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 1 - 관 속에서 만난 연인
앤 포티어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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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의 저주라.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소재네요. 엄청 재밌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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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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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겐타. 투박하게 생긴 이 아저씨는 <고역열차>라는 소설로 144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수상은 글렀다 싶어서 풍속점으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축하해줄 친구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습니다." 뭔 이런 쓸쓸한 수상소감이 다 있나, 수상소감도 작품따라가나, 대체 이 아저씨 얼마만큼 우울한가 궁금해 그의 책을 잡고야 말았다.  

 

그의 작가 소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초등학교 때 아버니가 범죄를 일으켜 수감된 뒤에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가 성범죄였다는 사실을 처음 전해듣고 등교를 거부하면서 세상과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을 나와 부두 하역 노동이나 경비원, 주류판매점 배달원, 식당 거주 종업원 등 육체노동으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작가의 이력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간타(이름도 비슷하다. 아마도 자신을 투영해서 주인공의 이름도 그렇게 지은듯)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수감, 그것도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가 성범죄임을 알게 된 후 세상과 단절한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간다. 그날 벌어 그날 배고픔을 달래는 일용직 노동을하며 일당 5천 5백 엔으로 하루를 건사하고, 친구 대신 라디오를, 여자 친구 대신 대딸방(일종의 집창촌)을 드나들며 외로움을 달랜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밥값, 교통비를 제하고 남은 돈으로 사케 한 잔을 목으로 넘길 수 있을 때다.  

 

이 소설이 충격적인 간타의 나이가 19살이라는 데 있다. 그의 삶이나 그의 사고방식은 여느 19살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미 세상을 달관한 듯한 시니컬한 태도나, 그저 하루 버티면 성공이지라는 삶에 대한 그의 사고방식은 19살이 하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관적이다. 간타가 노동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될 뻔했던 또래인 기타마치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말도 안 되지만 꿈을 꿀 수 있고, 모든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야할 19살. 간타에게 그 모든 것은 아무짝에 의미 없는 일이고, 귀찮은 일이며, 심지어 쓸모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제목 그대로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고역열차'에 몸을 싣고, 그날 저녁값을 벌어 다시 내일 고역열차에 오를 준비를 하는 것이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소설에 특별하게 재미있는 서사 구조를 가진 소설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금 우리 청춘들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서글퍼졌다. 니시무라 겐타가 그런 무의미한 자신의 삶을 '문학'을 만나면서 탈출했듯이, 소설 속 간타도 그리고 우리들도 하루빨리 고역열차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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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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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과 계집의 사랑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로지 육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음행이요 음사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금기가 영원히 변함없는 진실일까?

누가 사랑을 남자와 여자, 발기한 다리밋자루와 젖은 음부의 일일뿐이라고 정해놓았던가?

사랑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본능, 사람이 정해 놓은 경계는 결국 사람에 의해 배반당하리라.

_ 290쪽 중에서

 

 

내에 음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가려야 하고, 무슨 소리도 쉬쉬해야 하는 궐내에 퍼진 이 소문의 속도는 그 어떤 위급한 국가적 사안보다도 빨랐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이들에게 소문의 힘은 그 어떤 권력보다도 힘이 강했던 것이다.

 

그 소문의 내용은 더욱 희괴했다. 성군 세종의 며느리이자, 조선의 다섯 번째 왕인 문종의 두 번째 부인 순빈 봉씨가 궐내에서 궁녀 소쌍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매일 밤 봉빈에게 불려간 궁녀는 다음날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방에서 나왔고, 소쌍이 봉빈의 방에 든 날 밤이면 모든 궁녀를 물리치고 단 둘이서만 밤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성리학이 지배하고 유가의 지엄함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선의 궐내에서 동성애는 괴이함을 넘어 망조로까지 여겨지는 중대 사안이었다.

 

<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이번에는 목숨을 걸고 사랑이라는 금기에 도전한 조선의 여인 순빈 봉씨에 주목했다. 궐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가로 쫓겨난 봉빈은 소설의 제목 <채홍>이 의미하는 바대로 여성을 사랑한 여성이다(채홍은 무지개를 뜻하고,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의 국제제적 상징이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한 것은 봉빈이 사랑한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고자 했고, 누군가에게 절실하게 사랑받고자 했던 그 욕망을 모두 거세 당한 궐내에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하고자 했던 그녀의 욕망이었다.

