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위기 - 세계 최고 과학자들이 내린 후쿠시마 핵재앙의 의학적·생태학적 결론
헬렌 캘디콧 엮음, 우상규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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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에 이은 후쿠시마 제1원전 대참사는 내게 너무 충격이었다. 2011311, 지진 발생 약 8시간 뒤 원자로 1호기가 멜트다운(노심용융)을 일으켰다. 녹아번린 핵연료가 격납 용기 바닥에 고였고, 1, 2, 3, 4호기의 수소폭발과 1, 2, 3.호기의 멜트다운이 이어졌다. 그 이후 원전(原電)’(더 정확한 표현은 핵발전소)에 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한 권, 한 권 사서 읽게 되었다.

 

후쿠시마 핵참사 5주년에 맞춰 출간된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죽은 자들의 웅성임>과 함께 이 책을 주문하여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은 200쪽이 되지 않은 본문속에 원전에 관한 여러 방면의 글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글은 매우 간결하지만 내용은 핵심으로 꽉 차있다. 원전의 위험성과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우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중에서 몇몇 내용을 적어본다.

 

1>1> 오염물질을 주변과 분리해 수천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어떤 용기도 100년 이상 밀폐효과를 유지하지 못하며, 얼마 안 돼 방사성 원소가 누출되기 마련이다.(12)

 

2> 2> 2011년 이후 국내는 물론, 국제 에너지 정책의 맥락에서, 원자력발전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왔다. 국토의 절반을 잃고 국민의 절반이 피난해야 하는 위험을 생각할 때, 가장 안전한 에너지 정책은 원전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21, 간 나오토 전 일본 수상)

 

3> 3> 후쿠시마 원전은 도호쿠(東北) 지역의 태평양 연안에 있다. ...... 바람이 남쪽이나 북쪽에서 불어오면 방사능 물질은 도호쿠 지역을 지나 간토 지역까지 이동한다. 일본 법률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땅 1제곱미터당 4만 베크렐 이상의 방사능 물질을 포함한 구역은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 광대한 지역이 피난구역이 돼버린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사실상 그들을 버렸다. ...... 10만명 이상이 집을 잃고 피난길에 올라 현재 유랑자처럼 살고 있다. 더욱이 1,000만명의 주민은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지정돼야 할 곳에 남겨졌다. 그들은 매일 방사능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오염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24 ~26, 고이데 히로아키)

 

4> 4> 원전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잘 갖춰진 방어 설비와 깊이 있는 백업의 백업이지만, 심각한 사고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과소평가되고 있었다. 원자력과 관련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울게 없다. 유일하게 놀랄 일은 우리가 계속 놀라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31 ~ 32)

 

5> 5> 지진의 나라 일본에는 원자력발전소 54곳과 사용후 핵연료 2만톤 이상이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일본인 대부분은 상황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부와 전력회사들이 미디어나 교육시스템을 통해 원전의 안전 신화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얘기해왔기 때문이다.(33~34)

 

6> 6>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세슘137이다. 이 물질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도 계속 자연 환경에 머무르고 있는, 가장 많이 방출된 수명이 긴 방사성 핵종이기 때문이다. 세슘137의 맹독성을 이해하려면, 넓은 땅을 100년 넘게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하는 데 얼마나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지 생각해보면 된다. 2그램 미만의 세슘137을 방사성 가스나 연무형태로 2.5제곱킬로미터 범위에 퍼뜨리면 그 구역은 방사능 출입금지 구역이 돼 100년에서 200년 동안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40~45)

 

7> 7>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벨라루스에서는 너무 많은 아이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슘137이 생물 축적되지 않은 아이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일반적인 식재료가 얼마나 오렴됐는지를 보여준다. 벨라루스에는 세슘137에 심각하게 오염된 땅에서 200만명이 살고 있다. 이 오염된 땅에 살고 있는 벨라루스의 어린이 중 건강한 아이는 20%에도 못 미친다.(57~58)

