목처럼 해당 사건의 초점은 방화범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오타시 주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화재는 쓰레기봉투에서 시작되었고, 다행히 불이 커지지는 않았다. 첫번 째 화재는 쇼와마치3가의 쓰레기 수거장에서 일어났는데, 편의점을 가던 주민 이소마타 요이치가 화재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후, 옆 민가 마당의 수도와 양동이를 통해 진화를 한다. 다행히 불은 번지지 않았지만,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 수도와 양동이를 사용한 것 때문의 경찰 조사를 받을 지경에 이른다. 그 이후 비슷한 방화가 여러 건 일어난다. 12월이라 날이 추워지고, 건조한 기후 탓에 방화가 커질 것을 걱정한 현경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가쓰라 팀이 오타시로 파견되어 사건을 조사한다. 소방본부의 하타노로 부터 해당 사건들의 조사 결과를 들은 가쓰라는 팀원들을 나누어 잠복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간 밤에 이상한 행동을 보인 3명이 확인된다. 공원에서 음주를 하던 청년 중 한 명이 불 켜진 라이터를 모래밭을 향해 던지는 행동을 했다. 19세의 오고 미네오. 또 한 사람은 쓰레기장 앞까지 갔다가 걸음을 멈춰서 일반 쓰레기를 한참 쳐다보고 다시 돌아간 70대의 남성 오노하라 다카유키. 마지막은 쓰레기 수거함에 불붙은 담배를 넣으려다가 다시 꺼낸 30대 중반의 남자 다카야나기 미쓰루. 문제는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더 이상 방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일까? 혹시 가쓰라 팀의 조사를 범인이 보고 발을 뺀 것일까? 하지만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본부를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에도 해결될 방법이 없는 중에 가쓰라는 처음 방화가 일어났던 쓰레기봉투 사진을 보고 범인을 찾게 되는데... 과연 그는 어떻게 범인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표제작보다는 낭떠러지 밑이라는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다. 스키를 타던 일행 4명이 실종된다. 실종 신고를 한 것은 같은 일행 중 혼자 같이 나서지 않은 하마즈 교카와 그가 머문 스키장 산장의 주인인 아쿠타미 쇼지였다. 당일 일행은 백 컨트리(코스로 벗어나 자연 속을 활강하는 것)를 하자고 했고, 초심자인 하마즈만 제외하고 넷은 그렇게 길을 나섰는데 10시 반이 넘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가쓰라 경부 팀을 비롯하여 소방서와 지역 소방단, 주민, 스키장 구조팀으로 이루어진 수색대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조난자 중 고토 료타와 미즈노 다다시가 낭떠러지 밑에서 발견된다. 발견 당시, 고토 료타는 사망한 상태였고, 미즈노 다다시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망한 고토 료타의 시신을 살펴보던 중, 주된 사인은 경동맥이 찔리면서 일어난 과다출혈 때문으로 밝혀진다. 자상에 사용된 흉기는 끝이 뽀족한 물건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주변을 찾아도 흉기로 쓸만한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사망시간은 밤 22시에서 새벽 2시 사이로, 현 상황으로 보자면 범인은 미즈노 다다시로 보이지만 어디에서도 흉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일행 중 한 명인 누카다가 혼자 산장으로 돌아온다. 누카다를 조사하던 경찰 무라타 가쓰라는 누카다로 부터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미즈노의 어머니의 사고의 원인이 고토 료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고토는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그의 뒤에서 운전을 하던 미즈노의 어머니는 고토의 차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운전하는 레미콘과 사고를 낸다. 사고로 레미콘 운전자는 물론 미즈노의 어머니도 사망하게 되고, 사고의 배상 때문에 미즈노의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즈노는 모르는 상태였다. 이 사실을 들은 가쓰라 경부는 과연 미즈노가 해당 사건의 진실을 알았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흉기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 걸린다. 하지만 역시 가쓰라다. 전혀 예상치 못한 흉기의 소재를 발견하게 되는데...
소설이라고 하지만, 사건을 풀어내는 가쓰라의 시선은 정말 특별하다. 작가는 이미 사건 곳곳에 여러 정보들을 뿌려놓은 상태다. 아니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가쓰라의 몫이다. 실마리를 통해 사건이 풀어지면 독자는 허를 찔린 기분이 된다. 매력적인 경찰이자 탐정인 가쓰라 경부.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