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살의 철학자 메를로-퐁티
심귀연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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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퐁티 생전에 1,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러시아와 중국에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사르트르와 카뮈를 중심으로 실존주의 운동을 전개하였고 한국전쟁과 동서 냉전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필자는 퐁티의 사유 궤적에 관한 종합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퐁티의 핵심 사유를 놓치지 않으면서 친절한 안내서를 낼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답니다. 읽어 본 바로는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필자의 노력이 배어있습니다.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퐁티의 삶과 우정, 사랑을 다루었고 2부는 후설에서 시작된 '현상학'에 대한 퐁티의 해석과 후설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3부에서는 이성적 판단에 의한 지각이 아닌 '몸지각'을 우선적으로 말하면서 '몸지각' 자체가 하나의 판단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합니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퐁티가 기존 철학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두에 썼던 '몸이 먼저인가? 마음이 먼저인가?'에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전자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철학서를 대할 때는 퐁티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철학에 대한 문외한이다 보니 '철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이면 우선 손이 먼저 가게 됩니다. 아무쪼록 정신, 마음이 아닌 '몸'으로 철학을 느껴보실 이웃님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아니 재독, 삼독을 권합니다. 이해가 부족한지라 아래에 제가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은 글들을 실어봅니다. 이웃님들 코로나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드실 텐데 책에서 기쁨을 낚으시길 바랍니다.



제1부 메를로 퐁티의 삶과 사유의 궤적

1. 지나치게 진지한 퐁티와 도발적인 사르트르
2. 퐁티와 사르트르는 '근대적 사유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현상학적 기반에서 행해지는 학문적 태도'에서는 유사함을 보인다.
3. 퐁티는 라쿠엥 부모들의 반대로 결혼을 포기한다.
4. '현상학'은 후설이래 하이데거, 레몽 아롱, 사르트르, 퐁티로 이어진다.
5. 퐁티는 6.25 전쟁을 통해 스탈린 체제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했고, 구소련도 미국처럼 제국주의적 모습을 지닌다고 비판했다.


제2부 현상학과 메를로 퐁티 철학의 형성
1. 후설은 '의식'의 차원에서, 사르트르는 '자아', 그리고 퐁티는 '몸'의 차원에서 본질에 접근한다.
2. '현상학'의 위대성은 현상 이면에 나타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현상' 그 자체에 주목한다는 것에 있다.
3. 선입견, 다시 말해 자연적 태도를 제거하고 사룰 자체로 돌아가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을 '현상학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4. 퐁티에게는 있고 후설에게 없는 것은 '사실성'이다. 사실성은 '지금' , '여기'에 드러난다. 지금-여기란 지금 이 순간의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상황 속 현재'이다.
5. 퐁티가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가깝다면, 사르트르는 후설의 현상학에 가깝다.
6. 실존하는 인간은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인간은 표현하는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물과 관계하는 매우 '특수한 존재'이다. 퐁티는 이러한 인간을 '지향적 존재'라고 말한다.
7. 퐁티는 '의식', 또는 '자아'가 문제의 중심에 선다면 근대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퐁티는 사르트르가 놓친 부분이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제3부 현상학 또는 현상학적 존재론
1. 몸은 '보편적' 일 수가 없다. 몸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하나밖에 없는 몸으로 규정한다. 고유한 몸인 나는 타인과 구별되는 '개별적 존재' 인 내가 되며, 이 몸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세계와 몸이 교차가 이루어진다.
2. 몸에 모든 것을 맡기는 나는 아무런 판단 능력이 없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몸과 뇌와 생각을 분리하기 때문이다. 뇌도 몸이고 생각도 몸이다. '몸이 생각이다'. 숙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먼저 있고 그 이후에 판단한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는 인과적 원리에서 벗어난다.
3. 존재는 인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내게 알려진다. 그것도 온몸의 감각들이 동시에 작용하는 '공감각'적 체험이다.
4. 고대. 중세의 세계관은 목적론적이다. 본질 또는 신이 있어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근대 기계론적 세계관에서는 세계의 움직임이나 목적이 합리적 이성에 의해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현상학자들은 세계가 목적론적이지도 않고, 기계론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세계는 온몸의 지각을 통해 열리는 지각의 세계이자, 삶의 세계이다.
5. 몸과 마음은 하나면서 둘이다. 몸인 마음은 다른 몸을 바라보며 그 몸을 대상화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대상화하나 다른 몸, 즉 타자로 인해 나의 대상화를 경험한다. 즉 몸인 타자에게 보이는 존재이다. 몸들의 상호교환은 존재론적 토대를 요구한다. 그것이 "살'이다.
6. 몸을 회복한다는 것은 상실된 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몸은 나의 몸이 아니라 '몸자신'이다. 나는 몸을 통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인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살'의 이해는 '몸자신인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7.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존재의 포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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