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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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어.'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과학자인 안나는 딥프리징 기술 개발을 위해 남편과 아들을 다른 행성 슬렌포니아로 먼저 보낸다. 그러나 그녀는 세미나로 인해 그 행성으로 떠나지 못하고 우주 연방은 경제적 이유로 정거장을 폐쇄한다. 안나는 떠날 날을 기다리는데 폐기 처분 임무를 맡은 남자와 만난다. 결국 안나는 슬렌포니아에 도착할 수 있는 보장도 없이 개인 우주선을 타고 떠난다. "우리는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 마냥 군단 말일세."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과학 발전에 대한 인간의 지나친 자신감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으며, 과학보다는 인간의 정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자연과 과학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상호의존관계임을 되새겨본다.

• 147
노인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입구를 등진 채로 정거장 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짧게 갈등했다. 놀라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기척을 내야 하나 생각하던 차였다. 노인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흘긋 보았다. 남자는 무심코 목을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녀는 빙긋이 웃고서 다시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 149
벽에는 공용어로 '우주여행자들을 위한 운행 시간표'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흐려져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시간들이 빼곡히 있었다. 서너 개가 넘어 보이는 로고판들로 판단할 때 여러 회사의 공용 정거장 같았다.

• 156
우주선은 비록 빛의 속도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동하는 우주선을 둘러싼 공간을 왜곡하는 워프 버블을 만들어서 빛보다 빠르게 다른 운하에 도달할 수 있었다.

• 159
"남편과 아들이 슬렌포니아로 떠나기로 했을 때, 나는 내 연구가 거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네. 실제로도 끝이 보였지.

• 166
"다급했어. 다급한 목소리로, 슬렌포니아 우주선은 내일이 마지막 출항이라고... 하더군. (중략) "콘퍼런스가 끝나고 곧장 셔틀을 타서 우주 정거장으로 향하기로 했지."" 성공셨습니까?" "아니, 실패했네

• 177
"언젠가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지. 언젠가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출항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슬렌포니아 근처의 웜홀 통로가 열리지 않을까...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 180
"한 번 생각해 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 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 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 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를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 18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187
낡은 셔틀에는 아주 오래된 가속 장치와 연료통 외에는 붙어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략)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랜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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