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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평점 :
🌲현대 생활의 불확실성과 톱니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여느 단편 소설과 같이 '산책'이란 글도 몇 안되는 등장인물과 일상적인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임신한 아내와 소도시로 근무지를 옮기고 그곳에서 개와 멧돼지가 등장하고 숲에서 헤매다 문득 서울 생활을 동경한다. 글 속에는 필자가 숨겨놓은 보물을 있어 나는 오늘도 보물을 찾아보았다. 사나운 멧돼지 소리, 어둠 속, 툭하면 우는 임신한 아내, 하루살이들이 공격, 물컹한 짐승, 음침, 어두운 밤, 암흑, 통곡, 저승길, 사신, 한기, 신음, 먹구름, 차가운 공기, 무덤, 무거워진 눈 등등.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거의 잿빛이나 흙빛이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지만 '불안'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불어나는 것을 경험한 주인공은 다시 숨이 턱턱 막히는 서울 생활을 그리워한다는 설정으로 필자는 물레 방아처럼 무한히 반복되고 불안성의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다니던 회사를 퇴직 후 바로 <저녁의 구애>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며 약간의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 소설을 많이 읽은 필자에게는 '불확실하고 무질서한 세계'를 잘 나타내 준 카프카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이번 기회로 알게 되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이라는 노래 가사가 있듯이 '우리는 하얀 도화지에 매일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렇지만 대지에 발을 굳게 디디고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해준 편혜영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2020..1.20.월
인공이란 걸 의식할 수 없었으므로 그에게는 자연이나 다름없었다. 매연이 섞인 공기,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수종이 같은 가로수, 빌딩 숲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 따위가 그가 자라면서 경험한 자연의 대부분이었다. 푸른 하늘과 청명한 공기, 광활하고 너른 평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따위는 애당초 그의 삶과 관계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껏 검은 하수가 흐르는 단단한 아스팔트, 밤이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흥건한 건물의 도시 골목, 매연을 뿜으며 날쌔게 달리는 택시의 불빛 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무겁게 침묵하고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나무로 가득 찬 숲과 그 숲을 품은 소도시가 싫어졌다. 모든 길을 감추는 숲에 비하면 한눈에 모든 길이 훤하게 들어오는 도시는 그야말로 천국에 가까웠다. p.146-147
• 124-126
아내는 임신 중이어서 무척 예민해져 있었고 자신과 뱃속 아기의 고통에 무심하다며 툭하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와중에 그는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아내도 찬성한다.
• 127
아내가 자고 있는 사이 산책을 나오는 데 하루살이들의 등쌀에 숲으로는 산책을 가지 않는다.
• 118-134
시골집은 전 지사장의 모친이 임대업을 하고 있어 111번지로 얻게 되었는데 집을 못 찾다가 지사장이 전화로 109번지 문을 통과해야 나온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개가 달려 들었고 그는 놀란 아내를 진정시킨다. 109번지 지하를 지나자 3층 건물의 111번지가 나타난다. 다소 음침해 보였지만 아내는 만족을 한다. 그런데 아까 그 큰 개가 따라다녔고 짖는 소리에 불면이 시작되어 서너 시간 잠을 잔다.
• 134-135
이사 오던 날 울던 멧돼지가 다시 울었고 아까 그 개는 놀라 삼층에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와서 낮게 으르렁 거린다.
• 136-139
서류를 정리하는 중에 아내는 개가 짖는 소리에 언제 퇴근하냐며 엉엉 통곡하기 시작했고 그는 외출 신청서를 제출한다. 한숨 푹 자고 싶어 한다.
• 140-147
그는 개와 함께 약수터가 있는 산책로를 들어선다. 어두워졌을 때 그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고깃덩어리를 꺼내 개에게 주었고 그것을 먹은 개는 토하고 설사를 한다. 끙끙거리는 개를 두고 그는 숲으로 계속 돌아다니다 먹구름을 낀 하늘을 보게 된다. 이윽고 하루살이들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며 거기 누구 없느냐고 크게 소리치지만 적막만이 감돈다. 이 와중에 그는 서울 생활을 동경하며 천국 생활과 견준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와서 전화도 못 한다.
• 147-149
어디선가 낯선 소리를 듣게 되는데 멧돼지 소리였고 죽어가는 개의 소리도 듣는다. 갑자기 기침이 나고 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죽은 개를 발견하고 한기를 느낀다. 이에 담배를 꺼내다 집 열쇠를 잃어버리고 담배만 피워댄다. 라이터 불꽃 주위로 벌레들이 몰려들고 라이터를 관목 숲으로 던진다. 하나 이때 잠이 몰려온다. 자꾸 눈이 감기고 시커먼 어둠이 그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