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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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건모의 ‘핑게‘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애기로 넌 핑게를 대고 있어, 내게 그런 핑게를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웃을 수 있니?‘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공감이 거의 100%인 것이 있다. 김건모의 ‘핑게‘가 그렇고 최은영의 ‘그 여름‘이 그렇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가 내 친구의 옆자리에 앉아 마주 보고 있는 나에게 한 말. ˝우리 헤어져, 나 애랑 결혼할 거야.˝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 호프집에서 있었던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녀 또한 ‘내게 무해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점차 짙어진다.

낭랑 18세에 만난 이경과 수이. 첫 만남이 사고로 시작되었지만 친근감이 점차 사랑으로 발전한다. ˝수이 네가 없는 곳에 행복은 없어˝라고 했던 이경의 마음에 은지가 둥지를 틀고 이경은 결별을 선언한다. ˝마음 먹었으면 돌아보기 말고, 가.˝ 라고 수이가 말하는 대목에서 잠시 호흡이 멈췄다. ‘강물은 소리 없이 천천히 흘러갔다. 날갯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 마리가 강물에 바짝 붙어 날아가고 있었다.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알았다.‘ 오밀조밀한 문체로 깊숙이 간직되었던 나의 감성을 툭 건드려준 최은영 작가가 고맙다.

• 9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시작은 사고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이경이 수이가 찬 공에 얼굴을 맞았다. 안경테가 부러지고 코피가 날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경은 쩔쩔매는 수이와 함께 양호실과 안경점에 갔다. 고친 안경을 쓰고 수이의 얼굴을 봤을 때 이경은 처음 안경을 맞춰 쓰던 때를 떠올렸다.

• 36
수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경은 상상할 수 없었다. 수이는 이경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비슷한 감정조차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경은 은지에 대한 자기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 53
수이는 포개진 두 손을 정물을 응시하듯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먹었으면 돌아보지 말고, 가.˝ 수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 가 줘.˝

• 60
이경은 입을 벌려 작은 목소리로 수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강물은 소리 없이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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