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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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지. 네가 잘랐어야 했던 건 바로 이 혀였어. 언어란 말이야."


1. 롤랑 바르트

"이런 기능을 알게 된 사람, 그것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겠죠. 그 힘은 무궁무진할 겁니다. 모든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고 군중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며 혁명을 일으키고 여자를 유혹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팔 수 있을 것이고 제국을 건설하고 모든 땅을 차지하고 원하는 건 뭐든지, 어떤 상황에서든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p324)

움베르트 에코가 설명하는 언어의 7번째 기능이다. 이거 너무 판타지스러운데? 정말 이런 기능이 존재한다고? 라는 의심이 생기지만 실제하기만 한다면 정말 탐나는 기능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든 내가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니! 그런 세상이 내 차지가 된다니!! 그러나 이런 기능을 발견하고도 쪽도 못쓰고 살해 당하는 가엾은 인물이 등장한다. 롤랑 바르트, 프랑스의 유명 기호학자이자 평론가이다. 바르트는 실제로 1980년에 트럭 사고를 당하고 4주 후 후유증으로 사망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피치 못하게 하나의 과정을 더하여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작가 사람아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 이미 죽은 나를 또다른 방법으로 죽게 만들다니! 하고 롤랑 바르트가 화를 내진 않을까?

2. 지스카르 

"앙드레 말로가 내게 뭐라고 얘기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역사의 비극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를 못한다고 하더군요." (p102)

롤랑 바르트 사망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미테랑과의 대선을 앞두고 있다. 앞선 선거에서는 미테랑에게 패배자라는 별명을 안기며 승리를 거두었지만 임기 말년으로 갈수록 인기가 고속하락 중이다. 그를 수렁에서 건져낼 유일한 수단은 언어의 7번째 기능이 담긴 비밀문서뿐! 물론 그 결말이 어떠한지는 이미 역사가 말하고 있음이니 그는 이제 비극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런지도 모른다.

3. 자크 바야르  

"마법적 혹은 주술적 기능? 설마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겠어." (p179)

롤랑 바르트의 사고 수사를 맡았다가 지스카르에 의해 실종된 비밀문서를 찾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기호학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여 수사에 혼선을 겪고 있으며 좌파를 매우 경멸한다. 서점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못할만큼 책도 좋아하지 않고 머리 쓰는 일도 질색이지만 비밀문서를 쫓으며 점점 현학적인 기호학과 지식인들의 웅변에 매료되어 간다.

4. 시몽 에르조크

"나는 시몽 에르조그.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나." (p604)

언어의 7번째 기능의 실질적인 주인공.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크 바야르의 수사를 돕기 위해 강제 회유 당해 파트너가 된 기호학 교수이다. 순진하고 어벙했던 그는 소설 전체에 걸쳐 성격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다. 특히 소설이 300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시몽의, 시몽에 의한, 시몽을 위한 완벽한 오락소설로 변모하기에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전생 셜록홈즈가 아니었을까 싶게 놀라운 추리능력을 선보이지만 본인이 소설 속의 가상인물이 아닌지 내내로 의심하는 편집증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과 관능적인 관계를 맺는다.  

5. 움베르트 에코

2016년에 사망한 세계적인 작가. 롤랑 바르트가 콕 집어 자신의 비밀문서를 양도하려 했던 인물이다. 천재적인 웅변술로 세계를 주무르는 비밀결사대 로고스 클럽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차지한 솔레르스(모짜르트 평전의 작가, 실존인물)와의 웅변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의 고환 두 쪽을 거세하는데 크게 일조한다.

6. 로랑 비네

"소설은 죽음입니다. 삶에서 운명을, 기억에서 유용한 행위를 만들어 내고, 특정한 기간을 의미 있고 계획된 시간으로 바꿔줍니다." (p465)

언어의 7번째 기능의 작가. 공쿠르 신인상을 수상했던 HHhH 때와 마찬가지로 틈만나면 작품 속에 등장한다. 독자 관심병 내지는 애정결핍증인가 싶게 구석구석에서 본인 목소리를 내고 코멘트를 다는데 그게 재미있다. 시몽의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일지도 몰라' 병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농간의 천재. 작가 사람아 시몽 좀 그만 괴롭히세요!! 

언어의 7번째 기능은 파리, 볼로냐, 이타카, 베네치아, 나폴리를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다. 롤랑 바르트 및 그의 비밀문서와 관계된 일본과 불가리아, 러시아의 스파이들 사이에서 바야르와 시몽은 목숨을 위협 당하고 비밀단체 로고스 클럽의 회담에 참가해 손가락을 걸며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미친 지식인들과 개처럼 싸운다. 현학적인 제목과 평전스런 표지의 책 속 주인공들이 홈즈처럼 추리하고 제임스 본드처럼 세계를 누비며 돈키호테처럼 엉뚱한 일들을 벌일 줄 누가 알았으랴. 이름조차 몰랐던 한 지식인의 죽음에서 이토록 마법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발칙함에 크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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