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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버스 ㅣ 웅진 우리그림책 93
이수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8월
평점 :

사람처럼 바닷속 세계에도 해고라는 게 있나 보다. 역시 사회는 냉혹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해파리 버스회사에서 유독 느린 해파리 버스가 있다. 그래서 그의 별명 느림보는 이름으로 불린다. 느림보를 탄 승객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느림보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면 약속을 번번이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클레임이 많아지자, 버스 회사 사장이 느림보를 부른다. 사장이 부르는 건 좋은 일 보다 나쁜 일이 많은가 보다. 그렇게 느림보는 실업자가 된다. 사실 느림보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승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보니, 조금씩 늦어진 건 아닐까?
당장 출근할 일이 없는 느림보는 무료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이 된다. 느림보는 심해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닷속으로 조금씩 더 들어간다.
과연 바다 저 깊은 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내려갈수록 캄캄해지는 바닷속에서 느림보는 괜스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만나게 된 초롱 아귀. 초롱 아귀는 느림보에게 바다 야시장 이야기를 전한다. 그곳까지 가고 싶지만 힘든 초롱 아귀의 발이 되어주기로 한 느림보. 캄캄한 심해를 밝혀주는 초롱 아귀와 함께 바다 야시장으로 향한다. 그 사이 느림보 버스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일까? 하나 둘 바다야 시장을 가고자 하는 심해어들이 많아진다. 깊은 바닷속에 사는 심해어들인지라, 바다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해파리 버스를 탑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 생긴 줄 아는 코가 큰 블롭피쉬도, 심해어 온천에서 일하는 알바생 털게도, 투명한 물고기도 해파리 버스에 타고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난다. 바다에서는 그렇게 불만이 가득했던, 클레임 대장 느림보인데, 심해어들 사이에서는 최고 인기 버스가 되었다.
즐거운 바다 야시장 구경이 끝난 후 돌아가는 버스에서 심해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야시장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과연 우리의 해파리 버스 느림보는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참 좋겠지만,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늘 같지는 않다. 승객들을 태우고 다니는 일이 좋았던 느림보지만, 느림보가 가진 모습만으로는 바다 버스를 운전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바쁘게 사는, 빨리 가야 하는 승객들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느림보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일까? 해파리 버스를 읽는 중에 떠오른 또 한 권의 책인 강아지 똥. 세상에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사실과 맞물렸다. 아니 설령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면 어떨까? 그 필요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없다. 인기가 있는 연예인들조차 안티팬이 있다고 하지 않나?
바다에서는 빠르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삶 같았다. 하지만 심해에서는 달랐다. 깊고 캄캄한 바닷속에서 서로가 어떻게 생긴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심해어들은 느림보와 초롱 아귀 덕분에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느림보는 여전히 해파리 버스지만 그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는다. 다행히 느림보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운전기사가 되었다. 다행이다 싶다.
설령 다른 결론이 났다고 느림보가 필요 없는 존재인 걸까? 누군가는 느림보에게 불만을 나타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것도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