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배려를 위한 뉴스 사용 설명서 한국언론정보학회지식총서
오윤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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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떻게 신문을 읽어야 하나?
우리는 페이퍼신문이나 인터넷 그리고 TV를 통해서 뉴스를 만난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는 '뉴스를 읽으며 핵심을 찾아내기'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신문을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고 읽어야 하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각 분야별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신문을 제대로 읽는가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깊이있는 내용에 감탄할 만하다.


01 이용 동기: 확증 편향과 호기심으로부터
- 자기 배려의 관점에 서 유용한 정보란 이제껏 내 논리와 편견을 확증하기 위해 활용했던 피상적인 이야기에 "도대체 너는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며, 나와 상관 없다고 무시했던 세계를 경멸하거나 외면하지 않으며 나의 관계망 안으로 끌어안는 일이기도 하다.

- 뉴스를 이용할 때 '목적론적 집중'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루한 뉴스 이용 동기, 즉 타자의 악덕에 대한 호기심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자신에게 묻는 것이 필요하다.

-'관계적 앏'과 '목적론적 집중', 이 두 개념은 자기 배려를 위해 뉴스를 이용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키워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뉴스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02 정치 뉴스: 게이트키핑과 우애의 네트워크
어떻게 정치 뉴스를 봐야 할 것인가? 먼저 버리는 연습이다.

- 시의성: 어제의 문제보다 오늘의 이야기에 관심을 둔다.

- 저명성: 무명의 시민보다 유명한 정치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 갈등성: 협력과 공존의 이야기보다 싸우고 갈등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 흥미성: 따분하고 어려운 이야기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이런 것들을 소위 '뉴스 가치'라 하는데 이들 가치를 품고 있는 뉴스로 부터 완벽하게 결별할 필요가 있다.

03 경제 뉴스: 자본과 새로운 관계 맺기 23
- 비이성적 과열, 어려운 용어의 범람, 위기의 과장, 인간의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경제 뉴스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걸까?

- 자기 배려의 관점에서 경제 뉴스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돈을 어디에 투자하는냐', '돈을 어떻게 증식해야 하느냐'에 대한 정보를 얻는 창구 이전에 '돈을 어디에, 누구에 사용해애 하느냐'에 대한 정보를 얻는 창.

04 사회 뉴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
- 어째서 사회 뉴스는 삶의 어둠과 폭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뉴스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나의 마음 속에 있을 수 있다. 내 안의 무의식은 세상의 어둠,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면서 상당한 즐거움을 느끼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통해서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서 어떤 위안을 얻는 지도 모르겠다.

- 진정 사회 뉴스를 선용하는 방식은 이 재료를 버무려 삶을 새롭게 써 나가는 과정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에 움추려들지 않으며, 사회 뉴스에 배태된 죽음, 상처, 공포, 아픔 등의 불행의 표상들을 엄격한 진실의 요체로 현재화함으로써 참된 이야기의 장비를 갖추는 과정! 이를 미셸 푸코는 '불행에 대한 사전 숙고'라고 말한다.

-자기 배려적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삶이 아닐까?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예술가가 될 권리가 있다. 사회 뉴스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는 과정에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05 문화 뉴스: 타자와 에로스적 관계 맺기
- 문화 뉴스를 선용하는 전제 조건은 누군가를, 무엇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 그 사람 그 작품과 새로운 관계를 통해 어제와 다른 나를 구성하는 놀이를 해 보는 것, 우리는 '타자되기'를 통해 어제와 다른 삶을 창조해 갈 수 있다.

06 국제 뉴스: 프레임 너머 다른 길을 찾는 여정
- 뉴스를 보고 관련 시간과 공간을 마음속에서 떠올려보고, 그곳의 역사, 지역, 사람들의 이름을 실제적으로 표현해보고, 이 대상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이며, 그것이 내 몸과 마음에 어떻엑 들어올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훈련을 해 봐야겠다. 이 훈련을 거듭하다보면 한반도, 서구, 근대, 신자유주의에 갇힌 사유의 프레임이 조금은 넓어지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07 과학 뉴스: 질문에서 시작하는 탐사 여행
- 과학 뉴스를 접하는 장을 바꾸어야 한는데 <과학동아>와 같은과학 전문 잡지와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들이 집필한 칼럼은 일반적인 과학 뉴스와 상당히 결이 달랐다.

08 재난 뉴스: 망각에 대한 저항, 일상의 여울목
- 재난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것은 다른 면에서도 좋은 일이다. 나는 재난 뉴스를 보면서 우울하고 권태로운 일상이 특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인간이 그렇게 악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그리고 죽음이라는 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09 칼럼 뉴스: 스승 만들기와 경청 훈련
- 강유정(영화평론가) <경향신문>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정희진(여성학자) <한겨례> '정희진의 어떤 메모'
정윤수(문화평론가) <주간경향> '정윤수의 길위에서 듣는 음악'
김상욱(물리학자) <경향신문> '김상욱의 물리공부'
김연수(소설가) <채널예스> '김연수의 문음친교'

10 뉴스 쓰기: 파르헤지아를 위해
- 자기 배려 과넘에서 뉴스를 읽고, 뉴스를 명상하고, 뉴스를 쓰는 수행을 지속해 보려 한다. 이것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상식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목적하는 바는 뉴스가 주목하는 시간과 공간으로 정신과 육체를 이동하는 것, 그 시공과의 새로운 접속을 통해 어제와 다른 나를 상상하고 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 '파르세지아'는 '솔직히 말하기'로 번역된다. 과거의 습관, 관행, 인식으로부터 연유되는 '내 생각'을 먼저 세우고 난 후 거기에 맞추어 텍스트를 선별하고 끼워 맞추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앞에 놓인 텍스트를 바라보며 이것을 쓴 사람의 마음과 외부의 진실이 어디로 향한지를 마주하기 위해 노력한다.

- 손석춘 교수 <신문 읽기의 혁명>
조윤호 기자 <나쁜 뉴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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