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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
윌리엄 포크너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평점 :
🌲한국이나 외국이나 아버지의 ‘짐‘은 무겁기만 하다.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가족을 위해 소년의 아버지 애브너는 ‘불‘을 자기를 지탱해주는 수호신마냥 신성시 한다. 가족의 굴레와 아버지의 부도덕한 행위에 소년은 과감히 맞선다. 아버지의 방화사실을 알리고 난 후 총성을 듣고 ‘아버지‘하고 울부짖는 소년의 흐느낌이 숲속 새들의 울음소리와 합창이 되어 내마음이 아리다.
• 23
치안판사가 주재하는 재판이 열리고 있는 가게 안에는 치즈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게 뒤편에서 자신의 못통을 깔고 앉아 있던 소년은 치즈 냄새와 그 밖의 많은 냄새들이 콧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 29
다른 사람에게 쇠나 폭약이 그렇듯, 아버지에게는 불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깊이 내재한 주요한 요소, 그것이 없다면 숨을 쉬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요소를 온전히 지켜 낼 수 있는 무기였다는 것을, 그래서 존중하고 때때로 신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 30
˝ 넌 그들에게 다 털어놓을 뻔했다. 그자에게 다 말할 뻔했다고.˝ (중략) ˝ 너는 곧 어른이 될 거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네 혈육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걸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너를 지켜 줄 수가 없다.˝
• 35
대문앞에서 그는 다시 걸음을 멈추더니 뻗정다리로 서서 저택을 돌아보았다. ˝예쁘고 하얗군, 그렇지?˝ 그가 말했다. ˝저건 땀이다, 저 깜둥이의 땀. 아직 저사람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하얗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만. 저긴 하얀 땀까지 섞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 48
그는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의 귓속으로 총소리가 들려온 순간,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렸고, 소년은 자신이 멈춘지도 모른 채 소리를 질렀다. ˝아빠! 아빠!˝ (중략) 그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남들 사이를 숨차게 달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따. ˝아버지! 아버지!˝
• 49
별자리가 천천히 바뀌어 갔다. 머지않아 날이 밝으면 배가 고파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를 지배하는 건 추위였다. 그가 다시 걷기로 결심한 순간, 그는 자신이 깜빡 졸았다는 걸 깨달았다. 밤이 물러나고 부윰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쏙독새 울음소리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쏙독새가 일정한 높낮이로 계속 울자 다른 새들도 울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굳은 몸은 걷기 시작하면 풀릴 것이고, 이제 곧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새들이 물 흐르는 듯한 은빛 소리로 끊임없이 울어 대는 어두운 숲을 향해 걸어갔다. 그 울음소리는, 늦은 봄밤을 재촉하는 심장의 소리였다. 그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