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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로드 -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이욱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2005년, <네이처>지에는는 '인류 최초의 국수'가 발굴되었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중국 칭하이성 황허 유역의 라자유적에서 4000천 년 전의 국수가 발견되었단는 내용이었다. 라자유적은 폼페이처럼 갑작스런 재앙으로인해 오랜시간 매몰되어있었는데, 그 안에 국수가 담겨 있는 그릇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유적 발굴자가 뒤집어져 있는 그릇 하나를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집어 들었을 때 국수가 발견되었고, 이 국수는 색도 변하지 않은 옅은 황색을 띠고 있었으며, 면의 지름은 0.3cm, 길이는 50cm정도로 지금의 면과 아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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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국수가 처음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어디에서, 누가 처음 국수를 만들었을까?'
'왜 그들은 국수라는 기묘한 모양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
'어떤 여정을 거쳐 국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을까?'
_ <누들로드>, 18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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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언제, 어디서부터, 누가, 어떻게 시작하여 먹기 시작했을까?라는 어찌보면 아주 황당한 호기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KBS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프로듀서인 이욱정PD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 '누들로드'라는 아주 발칙한 이름을 명명한 이욱정PD의 책 <누들로드>는 아시아인, 아니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식인 국수의 기원을 찾아 떠난 국수 문화 대장정이다. 런던의 한 누들바에서 떠오른 그의 궁금증은 중국과 한국, 일본, 태국, 부탄, 이탈리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국수의 원형을 찾고,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전파되었으며, 어떻게 변화되어 각 지방에 정착했는지를 파헤친다. 이 책은 이 다큐멘터리의 집약체이자 다큐멘터리에 못담았던 뒷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라자 유적지에서 발견된 국수가 사라졌다는(발굴 후 급속히 부식되어 흙먼지로 변해버려 지금은 사진자료 밖에 안 남았다고 중국 사회과학원의 왕렌시앙 박사가 말했다)이야기에 기획 자체가 초창기에 무마될뻔한 위기도 맞지만 누들로드 제작팀은 곧바로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신장웨이우얼자치구로 향한다.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은 2000여년간 실크로드의 거점으로써 동서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다양한 이민족들이 거주했던 지역이었다. 전문가들이 이 지역을 최초의 국수 발현지라고 추측하는데는 이 지역에서 2000년 이상의 세월을 견딘 미라와 음식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루무치, 투루판을 달려 화염산으로 향한다. 화염산 '마왕퇴'고분군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중에서는 최초의 국수일지도 모르는 '화염산 국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화염산 국수가 원형일지도 모르는 '라그만'국수를 맛보게 된다. 제작팀은 단언하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이 라그만국수를 최초의 국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실제로 위구르족을 비롯하여 타지크족, 우즈벡족 등 다양한 중앙아시아 민족들이 화염산의 고대 국수와 흡사한 방식으로 라그만을 만들어먹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보았고, 라그만을 만드는 기술은 묘기에 가까운 수타 기술에 비해 원시적이었으며, 면발 또한 수타보다 훨씬 두꺼웠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누들로드는 중국 한족에서 중앙아시아로가 아닌 중앙아시아에서 중국 한족으로 전파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서를 찾기 위해 취재팀은 중앙아시아를 누비며 각양각색의 국수를 만나게 된다. 대패가 나무를 깎듯이 면발을 뽑아낸 '도삭면', 단 하나의 국수가 한 그릇의 국수를 만든다는 '일근면', 젓가락으로 반죽을 떼어내는 '젓가락면', 고양귀처럼 면이 생겼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고양이귀 국수', 그리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수타면' 등이 그것이다. 쌀국수도 등장하는데 부인이 매번 다리를 넘어 끓여다 주던 쌀국수를 먹고 장원에 급제했다 하여 이름붙여진 '과교미선', 태국인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먹었던 '카놈친' 등 처음들어보는 수많은 국수들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를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영상으로보면 다채로운 국수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다루지 못하는 국수에 얽힌 재미난 전설과 일화들, 그리고 국수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국수처럼 길게 이어지면서 피어나는 훈훈한 사람 이야기는 책에서만이 만날 수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 하나가 아시아인을, 전 세계인의 입맛을 즐겁게 할 수 있다니 놀랍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그런말이 있다. "이제 당신의 주방이 누들로드입니다." 책을 덮는 순간 엄마의 손맛이 베어있는 칼국수가 너무나 먹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