 

8> 8> 매년 수만 톤의 핵 독극물을 만들어내는 원자력발전소를 즉시 멈춰 세워야 한다. 그 핵 독극물은 3,000세대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독의 유산이다. 이 치명적 독극물은 적어도 10만년에서 100만년 동안 생태계에서 격리돼야 한다. 만약 영구적인 격리에 실패한다면 언젠가는 이 핵 독극물이 인류와 다른 많은 먹이사슬 위에 있는 생명체들의 존재를 위협할 것이다.(62~63)

 

몇 몇몇 내용을 적어보았는데 이 이외에도 우리가 알아야 될 내용이 가득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책 후미에 <참고도서>란이 있지만 편저자인 헬렌 캘디콧이 영미 독자를 위해 작성한 것이어서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편집진에서 국내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참고도서를 작성하였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

 

더 많은 원전 관련 책을 읽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서 부족하지만, 필자가 그동한 읽은 몇몇 책명을 적어본다. 

 

 

1.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 다카기 진자부로 저, 김원식 역, 녹색평론사(2001, 2011. 4. 개정판)

 

2. 원전을 멈춰라  : 히로세 다카시 저, 김원식 역, 이음(2011)

* 초판은 1990<위험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푸른미디어에서 출간

 

3.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 고이데 히로아키 저, 고노 다이스케 역, 녹색평론사(2011)

 

4. 원자력의 거짓말  : 고이데 히로아키 저, 고노 다이스케 역, 녹색평론사(2012)

 

5. 원자력제국  : 로버트 융크 저, 이필렬 역, 따님(2002)

 

6. 체르노빌의 아이들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7. 일본원전 대해부  : 신문 아카하타편집국 지음, 홍상현 역, 당대(2014)

 

8. 후쿠시마 이후의 삶  :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좌담, 반비(2013)

 

9. 원전의 재앙속에서 살다  : 사시키 다카시 저, 형진의 역, 돌베개(2013)

 

10.원자력은 아니다  :  헨렌 칼디코트 지음, 이영수 옮김, 양문(2007)

 

이외에도 매우 주목할 만한 책이 <녹색평론>이다. 김종철 선생이 주관하는 녹색평론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관되게 원전관련  글들을 싣고 있다.

 

관심있는 분들은 도서관등에서 다음 녹색평론을 참고하기 바란다.

 

1) 20115-6월호 :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 특집호이다.

2) 20119-10월호 : 방사능과 상상력

3) 20123-4월호 : 후쿠시마 1, 핵 없는 세상으로

4) 20125-6월호 : 후쿠시마, 확산되는 재앙

5) 20139-10월호 : 원자력국가와 민중의 삶

6) 20163-4월호 : 후쿠시마 5, 반핵에서 탈핵으로

 

2014년부터 격월간인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고 있는데, 요샛말로 가성비 최고의 잡지다. 자연, 생태, 환경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정기구독을 꼭 권하고 싶다. 11만원이면 2년동안 정기구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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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지음 / 아카넷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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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무슨 책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단순한 여행기도 견문기도 아니다. 한편의 소설 같기도 하고 쿠바의 내밀한 속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르뽀 같기도 하다. 또한 쿠바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는 동시에 현재의 한국사회의 본질(세월호 참사)을 묻고 있는 시론(時論)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종 쿠바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쿠바라는 사회체제를 지상낙원이나 이상적인 나라로 말하진 않는다. 그곳 또한 많은 불합리와 비리가 있는,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지난 9월 <한겨레>에 실린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의 소개글을 통해서인데 정말 책값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저자의 웅숭깊은 눈과 글은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쿠바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2015년 이 책 말미를 쓸 무렵 미국과 쿠바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양국의 수교가 발표되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축하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때묻지 않은 2014년의 쿠바에 대해 아쉬움과 섭섭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돈으로 뒤덮히기 직전 마지막으로 쿠바인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전하는 희귀한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쿠바의 겉모습뿐 아니라 그들의 내밀한 삶과 고난에 찬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사는 쿠바인들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사족 : 아쉬움 하나!

