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의 다섯 번째 책이다. 그동안 마주했던 4권은 소설이었는데, 이 책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자신의 삶을 쓴 에세이였다. 더 구체적이라면... 사강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라는 부제가 어울릴 것 같다. 책을 통해 사강을 접했었기에,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인물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저 파격적인 스캔들의 소유자(?)라는 정도 밖에는 말이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파격적인 작품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단과 세계를 뒤집어 놓으며 일약 스타가 된 사강은 의외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으니 얼마나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사강이라는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적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여러 유명한 인물(안타깝게도 내가 알아본 인물은 장 폴 사르트르가 전부다.)들과의 만남과 그들과의 이야기가 반 정도 담겨있고, 사강이 사랑했던 도박, 스피드, 그리고 독서 등의 이야기가 반이다. 혹시나 싶었던 남편들과의 관계나 연애 이야기는 없다. 그저 여러 인물들을 만날 때 동행했던 남편 정도가 전부다.
그가 사랑했고, 존경했고, 좋아했던 인물들로 책 속에 소개된 사람은 전부 5명(빌리 홀리데이, 테네시 윌리엄스, 오손 웰스, 루돌프 누레예프, 장 폴 사르트르)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머리말에서 역자가 언급했듯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던 소수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인종 때문에, 성적 소수자여서, 말년에 시력을 상실해서 등의 이유들은 그들의 삶을 반사하는 거울이었지만 그럼에도 사강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 안에 있는 천재성들을 글로 다시금 분출해냈던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그의 영화를 생각하면 유감스러웠고 그 자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웰스 때문에, 인생 때문에, 예술 때문에, 그리고 그가 말했듯 '예술가들' 때문에, 진실 때문에,
거침없음과 위대함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 때문에,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때문에 말이다.
사강 스캔들로 유명한 도박과 스피드광의 모습들 역시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한 그것들을 그녀는 "그"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변명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겠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의미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만난 사강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빠져드는, 오롯이 그것밖에 모르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