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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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라고 소설이 시작된다. 다이어트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점심을 거르지 않는다. 첫 대목부터 나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식당, 쉰 떡을 먹는 것, 대학에서의 시험 등등 조중균씨의 '자아 지켜내기'가 소설 속에서 생생히 그려낸 김금희 작가의 필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와 "나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 대목에서 그 회사 부장에게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 지금도 이 사회, 이 나라가 지탱되고 있는 것은 조 씨처럼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맡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 씨의 시 '지나간 세계'를 읽고 싶은 밤이다.

​• 45
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내가 무딘 탓도 있겠지만 구내식당 테이블이 육 인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못 앉으니까 여기 없으면 다른 자리에 있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 48
조중균씨 자리에는 거의 컴퓨터 크기에 버금가는 국어사전이 있었고 그 사전의 한 대목을 펼쳐 읽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원고가 앞에 없어도 그러는 걸 보면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아주 오랫동안 사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 걸로 아는데 사전을 또 읽다니, 기괴한 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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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균씨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업무시간에도 휴대전화 벨은 자주 울렸고 그러면 조중균씨는 복도 계단에 서서 소곤소곤 다정하게 통화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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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안 먹는 게 몸 가볍긴 해요. 건강 챙기시는구나.”
“아닙니다. 먹고 싶은데 참습니다.”
그때 거울이 있다면 내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왜요? 왜 먹고 싶은데 참아요?”
“식대, 아끼려고 그럽니다.”
“무슨 식대를 아껴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이고 무료잖아요.”
“무료 아닙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줍니다. 구만 육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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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조중균씨는 데모를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만에 풀려났는데 형사가 목욕이나 하고 들어가라면서 오천원을 셔츠 주머니에 꽂아주었다는 것이다. 조중균씨는 그게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목욕하고 들어가란다고 모욕을 느끼다니. 아무튼 그 뒤로 조중균씨는 셔츠 주머니에 늘 돈을 가지고 다녔다. 그때 그 형사와 마주치면 이자까지 해서 갚을 생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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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균씨는 교정 기한을 한 달이나 넘겨서 회사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직무 유기,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되었다. 소송이나 일인 시위를 벌일지도 모른다며 회사는 내게 경위서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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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육 인용 테이블이 없었다. 복수를 잊어버린 조중균씨도 없고 빈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조중균도 없었다. 나태한 조중균씨도 없고 내 사인이 적힌 수첩도 다행히, 아주 다행히 없었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있지만 이름이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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