수려하고 수준 높은 사진이 그득하여 쿠바 화보집으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지만 사진에 설명이 전무하다. 저자의 색다른 의도가 있었을지 모르나 저자만큼 쿠바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수정판을 찍을 때에는 보완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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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 가토 슈이치 자서전
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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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주 동안 이 책과 사랑에 빠진 듯 조금씩 음미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작년 <한겨레>에 서경식 교수가 이 책에 대해 칼럼을 쓸 당시만 해도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생태였는데 올 9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주문했다.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저자의 글은 시종 조용하고 온화하지만 깊은 성찰과 날카로움도 아울러 갖추고 있다. 저자는 돈도, 권력도 없고 어떠한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일본 사회의 주변에 머무르며 일본 내부 및 세계의 여러 곳을 깊이 응시하는 삶을 유지한다. 그것은 상대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상을 바라보는 냉철한 주변인의 시선이지 타자에 무관심한 방관자의 시선이 아니다.

 

국가의 선전에 맹목적인 추종을 거부하고 주변인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냉정한 시선을 잃지 않는 저자는 항상 의심하고 회의하고 사색하는 지성인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종전 후 어느 날 전차안에서 저자는 사람 좋아보이는 아버지나 부부를 보며 똑같은 사람이 어제까지 중국 대륙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인간의 본성이 본래 선한지 혹은 악한지 묻기 보다는 많은 인간을 악마로도 만들고 천사라도 만드는 사회 전체, 그 역사와 구조를 고찰하는 것이 더 온당할 것이라는 판단에 도달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이후 그의 사고방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어떤 인간도 악마가 아니기에 나는 사형에 반대하며, 전쟁은 어떤 인간이라도 악마로 만들기에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267)

 

저자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1919년 양의 해인 기미년에 태어난 저자는 성정이 온화하고 멋부리지 않고 물 흐르듯 낮은 음성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되 깊고 치열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저자가 더 분명히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고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강요할 수 있겠는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시간과 역사를 살아갈 뿐.

 

저자가 시종 견지하는 확고한 신념은 .... 생명의 가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렵고 그들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전쟁은 정치적 행위요 모든 정치적 행동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적인 목적을 위해서,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492)

 

그는 또한 베트남전쟁을 목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과학자로서의 인식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 문제다. 매일 폭격 아래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논의의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뜻이다.”(516)

 

 

저자의 날카로운 지성을 엿볼 수 있는 일화 한토막

[슈바이처 박사 관련 일화](363 ~ 366)

프랑스에서 알게 된 덴마크인 간호사가 저자에게 슈바이처 박사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가 현대의 성자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는 충격을 받으며 그녀에게 나는 어느 누구도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한 것은 이러한 것이다. “식민지 제국의 국민이 식민지에서 병원을 경영할 때에는 성자가 되기에 앞서 식민지 제국주의 자체에 대한 의견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식민지 제국주의야말로 위선의 체계이며, 개별적인 선의를 그 체계에서 억지로 갈라놓는 것이 체계 자체에 맞서지 않고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그러나 저자는 슈바이처 박사를 도우러 아프리카 오지로 찾아가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않기 위해 위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수개월 뒤 슈바이처 박사의 행태에 실망감을 토로하는 편지를 보내오게 되는데 저자가 그녀에게 성자를 믿지 않는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은 성자를 믿고 있던 젊은 아가씨를 믿었기 때문이고 그녀 내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경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지성과 따뜻한 감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억에 남는 몇몇 구절도 있다.

