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입원했습니다 - 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다드래기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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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 첫 입원은 큰 아이를 낳는 날이었다. 태어나서 출산 전까지 입원을 해본 적도, 119를 타본 적도 없었다. 지극히 무탈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죽이 아닌 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결국 자연분만에 성공하지만 초산인지라, 새벽 3시에 시작한 진통은 결국 저녁 9시 즈음에다 막을 내렸다. 후처치와 캥거루 케어를 하고 입원실로 올라가니 밤 11시가 가까이 된 시간. 하루 종일 쫄쫄 굶었는데 먹을 수 있는 건 미역국 한 그릇이었다. 그나마 신랑은 다음 날 출근(몹쓸 회사ㅠ) 해야 해서 엄마가 병실을 지켜줬다.(코로나19 이전이기에) 분만 4시간 안에 소변을 한 번 봐야 하고, 그로부터 또 4시간 안에 소변을 한번 더. 24시간 안에 대변을 봐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졌다. 문제는 4시간 안에 봐야 할 소변이 새벽이라는 데 있다. 결국 쪽잠을 자는 엄마를 깨워 화장실에 갔다. 그때 알았다. 혼자 입원했다면 이 모든 걸 혼자 다 해야 했는데...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로부터 4년 후 둘째 출산. 다행히 새벽 진통과 빠른 출산으로 아침에 병실로 올라왔다. 큰 아이가 집에 있어서 남편은 출산 당일 오후에 집으로 갔다. 자연분만이라서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는데, 다인실 병실에 보호자 없이 나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괜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혼자 할 수 있는데도 서러웠다.

장황한 내 이야기를 뒤로하고, "혼자(!) 입원했습니다."라는 비혼 여성의 부인과 수술 일기를 읽었다.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본인의 이야기라서 정말 사실적이다. 사실 혼자는 아니다. 다행히 주인공 조기순씨 옆에는 10여 년을 함께한 여자친구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혼자라고 이야기한 것은, 보호자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변비로 고통을 받던 기순 씨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여성 병원을 간다. 이른 초산과 매번 생리통이 심해서 힘들었던 기순 씨는 의사와의 상담에 옛 기억을 생각한다. 약 먹으면 내성(나도 이 얘기 들어서 약 절대 안 먹었는데...)이 생기니 참으라는 양호선생의 이야기에 약도 안 먹고 버텼는데, 산부인과 의사는 왜 참냐고, 진통제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 역시 결혼 전에는 산부인과를 한차례도 간 적이 없었다. 안 아팠냐? 나부터도 산부인과는 기혼여성들이 가는 곳, 임신과 출산을 위해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상 나 역시 출산 후 입원해 보니, 병실(나는 두 번 다 다인 실을 사용했다.)에는 여성 질병들로 입원한 환자들이 꽤 있었다.(보통 제왕절개 출산의 경우 1인실 입원이 많고, 자연분만의 경우 다인 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결국 난소 근처에서 8cm가 넘는 혹이 발견된 기순 씨는 산부인과 의사에 조언에 따라 암 병동으로 옮겨진다. 유착이 심한 상태에다, 모양이 좋지 않아서 경계성종양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급하게 수술 날짜를 잡는다. 문제는, 직장!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기순 씨는 그동안 검사를 위해 연차 혹은 반차를 사용했는데 수술을 위해 휴가를 이야기하자 정색하고 화를 내는 상사. 100% 여성이고, 그동안 부인과 관련 수술들을 받은 직원들도 상당했는데 그때마다 직장은 난색을 표한다. 결국 기순 씨는 몰아붙이는 상사에게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온다. 입원 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비혼 여성인 기순 씨는 보호자가 없다. 엄마에게 얘기하자니 갖은 잔소리가 날아올 거라 생각한 기순 씨는 고민에 빠지고... 결국 기순 씨의 여친들이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한다.

비교적 부인과 수술 중 간단한(?) 수술인지라 큰 수술 사이에 끼워 넣어져있는 기순 씨의 수술은 정확한 시간이 없었다. 설마 앞에 큰 수술 2개가 취소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오후에 오라고 이야기했지만 갑작스레 앞의 수술들이 취소되고 기순 씨는 아침 일찍 수술을 받게 되는데...

수납. 수납. 수납 지옥은 사실 소아청소년과(규모 있는)에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출산 때는 수납 지옥은 없었던 것 같다. 출산이라서 그런 건지, 입원을 위해 보증인을 세우는 경우도 없었고 수술을 위한 사인을 내가 하지도 않았다.(아마 남편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기순 씨의 입원기처럼 막상 보호자 없는 입원의 경우는 참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여성 병원인지라 부인과 암 관련 환자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3인실을 사용했기에 볼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사실들이 참 서글펐다. 긴 병에는 효자(책 속에서는 배우자도 포함) 없다는 말이 맞구나 싶기도 하고, 마지막을 보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그려져서 여러 가지로 마음이 쓰였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제일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피부에 와닿는다.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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