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박완서님의 글을 읽어 보았다. 딸아이가 ˝아빠 아직도 휘청거리는 오후를 읽지 않았어요?˝ 라고 핀잔을 준다~~^^ 1977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총 2권으로 되어있다.아빠, 아내, 그리고 3명의 딸의 한 식구로 중산층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빠인 허성 씨는 전직 교감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자그마한 공장을 운영한다. 살아가면서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지키려고 애쓰지만 자존감을 점점 잃어간다. 아내는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허세가 날로 늘어간다. 첫째 딸 최희는 여러 번 맞선을 보고 나중에는 40대 유부남과 맞선을 보고 둘째 딸 우희는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장남인 민수와 결혼 준비를 한다. 세째 딸의 모습은 아직까지 소개하지 않고 있다.1970년 말의 중산층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통용되는 이야기같다. 누구나 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런 갈등을 작가는 따스한 언어로 어루만져 준다.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술술 읽혔다. 소설의 언어가 모나지 않아 마치 구사한 된장찌게같다. 이번 기회에 박완서님의 전작을 읽어 볼 계획이다.• 200˝아빠 도와주세요. 네? 전 지금 비참해요. 왜 이렇게 비참한지 모르겠어요. 식을 안 올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이 너무 돈이 없는 가난배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실상 그 두가지를 다 대수롭지 않게 알았거든요. (...) 인습이나 돈은 아무나 야유하고 짓밟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저는 지금 그것들을 짓밟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한테 짓밟히고 잇는 기분이에요. (...) 때로는 언니가 부럽기까지 해요. 돈이니 인습이니가 얼마나 위대하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로요.˝• 216부모와 인습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시작한 바에야 왜 끝내 그런 것들로부터 초연히 자유롭게 살려 들지 않나. 저지르긴 저희들이 저지르고 나서 그 뒤를 치워주는 건 부모이기를 바라다니. 저희들이 저지른 일을 부모가 치워주길 바라지 않고 저희들이 감당하면 그건 저희들에게 귀한 양식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그걸 부모들이 치워주길 바라기 때문에 그게 더러운 똥이 되는 것이다.• 236초희는 자수성가 소리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근본은 가난뱅이란 소리하고 통하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가난뱅이란 누더기 속옷에다 희번드르르한 겉옷만 걸치고 만족하는 법이어서 그녀의 귀족 취미의 결백성에 위배됨을 면치 못한다.• 293아내는 많은 고생을 했다. 가난으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으며 살아왔다. 전쟁 중의 비인간적인 가난도 겪었고, 가난과의 싸움에서 남편의 손가락이 토막 나는 끔찍한 꼴도 봤다. 그러니가 아내가 돈 좋아하는 건 아내가 삶과 직접 부대끼며 얻은 그 나름으로 소중한 결론이요, 의미인 것이다.• 323허성 씨는 성한 오른손으로 손 같지도 않은 왼손 먼저 씻어주기 시작했다. 어루만지듯이 부드럽게 닦아냈다. 험악하게 이문 손끝을 일일이 비누질하면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그런 동작엔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애정이 깃들어, 보고 있노라면 손끝에서 새 손가락이 돋아나는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