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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 가장 절실하지만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일의 경제학
류동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는 늘 고민거리이다. 시간이 넉넉하여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대로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많아야 일주일에 한권이라면 좀 더 신중해진다. 몇 가지 경로로 읽을 책을 선정하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길을 통했다 바로 내 아내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은 아내가 고른 책이다. 아내가 먼저 읽었고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인터넷 맛집으로 소문난 곳 보다 더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는 횡재한 느낌이 든적이 있다. 바로 류동민이 지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매일 하고 있으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일하기',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한 저자의 고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묘사하자면 자본주의 경제란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위협'과 위협을 통한 '길들이기'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굴러가는 시스템이다" 본문 30 페이지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세상이 원하는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극단적 시각이라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의 위치를 위와 같이 묘사했다. 뒤돌아 보면 그동안 받아온 교육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 내가 받아온 교육은 인격을 고양시키고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리 단지 자본가들이 필요로 하는 '생산수단'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저자는 수학능력시험, 토익 시험 등 우리가 치루는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과정들이 결국은 노동의 지루함을 잘 견디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한 장치들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 즉 '노동'의 새로운 면이 때론 날카롭게 때론 부드러운 시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저자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이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많은 파업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분노한다. 대부분의 분노는 파업으로 인한 나의 불편함 때문이거나, 나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파업 소식을 듣게될 때이다. 요즘은 뜸해 졌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 파업이 꽤나 자주 언론에 등장했었다. 그리고 새벽 4시를 기해 파업이 시작되는 날이면 너나 할 것없이 길어진 배차 간격으로 인한 불편으로 파업 노동자들을 성토한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도 노동자임을. 지하철을 탈 때 나는 소비자가 되지만 직장에 도착하면 노동자가 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현실에 불만을 토로하고 변화되길 원한다. 굳이 연대의식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이면서 노동자인 나는 또 다른 노동자의 외침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끼치면서 내게 주어진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에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있다. 왜 우리 사회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가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죽기 살기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노동 시장은 아직도 노동의 공급이 수요보다 훨씬 많은 수요자 위주의 시장이다. 더 좋은 일자리가 아닌 일자리 그 자체에 목말라 있는 노동 후보군이 충분히 대기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노동 조건은 개선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넘쳐나는 노동 공급으로 인해 충분히 낮은 임금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유독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실을 비판한다. 자영업자라고 하면, 쉽게 말해 사장이다. 사용자가 되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의 삶은 늘 곤고한가? 자영업자는 가게를 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다. 가게를 얻고 실내장식을 하고, 장사에 기본이 되는 물건을 구입한다. 즉 고정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손님이 몇 명이 들건 고정비는 이미 지출된 돈이다. 따라서 자영업자는 손님이 뜸해지는 밤늦은 시간에도 가게문을 닫지 못한다. 심지어 몇 명의 손님을 받기위해 24시간 영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을 때 부터 나는 늘 '일'해왔다.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었고, 노동을 제공했고, 그 댓가로 월급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내가 제공하고 있는 노동에 관해, 그로 인해 정해지는 나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스스로에 대해서 그럴진대,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랴. '일하기 전에 몰랐던 것들'을 읽으며 노동자인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리고 더불어 일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 책을 읽은 충분한 보람이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