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사 편력 2 - 근대에서 현대까지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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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나의 서양사 편력>은 북플 이웃님이 소개해 준 것으로 관련된 사진과 영화포스터도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혀졌다. 근.현대가 궁금해 2권 먼저 읽었다. 총 2권으로 99개의 내용을 세분화해 놓았고 1사건 당 1-3페이지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혁명후 영국이 독일에 뒤진 이유, 페미니즘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독일과 한국의 문맹율과 독서율, 그리고 나의 상식을 뒤엎은 것은 92장의 ‘반인륜 범죄‘ 단죄한 뉘른베르크 법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때 유태인 학살에 대해 독일에 대한 만행만 알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인들의 잔악상을 알게 되어 무척이나 놀랐다. 또한 나의 역사지식의 가벼움에 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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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독일과 일본의 과거 청산을 비교한다.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 일본의 뻔뻔스런 행태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물론 독일의 반성은 전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독일 이외의 나치 협력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을까? 같은 독일어권에 속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달랐다. 오스트리아인은 독일인보다 더욱 악랄했으며, 홀로코스트에서도 그들은 가담자 수에 비해 훨씬 큰 역할을 했다. 히틀러만 오스트리아인이 아니었다. 아이히만과 게슈타포 수뇌 에른스트 칼덴브루너가 모두 오스트리아인이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여섯 개의 죽음의 수용소 중 네 곳을 통제했으며, 600만명의 유대인 희생자 가운데 거의 절반을 살해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인들보다 훨씬 강력한 반유대주의자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인의 절대 다수가 독일과의 합병을 지지했고, 7백만명의 오스트리아인 가운데 55만 명이 나치 당원이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동맹국으로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러면서도 1943년 ‘모스크바 선언‘에서 ‘히틀러의 공격에 함락된 첫 번째 국가‘로 분류되더니, 급기야 전후 포츠담회담(1945)를 통해 보상을 면제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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