 

사랑은 시간을 잊게 하고, 시간은 사랑을 잊게 한다.”(프로방스어 속담) 342

 

젊은 연인들과 노인에게는 모든 날이 소중한 것이기에, 날씨나 환경은 아무래도 좋을지 모른다. 젊은 연인들에게는 미래가 너무도 길기 때문에, 노인들에게는 미래가 너무도 짧기 때문에.”(436)

 

말이 통하지 않는 것만큼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동료의식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없다.”(453)

 

“.... 두 인간이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기분이 통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분은 본인마저도 예측할 수가 없게 그지없이 변전하는 법이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477)

 

여행은 다시간적 경험이다. 두 개의 장소,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적 공간에는 각각의 달력과 각각의 축제, 회계연도, 계절,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절목을 붙인 시간이 있다. 물리적 시간은 당연히 공통이겠으나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다시 말해 살 수 있는 역사는 장소에 따라 상이하다.”(541)

 

끝으로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적어둔다.

1. 개인적으로 가토 슈이치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번역과 일본의 근대>라는 책을 통해서 였는데(마루야먀 마사오와의 대담 형식), 이 책 <양의 노래>에는 저자 가토 슈이치라는 사람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해설이 없는 게 아쉬웠다. 위에 언급한 서경식 선생의 한겨레 컬럼을 아쉬운데로 참고할 수 밖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7599.html

 

2. 책 초반부터 일본의 여러지명이 나오고 중후반부로 갈수록 전세계 각지의 체류지가 나오는데 원서에는 없더라도 번역서에는 좀 더 친절하게 해당 지도를 실었더라면 더욱 친근하게 책을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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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일기 - 200년 전 암행어사가 밟은 5천리 평안도 길 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9
박래겸 지음, 오수창 옮김 / 아카넷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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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흥미로운 독서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고전번역의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유려한 번역, 상세한 지도 및 사진 그리고 친절한 평설과 관련 사료를 통한 상세한 주석까지 고전번역이 갖추어야할 모든 것을 충족하고 있다.

    게다가 역자가 관련 분야의 전문 학자여서 해제 부분을 통해 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서수일기(西繡日記)』는 홍문관 부교리로 있던 박내겸(朴來謙,    1780~1842)이 43세 되던 1822년 3월 16일부터 동년 7월 28일까지 장장 126일 동안 평안남도 암행어사로 활약했던 당시의 생생한 기록이다.

 

   『서수일기(西繡日記)』의 서(西)는 평안도를 의미하고 수(繡)는 암행어사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암행어사는 허름한 옷 속에 비단 옷을 숨기고 남몰래 업무를 수행한데서 생긴 말이라고....

 

이 책은 짤막한 매일매일의 일기로 기록되어있는데, 저자가 꽤 성실하고 솔직하게 당일의 내용을 기재하고 있다. 업무를 마치고 왕에게 보고하는 서계와 별단 작성의 비망록 성격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본다.

 

   1. 이 책은 암행어사의 행적을 실제 경험자의 일기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진귀한 기회다. 우리의 통념과 달리 그 동안 암행어사의 실제 경험 일기는 많지 않고 더구나 번역된 책은 이 책 외에 박만정의 『해서암행일기』(이봉래 역, 고려출판사, 1976)가 있다고 하는데 벌써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이 책 『서수일기(西繡日記)』가 암행어사의 일기로는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암행어사는 말 그대로 행색을 초라하게 바꾸고 암행을 하며 각지를 순행하게 되는데 당시 신분을 감추고 암행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듯싶다. 낯선 사람의 출현은 누군가의 이목을 끌게 되고 곧 시정에는 암행어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곤 한다. 관아의 관속이나 주막의 주인 특히 눈치 빠른 기생들은 어렵지 않게 저자가 보통의 과객이 아니고 암행어사라는 것을 간파한다.

 

   3. 또한 당시 가짜 암행어사 행세를 하며 돈을 뜯어내는 사기행각이 자못 심각했던 모양인데 관아에서는 가짜 암행어사를 체포하고 또한 진짜 암행어사의 행적을 은밀히 추적하는 비밀 포졸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4/22 일기에 있는 내용이다.

