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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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는, 아마도, 가끔은 그녀를 필요로 하리라.... 하지만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잠들고 깨는 데 필요하다거나 열정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만 필요로 하 뿐임을 그녀는 때때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가슴 아프게 고독들 되씹었다. <1장 17쪽>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저렇게 사냥꾼 같은 모피 옷을 입어서는 안 되는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순간 그녀는 그를 챙겨 주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는 그녀 나이의 여자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기에 꼭 알맞은 그런 부류의 청년이었다.
<2장 24쪽>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폴?" (중략)"당신은 이기주의자가 아냐. 당신은 일 때문에 바쁜 거잖아.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아니. 내 말은 당신에 대해 어떠냐는 거야.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3장 31쪽>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4장 43-44쪽>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건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중략)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6장 56-57쪽>

"폴, 진정해. 그런데 당신 그 풋내기와 뭘 했지?" 그가 물었다. "브람스를 들었지." 그녀가 중간중간 웃어 가며 말했다. "브람스 애긴 집어치워...""하지만 이건 브람스에 관한 애긴걸..." (중략) "폴, 난 당신을 완전히 믿어. 이토록 말이야! 당신이 그런 풋내기를 마음에 들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난 참을 수가 없어." <7장 71쪽>

"장난꾸러기 시몽, 당신의 편지는 너무 슬프더군요.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사실 난 당신이 없어서 쓸쓸해요.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상 잘 모르겠어요. 시몽, 빨리 돌아와요." <8장 78쪽>

메지와의 관계를 끝내는 대로 사태를 바로잡고 폴과 결혼하리라. 로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고 자기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었다. 그가 확신하는 유일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폴의 사랑이었고 몇 년 전부터 그녀에게 집착해 온 자기 자신의 마음뿐이었다. <10장 86쪽>

"당신과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한낱 풋내기 청년과의 불장난 이야기를 들을 줄을 생각 못했어."로제가 말했다. "당신이 벌이는 어린 여자와의 불장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겠지." 폴이 즉각 응수했다. "그게 훨씬 더 정상적이지."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폴은 몸을 떨었다. <13장 114쪽>

"당신은 지쳐 있어. 당신은 버림받은 남자 역할을 연기했지만, 그건 당신 자신의 상상의 소산일 뿐이야. 난 당신에게 애착을 느껴, 시몽. 몹시 집착하고 있다고. 요즘 일 때문에 생각이 딴 데 가 있었던 것뿐이야." 그녀가 말했다. <14장 125쪽>

그가 폴의 집에서 깬 이런저런 물건들은 적어도 100가지는 되리라. 그가 물건을 깰 때마다 폴은 언제나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깨뜨린 것은, 위스키를 담으면 독특하게도 금빛 도는 적갈색으로 보이는, 매혹적인 크리스털 잔이었다. 그녀의 아파트 안에서는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중략) 그는 다시 몸을 구부려 담배를 끄고, 잠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 자신은 지금 불행하다고 중얼거렸다. <17장 144쪽>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내려갔다. (중략)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18장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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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들이 묘사를 잘 한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며칠 동안 조금씩 읽어 나갔다. 맛있는 비스킷을 조금씩 깨물어 먹듯...
25세라는 나이에 감성을 짙은 이런 소설을 쓴 사강.
술, 도박, 마약 등 인생 전반에 걸친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그녀.
사회적, 도덕적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녀.
간단한 스토리를 밀도있지만 부드럽게 써내려간 필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평소 브람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었던 나는 과연 사강이 어떻게 브람스를
써 내려갈까 하고 궁금해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조용히 넘겼다.
클라라를 마음속으로 사모했던 브람스의 처럼 사강은 시몽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폴이 나중에 로제에게 간 것은 시몽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시몽에게 가야 하지 않았을까?
왜 시몽이 자꾸 생각날까?



말년에 코카인을 소지했다는 죄목으로 이런 명언을 남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 글귀를 읽으면 니체가 생각난다.

모든 궤도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할지 모르나 재미가 있을까?

​다음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알랭 드 보통이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강이 닮고자 했던 프루스트.

​이 책을 읽게 해준 프랑수아즈 사강님께 감사드린다.

2019.11.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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