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오후 1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6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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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박완서님의 글을 읽어 보았다. 딸아이가 ˝아빠 아직도 휘청거리는 오후를 읽지 않았어요?˝ 라고 핀잔을 준다~~^^ 1977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총 2권으로 되어있다.

아빠, 아내, 그리고 3명의 딸의 한 식구로 중산층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빠인 허성 씨는 전직 교감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자그마한 공장을 운영한다. 살아가면서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지키려고 애쓰지만 자존감을 점점 잃어간다. 아내는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허세가 날로 늘어간다. 첫째 딸 최희는 여러 번 맞선을 보고 나중에는 40대 유부남과 맞선을 보고 둘째 딸 우희는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장남인 민수와 결혼 준비를 한다. 세째 딸의 모습은 아직까지 소개하지 않고 있다.

1970년 말의 중산층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통용되는 이야기같다. 누구나 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런 갈등을 작가는 따스한 언어로 어루만져 준다.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술술 읽혔다. 소설의 언어가 모나지 않아 마치 구사한 된장찌게같다. 이번 기회에 박완서님의 전작을 읽어 볼 계획이다.



• 200
˝아빠 도와주세요. 네? 전 지금 비참해요. 왜 이렇게 비참한지 모르겠어요. 식을 안 올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이 너무 돈이 없는 가난배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실상 그 두가지를 다 대수롭지 않게 알았거든요. (...) 인습이나 돈은 아무나 야유하고 짓밟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저는 지금 그것들을 짓밟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한테 짓밟히고 잇는 기분이에요. (...) 때로는 언니가 부럽기까지 해요. 돈이니 인습이니가 얼마나 위대하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로요.˝

• 216
부모와 인습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시작한 바에야 왜 끝내 그런 것들로부터 초연히 자유롭게 살려 들지 않나. 저지르긴 저희들이 저지르고 나서 그 뒤를 치워주는 건 부모이기를 바라다니. 저희들이 저지른 일을 부모가 치워주길 바라지 않고 저희들이 감당하면 그건 저희들에게 귀한 양식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그걸 부모들이 치워주길 바라기 때문에 그게 더러운 똥이 되는 것이다.

• 236
초희는 자수성가 소리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근본은 가난뱅이란 소리하고 통하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가난뱅이란 누더기 속옷에다 희번드르르한 겉옷만 걸치고 만족하는 법이어서 그녀의 귀족 취미의 결백성에 위배됨을 면치 못한다.

• 293
아내는 많은 고생을 했다. 가난으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으며 살아왔다. 전쟁 중의 비인간적인 가난도 겪었고, 가난과의 싸움에서 남편의 손가락이 토막 나는 끔찍한 꼴도 봤다. 그러니가 아내가 돈 좋아하는 건 아내가 삶과 직접 부대끼며 얻은 그 나름으로 소중한 결론이요, 의미인 것이다.

• 323
허성 씨는 성한 오른손으로 손 같지도 않은 왼손 먼저 씻어주기 시작했다. 어루만지듯이 부드럽게 닦아냈다. 험악하게 이문 손끝을 일일이 비누질하면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그런 동작엔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애정이 깃들어, 보고 있노라면 손끝에서 새 손가락이 돋아나는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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