 

 

봉빈은 그로부터 <열녀전>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사내가 앉았던 자리는 물론 앞으로 앉을 자리까지 가리는 여자들을 모범으로 추앙하고 찬양하라니

기가 차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봉빈은 체증이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탕탕 쳤다. _ 140쪽 중에서

 

 

봉빈은 세자(훗날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세자의 첫 번째 부인은 조선의 국모로서 보이면 안 될 시기와 질투를 보였으며, 조신하게 남편을 섬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봉민은 그런 소문을 건내 들으며 자신만은 그렇지 않으리라, 자신만은 세자를 잘 보필하고 사랑받으며 장차 조선의 국모로서 손색없는 세자빈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궁에 들어가는 순간 봉빈은 문종의 첫 번째 부인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궁이란 본래 욕망이 거세된 공간이었다. 사랑의 마음은 사치였고, 악이었으며, 금기였다. 그런 궁의 공기를 마시며 자라온 세자 역시 부인을 맞이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자 세자빈이 있는 곳은 발걸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어릴적 동무들이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수였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은, 그리고 궁 안에서 왕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 외에는 모든 활동이 금지된 세자빈은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봉빈 역시 궁에 들어온 뒤에 이 같은 궁의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 곁에서 자신의 욕망을 일깨워주는 궁녀 소쌍을 만나게게 된다. 이 궁 안에서 그녀의 욕망을 분출시킬 수 있는 대상은 소쌍밖에 없었고, 그 사랑의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줄 사람 역시 소쌍 뿐이었다. 봉빈은 이 모든 것에 까발려져 궁에서 쫓겨나면서도, 사가로 돌아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외면을 당하면서도 자신은 사랑했노라, 후회하지 않노라 외친다. 

 

메인 이야기는 봉빈이 입궁하면서부터 사가로 쫓겨나기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욕망이 거세된 궁궐 속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뻗어져 있다. 부인이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육체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시는 결국 잘못된 욕망 분출의 방법으로 부인에게 매질을 하기 시작하고, 왕의 여자라는 미명 아래 평생을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가야 하는 궁녀들은 음모와 배신이라는 삐뚤어진 방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한다. 봉빈 말고도 궁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행간 속에 숨겨진 주변인들의 욕망을 읽어내는 것도 이 책의 재미다.

 

작가는 봉빈의 마음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봉빈은 조바심, 그리움, 사랑의 갈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솔직한 감정 모두를 부인의 도리에 부적합한 상스러운 일이라며 혐의하니, 그녀에게는 사랑이 죄였다." 아마도 작가가 이 책 <채홍>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선시대의 동성애라는 센세이셔널리즘이 아니라,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능, 욕망마저 이성으로 억누르고 살아가야 했던 안타까운 우리 역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지요. 애초에 못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 남긴 김별아의 이 말이 책을 다 읽고나자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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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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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첫째, 그는 웃음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1Q84> 그 주제의 무거움 때문에). 둘째, 그는 우리네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4차원 세계의 사람일 것이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상상력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는 매우 고리타분하며 보수적인 아저씨일 것이다(이건 특별한 작품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냥 웬지 그럴 것 같아서, 혹은 사진 때문에?).  

 

사실 이 같은 오해 때문에 <잡문집>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큰 기대는 없었다. 정말 '잡!문!'을 모아둔 책이니 작품에 대한 뒷 이야기나, 쓰다 만 조각 글들, 거기다 자기 잘난척이 가득한 오만한 글들이 실려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편 한편 넘기다보니 '내가 생각하던 하루키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 정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잖아!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만날 때 우리는 그 작가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소설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게 마련이지만, 자신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올 수 밖에 없는 에세이의 경우라면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자신을 숨길 수 없으며, 아무리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고 싶어도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잡문집>을 통해 유쾌한 하루키씨를 만날 수 있다. 하루키의 작품이라고는 꼴랑 두편 반(<1Q84>와 <상실의 시대>, 그리고 반쯤 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뿐이니) 읽고 이 책을 읽었으니 아직 그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난 분명 하루키에게 반해버렸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도 그러한 내 정신 안에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픽션=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_ 머리말, 15쪽 중에서

 

 

이 책 <잡문집>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이런저런 목적으로 하루키가 써왔던 여러 책들의 서문과 해설, 영화 평론, 인사말과 메시지, 짧은 픽션 등이 담겨 있다. 그가 머리말에도 밝혀 놓았듯이 우리는 여러 글들 속에서 소설의 초기 단상을 발견하기도 하고, 작품 탈고 후의 생각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애 하나의 부로 엮은 <언더그라운드>작품에 관한 에세이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작품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들 덕분에 그 책을 읽고 싶어졌고, <잡문집>을 읽는 도중 그 책을 주문하게 만들었다.

