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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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의 첫번째 마부는 지촌의 마지막 목동이 되었다.
지촌 사람들은 말과 곰보에 대해 모두들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말을 키울 수 있는 목장을 마련해주었고
아울러 샘물 옆의 큰 나무 아래에 작은 집도 한 채 지어주어  
목장지기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은 속도를 높여 앞을 향해 나는 듯이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_ <소년은 자란다>, '마지막 마부' 43쪽 중에서

 
   
 

모든 농촌 마을이 산업 발달의 힘입은 '기계 혁명'을 피해갈 수 없었듯이 티베트와 쓰촨 경계에 있는 '지촌'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마를 섬기고 자연을 숭배하는 이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곰보는 마부다. 그가 처음 말을 끌고 마을에 나타나 마차를 끌며 달리자 마을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고 곰보는 득의양양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하지만 몇년 새 마차는 도태된 사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트렉터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곰보는 마차에 대한 애정과 말에 대한 사랑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으로 올라가 말과 함께 목동으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그는 지촌 마을의 처음이자 마지막 마부가 되었다.

잔잔한 여운과 푸른 하늘 아래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정취가 마음을 울리는 책 <소년은 자란다>는 티베트의 '지촌'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 13편의 단편집이다. 중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경제적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독측한 티베트 문화를 지키려 노력한 장족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도시에서 온 홍위병으로부터 자신들의 사원을 지키고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하기 위한 라마들의 이야기나('라마승 단바'), 끝까지 자연에 대한 숭배정신을 지키며 자신 역시 자연으로 돌아간 곰보의 이야기('마지막 마부')는 티베트라는 독특한 그들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고귀하고 순결한 정신을 보여준다.

티베트나 몽골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그동안 많았지만 소수민족 작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을 접한건 이 책이 처음었다. 몽골민족의 정신과 초원에서의 삶의 묘사가 탁월했다는 <늑대토템>역시 한족작가가 한족의 관검에서 몽골 문화 속에 들어가 어떻게 적응을 하고, 어떻게 그들 문화의 정신을 찾아가는지를 서술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자란다>의 작가 아라이는 티베트인의 한 사람으로, 자기에게 익숙한 티베트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 때문에 '라마'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자연에 대한 묘사가 다른 그 어떤 책보다 뛰어나다. 이 책이 의미가 있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 때문이다.

티베트인들에게는 단순한 순박함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동생을 낳고 편히 잠든 어머니와 동생의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곰과 정면으로 맞선 거라의 모습이나('소년은 자란다'), 석가모니처럼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 돌아와 그 안에서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묵묵히 걸어가는 아군두바('현자 아군두바)는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정신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문화 속에서 살아온 아라이이기 때문에 묘사가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한다.

티베트에 가본적은 없지만 베이징의 '중화민족박물관'에서 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적이 있다. 그들의 민속 춤에서는 자유분방함과 동시에 어떠한 보이지 않는 절제가 보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그들이 보여준 그 춤이 떠올랐다. 다소 낯선 서술 방식과 독특한 문화색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티베트의 정취와 그들의 정신을 엿보고 싶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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