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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필사본...
3개월 전인가 어느 선생님에게 필사할 수 있는 책을 부탁드렸더니 여러 권중에서 김애란의 <칼자국>을 권해주셨다. 바로 구입해 읽었다. 제목 그대로 소설 속의 단어들이 내 가슴에 별처럼 박혔다. 두부를 칼로 썰듯이 군더더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함‘ 그 자체였다. 이번엔 단편소설 함께 읽기 시리즈 중 첫 번째 <침이 고인다>이다. 예전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카페모카를 마시다가 드립 커피를 마신 느낌... 껌 한 통을 남기고 떠난 엄마. 껌을 씹으며 기다린 후배. 그래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사건들을 떠 올려볼 때 침이 고였다는 후배. 바쁜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며 돌보지 못함에 마음 아팠을 선배... 현실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마음 한쪽에 겨울 바람이 쑤욱 들어온다.
나의 감정을 깔끔하게 드러내준 김애란 님께 감사드린다.
2020.1.4.토
알람이 울린다. 어둠 속, 다급하게 깜빡이는 휴대 전화 불빛은 그녀가 하루를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경보와 같다. 아침마다그 작은 재난을 향해 손을 뻗는 그녀의 모습은, 한밤중 폭우를 만나 해변으로 쓸려 온 이방인을 떠올리게 한다.(p45)
하루란 누구라도 누구를 좋아할 수 있는,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사해질 수도 친절해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꼭 그러려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자신의 선의가 후배의 재담으로 보답받는 느낌을 받았다.(p57)
후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할 때는 말이에요. 껌 반쪽을 강요당한 그녀가 힘없이 대꾸했다. 응.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면 말이에요. 응. 후배가 한없이 투명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입에 침이 고여요.‘
그녀는 후배를 안다고 생각했다. 후배의 습관 중 부정적인 목록을 발견했을 뿐이데도 말이다. 그녀는 주인공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자처럼, 후배가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을 숨죽여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 자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거봐,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고 후배의 잘못에 환호했다.(p66)
입안 가득 달콤 쌉싸름한 인삼껌의 맛이 침과 함께 괴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괸다. 그녀는 웅크린 채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단물이 빠질 때까지 드라마의 ‘전송 완료‘를 기다린다. 어스름한 모니터 불빛 때문인지 쌉싸래한 인삼 맛 때문인지 껌 씹는그녀의 표정은 울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퍽 기괴해 보인다.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고, 울릴 리 없는, 깊고 깊은 밤이다.(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