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인간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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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인간'이란 그 순간이 지나면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작가는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평범한 직장인을 통해 현대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주변에 보면 차분하고 자기주장이 약한 사람들이 괄시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O는 자기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직장상사로 부터 멸시를 받고 동료로 부터도 소외당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양이 가족들에게도 무시를 당한다. 그나마 그녀의 곁을 지켜준 Q마저도 자기 남자친구와의 사랑으로 O에서 마음이 떠난다. 자기의 마음을 알 것이라는 회사의 전임자를 방문해보니 그녀 역시 인간의 모습이 아님을 본다.

​나무 젓가락을 쪼개고 몸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감으로서 주인공 O는 사회로 부터 고립되어 자기의 존재가 해체됨으로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부재하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불안, 고독을 한 인물을 통해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 119
O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증상이 처음 나타났던 때, 어쩌면 처음으로 자각했던 때를 되짚어봤다. 예전 회사에 다니던 때니까 넉달전인가, 월급은 삼개월치가 밀려 있었고 월급날이 지나면 빈 책상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만둘 거라고 미리 귀띔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퇴근길에 짤막한 인사를 나누는 것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O는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카드에 의지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 125
그즈음부터 뒷목과 어깨가 유난히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목을 돌리거나 기지개를 켤 때면 우두둑, 요란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이력서를 확인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왜 구인광고를 냈을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두달 반 동안 딱 한군데의 회사에 가서 면접을 봤다. 자신이 이력서를 보낸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인지 O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 134
남자친구가 출장에서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자 Q는 O에게 현관문 열쇠를 내준 걸 후회했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하루 일찍 서울에 돌아왔고 도착하자마자 Q의 집으로 달려왔다. O에게는 다음 날 저녁에 늦게 오면 좋겠다고 말해둔 참이었다.

• 139
O는 중지로 전임자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지금 와줄 수 있나요?라고 묻는 전임자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주소룰 받아적기가 쉽지 않았다.(중략) 그때, 젤리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눈으로 짐작되는 어떤 시선이 O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이봐요, 라고 부르는 순간 젤리 덩어리는 물처럼 확 퍼져버렷다. O의 안에서도 뭔가가 왈칵 쏟아졌다.

• 140
오늘 저녁 Q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O를 돌려보내는 기념으로 함께 고기를 구워먹으며 회포를 풀 생각이었다. O가 그렇게 부스러지는 건 잘 챙겨먹질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며 그동안의 서먹함과 어색함, 퉁명스러움을 다 풀어버리고 싶었다.

• 141
저녁 먹자, 하고 어깨를 짚는데 O가 와르르 부서져내렸다. 고양이를 쫓아냈어, 라는 말도 입안에서 그대로 부스러졌다. Q는 자신의 손바닥과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O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O의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조금 남아 있었다. 그걸 보며 Q는 아마도 좀전까지 O였을 부스러기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야 할지 빗자루로 쓸어담아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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