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사한 아저씨의 심리적 부검
조은일 지음 / 예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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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한 적은 없지만, 직업군인인 여성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군대에서 지낸 시간이 적지 않은 편이라 생각한다. 7년간 매 여름 일주일가량을 화천의 모 부대 교회에서 지냈다. 마지막 3년은 전체 총괄 디렉터를 했었기에, 군목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답사부터 전체 일정 체크를 위해 여러 번 방문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군대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군데리아도 여러 번 맛보았고, 군 짬밥을 비롯해 간부식당에서 식사를 해보기도 했다. 물론 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훈련을 지켜보지도 않고, 그저 군대의 울타리 안에서만 며칠을 보내다 왔기에 군 생활에 대해서는 1도 모른다. 그저 군의 냄새 정도만 맡았다고 보면 될듯하다.(그래도 군용 모포와 매트리스를 직접 사용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군 생활을 이야기하는 남자들의 대화에 곧잘 껴서 그들로부터 간접 체험을 자주 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물론 상당한 과장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군 생활은 쉽지 않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군 생활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육군에서 20개월을 근무했다는 조은일. 군대에 가기 전부터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꿈이었기에, 이 책의 각장 말미에는 간단한 시나리오가 붙는다. 저자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상상 속 이야기(평발로 훈련소에서 전역하게 된 상황) 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과거에 비하면 군 생활이 무척 편해졌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앞자리가 커질수록, 현재의 군 생활과 자신이 경험한 군 생활에 대한 폭언의 폭이 커진다. 근데 과연 그럴까? 나 역시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군대 이야기인지라,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좀 특이한 성향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근데 참 웃긴 게,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나는 워킹맘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의 엄마들은 편해졌다. 세탁기도, 청소기도, 식기세척기도, 건조기도 있는 세대니 말이다. 과거에 비해 키우는 아이들의 숫자도 적다. 근데, 힘들다. 과거보다 생활의 형편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아픈 아이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면서 출근해야 할 때는 정말 답이 없다. 과연 이게 단지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차원에서만 판단해야 할 문제일까? 그 생각을 가지면서 책을 보니 저자의 이야기가 좀 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군대에 가서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배워왔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제일 황금기에 모든 것이 통제되고 억압된 곳에 갇혀서 순응만 해야 하는 생활은 상당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많은 걸 누리고, 그런 통제된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로 20년 넘게 살았던 세대들에게는 그 자체가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도 같다. 문제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군에 있는 사람들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에 화장실을 갈 때도 둘씩 가고, 특히 용변을 볼 때면 3분에 한 번씩 밖에서 안에 있는 사람을 불러 확인을 하는 상황(혹시나 자살했을까 봐...)이 너무 소름 끼쳤다. 평발이지만, 입대 전에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않은 터라 결국 만기 전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나름 꽤 머리를 쓰고 요령을 부릴 줄도 아는 인물이었기에 그래도 다행이다 싶긴 했다. 그럼에도 우울한 기운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생각보다 자주 자살을 꿈꿨던 사람이 저자였는데, 막상 심리검사지의 500개의 문항은 저자의 자살 기운을 판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자면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수시로 자살을 생각하는지 너무 안타깝기도 했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여전히 놓이지 못한 군 생활의 경험들은 아마 평생 저자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아주 나쁜 기억도 채색되긴 하지만, 때론 어떤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니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군 생활에 대해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읽어도 좋겠다. 근데, 조만간 입대할 사람이 읽는다면... 과연 예방주사가 될지, 선입견이 될지 장담 못 하겠다. 절대 핑크빛 생활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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