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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 개정판, 한국어판 후기 및 해제 수록
노마 필드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유효한 일본에 관한 책 !
1.
일본의 현실과 속내를 차가운 이성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진단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따뜻한 내부자의 시선으로 세밀하게 살피고 있는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책이다.
2.
단순히 국외자의 시각으로 ‘일본’이라는 사회를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국외자이면서도 한편 일본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의 객관적 시각으로 일본의 현안을 거시적인 측면과 아울러 그 문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미시적인 움직임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이 책은 1988. 9. 19.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병으로 쓰러져 1989. 1. 7. 사망할 무렵, 즉 ‘천황’이 죽어가던 즈음, 다음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사건을 통해 일본의 당면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첫째, 1987년 자신의 고향인 오키나와 요미탄촌에서 개최된 운동기경기장에 게양되어 있던 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워버린 슈퍼마켓 주인 치바나 쇼오이찌, 둘째, 오래전 공무수행 중 사망한 자위대원 남편이 기독교인인 부인 자신의 동의 없이 신사에 합사하는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불복하여 소송 중인 나까야 야스코, 셋째, ‘천황’ 와병중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하여 우익의 총격을 받은 오키나와 시장(市長) 모또시마 히또시가 그들이다.
4.
저자는 이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이들이 주장과 해당 문제의 본질에 대해 상세히 드러내고 공론화한다. 이들은 ‘일본’의 주류에 속하지 않는 방외인이고 일본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치바나 쇼오이찌를 통해 일본의 오키나와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까야 야스코를 통해서는 야스쿠니신사를 비롯한 전국에 걸쳐 연계된 신사 문제, 정교분리원칙의 현실태 등을, 모또시마 히또시를 통해서는 ‘천황’의 전쟁책임 뿐 아니라 불가침적 존재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일본사회의 경직성과 파시즘적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5.
이 책의 저자 노마필드는 종전 후 일본여인을 엄마로, 미군의 문관으로 근무하던 미국인을 아빠로 하여 출생한 자로, 성장하여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학교수를 하던 자이다. 책 저술 무렵 1년간 일본으로 돌아와 사랑이 넘치는 할머니와 이모를 재회하며 개인적인 유년기의 추억을 책 곳곳에 기술하고 있는데, 이 점이 다른 책들과 확인히 구분되는 눈부신 지점이다. 어릴적 상처받기 쉬운 그 당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저자를 격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할머니와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이모에 대한 저자의 추억과 회상은 아름답다.
6.
최근에 읽은 <일본의 굴레>(테가트 머피)는 일본에 관한 객관적이고 풍부한 정보로 가득한 뛰어난 책이었는데, 이 책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는 출간된지 30여년이 지난 오랜된 책임에도 여전히 현재성을 가진 책으로 위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책이다.
일본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는 무거운 주제의 책임에도 저자와 일본의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따뜻함을 안겨주는 그런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즐거운 독서였다.
사족 :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창비가 고집하는 그들 회사만의 일본어 표기방식은 예의 그 옹고집과 아집과 독선이 느껴져 어떨 때는 욕지기가 나오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일본 전통방에 깔려 있는 ‘다다미’를 ‘타따미’로 표기하는 식이다(217쪽)
현지음 발음을 중시하여 장음과 된발음을 적용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미 우리 일상에 관습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것대로 존중하여 예외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