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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223/pimg_746442172324264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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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작품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의 기념물)의 역할을 수행했다.
인생이란 그처럼 열심히 일하다가 그만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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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낙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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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가 않는다.
위대한 거장 미켈란젤로가 사교적으로 서툴고 수줍은 예술가였다니.
우울감이 높고 자기 비하의 경향이 강해 비극적이거나 고통받는 사람으로 묘사되곤 했다니.
재능과 실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노심초사했다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려운데
남아있는 그의 많은 편지와 시들이 (그렇다, 미켈란젤로는 두 번째로 시집을 출간한 화가가 됐을 수도 있었다!)
이런 그의 성격들, 열등감과 과도한 완벽주의, 비교의식, 극도의 조심성, 부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소수의 친구 무리와 어울리며 깊은 우정을 쌓는 스타일이었던만큼
더욱이 그들이 미켈란젤로와 시와 예술을 나눌 수 있는 드문 존재들이었으므로
친우들의 죽음에서 미켈란젤로가 받았던 충격은 상당히 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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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기억 속으로 죽음이 찾아오네.
그 사람의 얼굴을 당신의 기억으로부터 빼앗아가기 위해."(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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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년이 되었을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노년을 참을 수 있기를.
왜냐하면 노년이란 미리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니.
영혼은 내게 죽고 싶다고 말하네."(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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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그렇게 되어가는 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지."(p97)
동시대 사람들을 압도하는 나이까지 장수했기 때문에 그는 울적했다.
일흔을 넘기고 나서부터 백발과 고령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죽음을 기다렸지만
미켈란젤로의 인생과 예술이 완전히 저물기까지는 19년의 세월이 더 남은 상태였다.
더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 같은 그의 인생에 찾아온 변곡점.
그건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최고 전결 건축가로 임명된 일이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이런 파격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교황 파울루스 덕분이었다.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이끄는 피렌체라는 공통된 존재적 근원을 가진 두 사람의 우정이
브라만테로부터 시작해 40여 년 동안 진척이 없었던 성 베드로 성당의 공사에까지 미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이런 지시를 거부하고 싶었다.
안 됩니다,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라고 적힌 미켈란젤로의 편지도 남아있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고 이미 70세가 넘었으며 뭣보다 그는 조각가였으므로.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정착한 지난 12년 동안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공사가 진척됐던 적이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필코, 이 일을 거부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교황, 우정이고 나발이고 강하게 거절의사를 밝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의 의사를 가볍게 묵살했고 이제 그 일은 미켈란젤로의 책임이 되었다.
그는 건축가 브라만테를 제외한 뒤이은 6명의 건축가들이 쌓아올린 독특한 구상을 싹 갈아치운다.
부정부패, 정실주의, 뇌물과 횡령이 최하급 수레꾼부터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판을 치는 대성당의 세계에서 이와 같은 도전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 직전의 건축가였던 상갈로가 만든 나무 건물 모형도 문제였다.
길이 7미터 너비 6미터에 이르는 대형 모형은 비교를 불허하는 걸작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상갈로의 모형을 두고 풀이 모자라지 않는 풀밭이라며 찬사를 퍼부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한 황소와
어리석은 양떼를 위한 풀이라면 모자라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비꼰다.
예술계의 족장이었던 그의 눈에 상갈로의 모형은 그저 흉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살아생전의 브라만테와는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그의 재능을 인정했고
브라만테가 만든 초기 설계도를 지지하며 건축을 기존 설계대로 회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디테일에서는 많은 변화를 줄 작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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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든 행동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하지 마라.
마치 전염병이 도는 상황에 처한 것처럼 행동해라.
언제나 제일 먼저 달아나는 사람이 되어라."(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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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온갖 위험을 다 알기에 비겁하다."(p178)
정치라곤 모르는 뚝심있고 외곩의 예술가를 상상했다면 미켈란젤로는 그런 타입의 예술가는 아니다.
피렌체와 로마, 정치적 격변기에 노년을 맞은 예술가는 다섯 명의 교황을 모셨고
눈은 뜨고 입은 닫은 채로 몸을 사리며 그러나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은총과 자신의 구원을 위한 예술을 했다.
때로는 보수를 받는 일이 요원하여 몇 단계에 걸쳐 행정가를 찾아가 결제를 요청해야 했다.
빈약한 조명과 위험한 구조물 사이에 웅크리고서 한번에 여섯 시간씩 작업하는 날도 숱했다.
살아 생전에 전기에 쓰여진 자신의 이름을 보았고 잘못된 시작, 중간에 포기한 공사, 실패작에 괴로워했다.
제자를 통해 그 자신의 전기를 쓰기도 했으며 집안의 역사, 높은 사회적 신분에 관한 기술들로
그의 세속성을 증명하는 때도 있었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그의 예술가적 일생을 폄훼하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성당 완공까지 차지한 시간적 비중은 고작해야 12퍼센트 뿐이었지만
그와 같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자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을
"하나님이 나 자신을 여기에 있게 했다"는 예술가의 믿음이 가능했던 이유를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을 읽는 동안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과함께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