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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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측이라는 건 독약과도 같아서 처음에는 고약한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하다가도
차츰 뱃속으로 퍼지면 온몸이 용황불처럼 타오르게 되는 거지

ㅡ 오셀로

 

 

 


오셀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은 이아고가 불러일으키는 억측에도 그녀의 웃음과 귀여운 애정 앞에 강건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부하 카시오와 데스데모나를 두고 한번 움튼 의심의 싹은 이아고의 연속된 음해를 거름 삼아 놀라운 속도로 열매를 맺는다. 그는 손수건 한 장 뿐인 빈약한 증거에도 질투를 불태웠으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급기야는 데스데모나를 창녀처럼 취급한다. 결백을 밝히지도 못한 채 데스데모나는 목이 졸려 죽었다. 용맹스럽던 무어인 장군은 뒤늦게 밝혀진 진실 앞에 후회와 비참함에 파묻혀 자살로써 비극을 완성한다. 오셀로의 결말을 확인하며 나는 <뉴 보이>의 어린 주인공들이 걱정되었다. 시럽 같이 달큼한 갈색 눈동자의 아름다운 소녀 디와 씩씩하고 속 깊은 가나 소년 오세이 코코테는 막 사랑에 눈 떴다. 병아리 같은 어린 것들이 흑과 백의 손을 겹치고 머리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행위가 맹랑한 한편으로 사랑스러워서 마음 속 깊이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하루가 오셀로와 같다면 남은 이야기가 생각만치 아름답지는 않겠구나. 부디 오셀로와 같은 류의 결말은 아니었으면, 아쉬움 속에 세익스피어를 덮으며 바람도 가져봤던 것이다. 

무어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비참한 결혼 반대에 부딪혔던 장군 오셀로는 흑인 소년 오세이로 환해 70년대 미국 백인들의 차별 속에 던져진다. 전학생이라는 불안과 흑인에 대한 편견 속에서 밀림의 숫사자처럼 운동장에서 제 영역을 가늠하던 오는 맹목적으로 부딪혀오는 디, 데스데모나의 화신이 보내오는 뜻밖의 애정에 긴장을 떨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이아고 이상으로 영악하고 비틀린 감성의 이언은 그런 오세이를 질투해 그들의 관계를 파탄내기로 결심하는데... 오와 디가 신뢰를 쌓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시간, 악의로 똘똘 뭉친 이언의 공작, 어떻게든 이언과 헤어지고픈 미미의 바람이 결합하며 오의 종말은 원작 이상으로 비참해진다.

"하루 치만큼의 드라마는 이제 질리도록 겪은 것 같구나."(p250) 라는 듀크 교장의 말은 어쩌면 작가가 독자에게 건내는 양해의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소설 속 모든 것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은 흠이다. 오와 디는 오전에 사랑에 빠졌고 오후가 되지마자 질투로 활활 불타오른 오로 갈등했으며 학교가 파할 때쯤엔 모든 관계가 막을 내렸다. 불행도 파멸도 종말도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펼치는 급박한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해 숨을 헐떡였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초등학교, 열한 살, 하루라는 배경과 세익스피어적인 드라마틱함의 결합이라 어쩔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오셀로의 모든 인물을 그 성격과 줄거리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면서도 일체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한 점, 사춘기 아이들의 격렬한 성애와 인정욕구, 시대와 대상을 달리하지만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변함이 없는 차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랑과 전쟁은 언제까지고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검증된 소재라 요며칠 책태기라며 징징댔던 것이 무색할만큼 손쉽게 읽어내기도 했고. 이아고가 심고 오셀로가 키운 비극의 열매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손에서 끝장났지만 아직 남은 세익스피어의 비극들이 있을 것이다. 다음엔 또 누구의 손에서 흥미로운 파멸이 싹을 틔울지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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