 

제일 재미 없겠지라고 생각했던 '각종 인사말과 메시지'는 하루키의 유쾌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의외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었다. "수상은 매우 기쁘지만, 형태가 있는 것에만 연연하고 싶지 않고 또한 벌써 그럴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은 작품이 받는 것이니 나 개인이 이러쿵저러쿵 말할 처지는 못 된다","4월 중순에 <1Q84> 3권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품절은 곤란하니 그 직전까지만 활기차게 판매되었으면 합니다." 등등 그의 수상소감은 평소 하루키의 겸손함과 유쾌함이 묻어났고, 2009년 논란이 일었던 예루살렘상 수상 수락과 상을 받으러 가기까지의 작가로서 느꼈던 번뇌와 고민은 예루살렘상 수상 인사말 속에 녹아있다.

 

지인의 따님에게 보낸 결혼식 축사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멋졌고, 나도 언젠가는 이토록 유쾌한 결혼 축하 인사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만들었다.

 

그 글이 좋든 나쁘든, 그 글이 담고 있는 생각이 옳든 그르든, 30여 년간 묵묵히 소설가의 길을 걸어왔고,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독자 층을 이루고 있다면 그 작가는 누가 뭐래도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하다. <잡문집>에는 그런 하루키의 인생이 녹아있고, 그 글들은 '잡문집'이라 불리지만 그 어떤 소설 한 편보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굴 튀김을 좋아하는 하루키, 수줍음이 많아 남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 하는 하루키는 말한다. "소설가는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관찰해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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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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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은 것이 <뇌>였으니, 어림잡아 7,8년 전 일일거다. 책 잘 안 읽던 내가 그토록 재미있게 읽었으니 그의 작품 세계에서 받은 영향력은 꽤 컸을텐데도 이상하게 그의 책에 손이 잘 안 갔다. 베르나르 책 말고도 읽을 것이 쌓여 있었기 때문인 것도 컸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그 사이 베르나르가 발표한 <신>, <인간>, <파피용>, <키산드라의 거울> 등의 소설은 그 주제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책 <웃음>은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그 소재에 큰 흥미를 느꼈고, 이 책을 그 누구도 아닌 베르나르가 썼기 때문에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권의 23페이지를 넘어가는 순간 이 책은 지금 바로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제조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들이 만든 상품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상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죠.

의사들은 남을 치료하기는 해도 자기들 자신을 치료하는 데에는 서툽니다.

빅토르 위고는 다른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젖소는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고 말렸죠.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개 옷을 잘 입는 사랍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신문에 난 것을 믿지 않습니다."

_ 1권, 23쪽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 분홍색 어릿광대, 하트 모양 눈을 가진 키클롭스 등 수많은 애칭으로 불리며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리우스 워즈니악. 그 유명 코미디언이 올림피아에서 열린 자신의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내려와 심장 발작으로 돌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든 국민들에게 웃음을 전하며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한 코미디언의 사망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의 사망 정황에 모든 시선이 주목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정황이라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 마련된 자신의 대기실에 문을 잠그고 들어간 다리우스는 한마탕 큰 소리로 몇초간 웃더니 어느 순간 웃음 소리를 뚝 그치고 갑자기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한다는 것을 느낀 <르 게퇴르 모데른> 사회부 기자인 뤼크레스는 다리우스의 죽음 뒤에 음모가 있다며, 다리우스 타살설을 제시한다. 논리의 출발점은 제조업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기사를 믿지 않듯, 웃음을 파는 코미디언들이 혼자 있을 땐 웃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뤼크레스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코미디언의 사망 뒤에 감춰진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장장 두 권에 걸쳐 펼쳐지는 <웃음>의 출발점이다. 표면적으로는 그저 살인사건에 대한 추격전,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소설 같다. 실제로 1권의 절반쯤까지 읽었을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깐. "추리소설 + 소설과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유머 대사전'" 형식의 긴장감을 실어줬다 웃음으로 이완하는, 그런 형식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권의 절반을 넘어가는 순간 이 소설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한번 베르나르의 상상력과 박학함에 감탄했고, 이 한권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를 했고, 얼마나 깊이 '웃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웃음'이라는 코드로 역사를 재해석하고, '웃음'의 사회학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며, '웃음'이라는 도구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이 소설 자체가 '웃음의 성베'인 소설이었다.

