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링의 여왕 티어링 3부작
에리카 조핸슨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표지가 독특하다. 디자인이 아니라 재질적인 면에서. 얇고 맨질맨질한 가죽을 만지는 느낌이랄까. 은행나무가 책에 신경을 많이 썼나 보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티어링의 여왕을 펼쳐들고 한참을 페이지를 달리고 나서야 종이에 굳이 이런 느낌을 준 이유를 알았다. 책이 없는 세상, 책이 사라져가고 있는 세상이 배경이었던 것이다. 영국이 나오고 런던이 나오고 또 어느 페이지에선가는 미국과 전자책도 나왔지만 지금 우리의 시대가 전설이 되어버린 먼 미래의 어느 땅 위에는 가죽양장의 책들만이 아주 조금 살아남았을 따름이다. 그 때까지 이 책을 생존시키기 위해 은행나무 편집부는 표지에 이런 깜찍한 기교를 부린 것이리라. (귀여워 귀여워!!) 그리고 이 가죽책들을 필사하고 인쇄하여 널리 자신의 왕국을 이롭게 하려는 새로운 여왕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숲에서 자랐지만 그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책을 읽었고 소설을 좋아해 밤새기도 마다하지 않는 19살의 문학 소녀 켈시 글린. 이성적이지만 연민을 알고 낭만적인 감수성과 유머를 함께 갖춘 켈시는 붉은 사파이어를 목에 걸고 왕의 방 한켠에 책장을 두길 소망하는 채로 티어링의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한 길을 나선다.

세상의 모든 일에 초보인 켈시에 비해 그녀의 적은 너무나 강대하다. 켈시의 목에 현상금을 건 티어링의 섭정이자 그녀의 외삼촌 토머스는 그녀가 직면한 완전한 적에 비하면 허약한 양아치에 불과할 뿐. 모트메인의 붉은여왕. 백년이 넘도록 왕좌를 지키고 있는 마녀와도 같은 여자는 사악하고 교활하고 탐욕적인데다 진정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두려움을 일게 한다. 붉은여왕은 하물며 백년이 넘도록 늙지도 않았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적 힘도 두렵지만 그녀가 일으켰던 침공, 티어링을 짓밟고 갔던 붉은여왕의 군인들이 남긴 기억이 너무나 잔인해 그곳 백성과 귀족들, 하물며 켈시의 용감무쌍한 근위대원들의 자존까지도 좀 먹고 있었다.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해도 꿈쩍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공포정치! 제 자식과 아내와 남편이 공물로 끌려가도 울음을 터트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좌절감이 뼛속까지 베여버린 사람들의 세상. 마치 우리의 일제시대와 같고 군사독재시대와도 같은 비일상 속을 오로지 숲을 달리고 역사를 배우고 책만 읽었던 어린 소녀가 헤쳐나간다. 그야말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완벽한 판타지의 재림이랄까. 그러나 나는 2018년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고, 누군가의 눈에는 폭력없이 국가의 수장을 끌어내린 우리의 촛불이 더욱 판타스틱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기에 유치하다는 비웃음은 한 톨도 생기지 않았다. 도리어 민중을 개돼지라 부르는 누구네와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내쫓느냐는 무지몽매한 섭정 토마스의 부르짖음 속에 떠오르는 이를 비추어 한층 통쾌하고 즐겁고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만을 느꼈을 따름이다. 1권은 끝이 났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비밀 또한 너무나도 많다. 켈시의 사파이어에 담긴 마법적 힘, 보잘 것 없는 문학소녀를 갈아없애지 못해 이를 가는 붉은여왕의 근심, 근위대원들이 감추고 있는 전대여왕의 남은 비밀들과 켈시의 팔에 남겨진 상처의 원인, 생부와 켈시의 첫사랑 대도 페치의 정체,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가 전복되어 마법적 세계로 나아가게 된 이유, 더하여 사라진 책들. 하, 궁금하다, 궁금해. 못먹어서 현기증 나는 게 아니라 못읽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지금 티어링의 여왕에 가지게 되는 내 불만은 오직 하나 뿐이다.

2권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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