 

   누군가 박래겸을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다가와 민간에서 붉은 실(紅絲)이라고 부르는 쇠줄(철삭, 鐵索)을 허리춤에서 꺼내 보이며 “길손은 이 물건을 알아보겠는가?”라고 말하자, 박래겸은 안돼겠던지 품에서 마패를 꺼내 보이며 “너는 이 물건을 알아보겠는가?”라고 응수하자 그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뒤로 나자빠지고 만다. 박래겸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너나 나나 모두 각자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이다.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되니 힘을 내서 일을 해 가자” 라고 말하며 먼저 자리를 뜬다.

 

   유쾌하고 해학적인 장면이다.

 

   4.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느끼는 것은 박래겸이 나름 성실하고 나쁘지 않은 관원이기는 하지만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암행어사는 아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는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성천부사 이기연에게 찾아가 신분을 밝히고 접대를 받고 밤새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속들 중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다.(눈치 빠른 아전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5. 또한 기생들과 두 번이나 동침을 하고 순천 기생 부용과는 시와 음악을 논하고 귀경길에 영화 같은 재회를 하기도 하는 등 좋게 말하면 낭만이고 심하게 말하면 방만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를 일기에 기록한 것은 솔직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 만연한, 그래서 문제의식조차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6. 역자 오수창은 단지 일기를 번역만 할 뿐 아니라 평설을 덧붙이고 있는데 정말 긴요하고 독자가 궁금해 할 만한 사항을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관련 사료와 다른 학자의 연구자료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평설이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책을 더욱 생동감 있고 폭넓은 이해를 하게 한다.

역시 번역은 관련 분야의 학자가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정성껏 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7. 상식을 깨는 팁

   역자가 우리의 상식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암행어사의 권한에 관한 것이다. 암행어사가 고을 수령의 잘못에 대해 가하는 가장 큰 징벌은 창고를 폐쇄하는 것 즉 봉고(封庫)이다. 이는 수령의 업무를 정지시키는 효력이 있다.

 

   우리는 흔히 춘향전 등에서 “봉고파직”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암행어사는 봉고만 할 수 있고, 파직을 포함한 관리의 임면은 국왕의 권한이었으므로 암행어사가 멋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봉고 처분이 내려지면 수령의 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도의 관찰사가 중앙에 파직을 건의하게 되고 관례상 해당 수령은 파직 후 처벌을 기다리게 된다.

 

   8. 옥의 티 하나!

   책이 정말 정성들여 만들어져서 흠을 잡기 힘든데, 오타 하나가 있었다.

144쪽 5행의 “맞아들이는 품이 꽤나14 정성스럽고...”라고 되어있는데 14는 삭제해야 할 듯! ^^

 

   결론적으로 매우 흥미 있고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다. 정성들인 번역을 담당한 오수창 교수께 감사한 마음이다. 덧붙인다면 현재 구할 수 없는 위에서 언급한 『해서암행일기』도 새롭게 번역하여 선보여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암행어사의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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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2016-12-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는...
 
역사의 파편들 - 도널드 그레그 회고록
도널드 P. 그레그 지음, 차미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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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그레그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9년 그가 주한미대사로 내정되었다는 <한겨레신문> 기사를 통해서였다. CIA 출신으로 비밀공작을 담당해 온 그가 주한미대사로 부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기사 내용이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첫 인상은 당연히 어둡고 음습한 그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 부터인가 그는 대사직을 그만 둔 이후에도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을 보며 그에 대한 인상은 조금씩 변화해 갔다.

 

지금도 그 당시의 기사 스크랩을 보존하고 있는데, 다시 스크랩북을 찾아 확인해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도널드 그레그의 평생에 걸친 그의 발자취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그의 자서전이다.