 

 

유머는 일탈 또는 금기의 위반을 바탕으로 작동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중압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유용성이 있죠.

그런가 하면 유머는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알고 보면 여자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_ 1권, 315쪽

 

한 사회가 보여주는 웃음의 양상은 그 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말해 주는 지표의 하나일세.

유머의 양과 질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 상태를 가늠할 수 있지. _ 2권, 234쪽

 

뤼클레스는 최하위 문화로 간주되는 우스갯소리의 문화가 실제로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겨냥한 우스갯소리는 특히 중요했다.

평생토록 잊지 않을 만큼 마음속 깊이 각인되기 때문이었다. _ 2권, 248쪽

 

이제 권력은 대중의 웃음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어요.

그들의 지배를 보장하는 것은 불행을 잊게 하거나 상대화하는 능력, 그리고 따분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 주는 능력이죠.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힘이에요. 어떤 힘도 그 힘을 능가하지 못할 겁니다. _ 2권, 351쪽

 

 

다리우스의 죽음을 파헤지기 위해 위험을 무릎쓴 여기자 뤼크레스는 웃음의 힘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고아원에서 모욕과 수치를 경험하고 자살을 결심한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다리우스의 유머를 들었던 것이다. 엉뚱한 이야기에 몰입하고 웃고 있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시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뤼크레스는 다리우스의 유머를 들으며 힘든 순간들을 버텨냈다. 한 코미디언이 전한 웃음은 어른들의 조언보다, 성인들의 말보다, 책 속의 지혜보다 더 강력했던 것이다.

 

내게도 작지만 웃음의 힘을 결험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웃고 있으면 답답한 일상, 우울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다시금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그런 웃음 말이다. 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그들은 내게 스타라기 보다는 고마운 사람들이 되었다. 뤼크레스가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정작 기사에서 다리우스 웃음 뒤에 감춰진 어마어마한 진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고마움과,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한 국회의원이 개그 프로그램을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마침 유머 기사단 총본부(소설에 등장하는 유모 수호 단체) 유머 역사 대전에 실린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그는 기원전 389년 아테네에서 희극 공연을 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주로 시사 풍자였다. 철학자와 귀족을 조롱하거나, 전쟁만 벌이고자하는 정치인들을 풍자하거나, 사회 과정관념을 깨는 대담한 주제들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객석은 언제나 만원이었고 아테네 시민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어느날 권력자 클레온이 하수인들을 보내 극장을 봉쇄하고 그를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한다. 그리고 그는 극작가 활동 금지와 배상 책임을 받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다. 

 

몇 년이 지나고 어느날, 한 남자가 다가와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당신을 잘 알고 있다며 자신과 함께 어딘가로 가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반신반의하며 따라간 아리스토파네스는 깜짝 놀란다. 어느 지하 공간에 모인 50 여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들어가자 뜨거운 박수를 보내오는 것이었다. 그의 유머를 잊지 못한 시민들은 그를 위해 무대를 마련해주었고, 그가 계속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낼 곳과 마련해주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사이 권력자 클레온은 권자에서 밀려났고, 아리스토파네스는 다시 작품을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둔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와 그 고소 사건이 겹치며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웃음은 원래 풍자와 해악에서 출발했다는 것, 금기를 깨고 일탈을 추구하면서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어떤 권력으로도 사람들의 웃음을 막을 수 없다고 말이다. 이 땅의 웃음을 전하는 모든이들에게 마음 속 깊은 감사를 전하며, 웃음이라는 주제로 이토록 놀랍고 멋지며 장난끼 가득한 소설을 써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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