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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아웃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겨울이면 설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그렇게 땡겨요. 지구종말, 살인, 인질극, 테러, 미스터리 기타등등 어떤 종류의 사건이 얽히든 모조리 취향 같아요. 눈 펑펑 내리는 밤 어느 곳에서든 고립되기만 하면요.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곱아드는 몸과 마음, 차라리 이대로 눈속에 파묻혀 잠 같은 죽음에 빠지고 싶다 유혹을 느끼면서도 인류애 때문에 편안함을 포기하고 한 발 또 한 발 눈밭을 전진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있죠. 전 그런 작품이 너무 좋더라구요. 정작 저는 겨울이면 집안에 굴 파는 스타일인 건 모르는 척 합니다😆
도가시가 근무하는 곳은 오쿠토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저수량을 자랑하는 댐의 발전소에요. 댐의 운전원인 도가시는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류의 남자거든요. 덕분에 여자친구에게도 채여 외로운 솔로 인생을 구가하지만 그렇대도 산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마찬가지로 댐의 운전원이며 산사나이인 요시오카는 조금 더 운이 좋았어요. 연인인 지아키가 산이 좋아 내가 좋아 결정해! 라고 말하는 대신에 요시오카의 프로포즈를 받아줬거든요. 그러나 두 사람이 결혼까지는 가지 못했는데 요시오카가 댐 근처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을 구하려다 사망하기 때문이에요😭
등에 엎힌 채로 버둥대는 조난자 때문에 비탈을 굴러 떨어진 요시오카. 그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도가시의 등을 떠밀어 홀로 댐으로 돌아가게 해요.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 조난자를 도가시 혼자 구조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죠. 도가시는 구조대를 부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화이트아웃, 눈 때문에 새하얀 암흑에 휩싸인 산에 겁을 먹고 길을 잃게 됩니다. 시간안에 도착하지 못한 탓에 요시오카를 떠나보내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빠진 도가시. 지아키가 오쿠토와를 방문하기로 한 날 근무일이 아닌데도 댐에 남은 건 그 때문이었어요. 요시오카의 마지막을 지아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믿었거든요. 테러리스트가 오쿠토와를 장악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스타벅스를 만남의 장소로 정하는 게 나을 뻔 했죠?😂
제한 시간은 24시간, 50억엔을 준비하라! 처음 경찰이 신경쓴 건 11명의 인질이었지만 테러리스트가 방류를 시작하자 깨닫게 되요. 오쿠토와 댐이 이대로 방류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아래 위치한 9개 댐들이 모두 터져나갈테고 하류지대의 20만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되고 말리라는 걸요. 댐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인 터널은 폭파되었고 테러리스트들은 폭설이라는 재해를 천혜의 요쇄처럼 두르고 있습니다. 하늘마저 악당들을 돕는 듯 악천후가 발생해 헬리콥터조차 띄울 수 없어요. 경찰이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단 한 사람, 댐에서 그들과 대적하기위해 움직이는 자가 있었어요. 말할 것도 없이 그 남자 도가시입니다😮
홀로 테러리스트에게서 탈출한 도가시는 도망칠 수도 있었을 거에요. 왜 안그렇겠어요. 겁나고 무섭고 무릎은 달달 떨리고 다리는 힘없이 자꾸 무너지려고 하구요. 질식시키듯 인간을 짓누르는 겨울산도 벅찬데 동료들이 총에 맞아 죽는 모습까지 봤는걸요. 하지만 도가시는 요시오카를 잃은 비극적인 밤을 두 번이나 반복할 수는 없다는 결심과 함께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살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아키를 구해낼 수 있을까?"를요. 설원을 녹일 듯이 뜨거운 도가시의 사투는 다이하드나 여타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요. 생존과 구조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가시의 모습은 그게 아무리 익숙하고 새롭지 않은 소재라 할지라도 여전히 감동이에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심포 유이치 작가의 전설 같은 책이구요. 1995년 출간되어 12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어요. 2000년에는 오다 유지를 주연으로 한 영화로도 제작됐던 바로 그 작품의 복간본입니다. 절판이 된 탓에 구판을 소지 못한 미스터리 독자를 안달나게 만들었는데 올해 출판사 크로스로드에서 재발매가 되었습니다. 남은 겨울 <화이트아웃>으로 설원 스릴러와의 짜릿한 만남을 가져보시길 바래요🤗
<크로스로드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