 

우리와 연관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그의 역할, 한국의 CIA 지부장으로서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그의 생명을 구하는데 일조하고, 주한미대사로 근무하며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시킴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 작성에 기여하는 장면, 현직에서 퇴임한 후에도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직을 맡아 현재까지 남북의 평화정착에 힘을 보태고 있는 등 그의 평생은 우리의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의 현대사의 내밀한 속살 한켠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된다.

 

그는 요즈음 보수쪽 인사들로부터 친북인사쯤으로 경원시 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이고 그의 신념에 따라 평생을 성실하게 공직에 종사해온 사람이다.

 

그는 윌리엄스 대학 재학시절 철학과 학과장이던 존 윌리엄 밀러 교수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평생토록 간직하며 그에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한다.인간을 절대로 하나의 물건으로 대하지 말라, 인간은 타고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겉모습 뒤에 숨은 실체를 파헤쳐라

 

책은 시종 담담하게 진행되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매우 흥미진진하고 따뜻하다. 저자의 숨결이나 체온이 전해진다고 할까. 특히 일본 근무 시절은 그에게 있어 더 없이 행복하고 안온했던 시간이었던 듯싶다. 그가 그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느껴진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1> 그레그는 1952년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활동을 상술하지 않고 있다. 부끄럽고 슬픈 기억 때문일까?

 

참고로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랜덤하우스, 2008) 105쪽에는 그레그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활동에 대한 기술이 있다. 한국인 요원들을 훈련시켜 압록강 너머 중국 지역으로 침투시켰지만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참담한 작전 실패의 내용이.

 

2>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의 기술은 너무 표피적이어서 전쟁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에 대해서는 이해의 균형을 위해 다른 서적을 함께 읽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가 존경하는 에이브럼스 장군이나 저자 모두 베트남전쟁의 본질이나 성격에 대해 무지하거나 짐짓 눈을 감고 있는 느낌이다.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창비), 우상과 이성(한길사), 베트남전쟁(두레)을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전쟁의 역사적 배경

베트남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19458월 연합국의 승리로 일본의 점령에서 해방되었다. 그러자 인도차이나 반도를 100년 동안 지배하다 일본에 쫒겨났던 프랑스는 일본의 철수 후 다시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고 군사적 재점령을 시도했던 것이다.

 

호지명(호치민)을 지도자로 하는 베트남 인민은 독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프랑스군과 대결했다. 독립세력과 식민세력, 아시아 후진민족과 유럽 백인세력, 원시적 민병과 현대적 군대 사이의 8년 간에 걸친 전쟁은 1954년 디엔 비엔 푸에서의 프랑스군의 결정적 패배로 끝났다. 이것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또는 제1차 베트남 전쟁이다.(<베트남전쟁> 6)

 

프랑스와 베트남 인민의 전쟁이었던 1946~ 1954년까지의 1차 베트남전쟁이 종결되면서 제네바 휴전협정이 체결. 그 뒤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확대된 전쟁이 말하자면 2차 베트남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휴전협정은 북위 17도를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고, 남북 베트남으로 잠정적 행정 관할구역을 정한 뒤에, 2년 후인 1956년에 남북 베트남을 통틀어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 1954년 정전협정합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휴전성립 1년 이 지난 1955년에 미국이 총선거를 거부한 것이 제2차 베트남전쟁의 결정적이 원인이 되었다.(리영희, <대화> 341쪽 참조)

 

한마디로 그것은 프랑스 제국주의 · 식민주의를 반대해 싸운 베트남 인민의 80년의 투쟁과 반민중적 권력에 대한 민중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돼야 할 전쟁이다.(전환시대의 논리 3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 가장 보람 있고 평생을 바쳐 노력하고 있는 분야는 남북한 사이의 평화와 협력이다. 빛도 나지 않고 미국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기도 힘든 분야에서 애쓰고 있는 저자의 진심에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디 그의 노력이 작은 결실이나마 맺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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