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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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d 소설이다. 더렵고 어렵고 위험한데 거기다가 멀기까지 하다. 시대적으로도 배경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절망을 추가해 5d 소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도 하고. 포경선의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정도로 추측했던 내용은 채 45 페이지를 지나기 전에 예상치 못한 류의 주정뱅이들의 폭행과 살인과 강간으로 점철됐다. 죽은 이가 선의를 베풀 줄 아는 자였고 강간을 당하는 대상 또한 12살쯤의 어린 남자 아이였기에 상세한 묘사가 없음에도 거북했다. 거북해서 멈추고만 싶은데 누가 등을 떠밀기라도 한 듯이 나는 잠도 잊은 채 소설을 완독하고 말았다. 원치 않은 가독성이었다는데서 나는 이 책이 독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16년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으며 여름밤 창문을 덜컹이는 바람소리에도 몸서리쳤듯 한파의 추위가 이불 밑으로 기어드는 듯한 착각 속에 이 책과 함께 밤새 떨어야 했으니까. 공기까지 찢어놓을 듯한 영하의 추위, 부패하기 시작한 고래의 썩은 냄새, 껍질이 벗겨진 채 태아처럼 버려지는 곰의 몸뚱이, 사람의 목을 뚫고 들어가는 쇠줄, 찢겨진 배에서 쏟아져 나온 제 내장을 뜯어먹는 상어를 읽으며 피비린내와 악취가 종의 기원 이후로 다시 한번 코 밑에서 흥건해진다. 독서를 했다가 아니라 책으로 학대 당했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더럽다. 얼어붙은 바다를 딱 한 마디로만 표현하라면 나는 이 말부터 할 것이다. 더럽다. 정말 더럽다. 내용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표현과 갖은 욕설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매우 더럽다. 선박의로 포경선 볼런티어 호에 올라탄 섬너는 게 중 나은 편이지만 사이코패스 헨리 드랙슨이나 선장 브라운리, 기타 많은 선원들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위생관념이 과연 이 정도였던가 의아해질만큼 굉장히 불결하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오줌과 설사, 피와 가래, 찌릉내 때문에 비위가 상해 책읽기를 중단한다는 독자가 생긴대도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라면 말 다했지.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몇 몇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이 지나치게 귀족적이고 깔끔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뒷골목 어느 포구의 풍광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광경들을 얼어붙은 바다에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내용으로 말할 것 같으면 포경선을 배경으로 하지만 딱히 고래를 잡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고래 사냥에 대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한뻔 뿐이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미스테리 하지도 않다. 소설은 악인들과 악의를 숨기지 않는다. 선과 악의 대립도 아니다. 선의 나노 존재감은 돋보기로 들여다 보아야 할 정도로 나약하다. 차라리 선진 자본주의로 맹위를 떨쳤던 영국의 그림자를 짙게 깔고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알맞겠다. 섬너는 의사로 개천의 용이 되길 꿈꿨지만 세포이 항쟁에서의 불명예 제대 후 계층 사다리를 잇지 못한 채 아편 중독자가 되버렸다. 헨리 드랙슨은 개천의 황소 개구리 같은 사내로 안그래도 거친 생태계를 교란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코패스이다. 그는 손쉽게 거짓말을 하고 밥 먹듯 사람을 죽인다. 그런 사이코패스를 돈으로 부리며 개천을 한꺼번에 약탈하고 몰살시키는 것은 볼런티어 호의 주인 벡스터이다. 자본은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북극으로 나아가는 포경선으로도 피를 부른다. 선원들이 망망대해의 바다 위에서 흉포한 날씨와 고독과 굶주림과 싸움하며 얼음에 빠지고 갈비뼈가 바스라지고 팔이 뜯겨나갈 적에 뭍의 귀족 아가씨들은 고래뼈로 모양을 잡은 크리놀린 드레스로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그 부풀려진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의 아래에서, 고래기름으로 피워올린 환한 불빛 밑으로 몇 인분의 피가 흘렀을지 너희가 아느냐고 부서져 가라앉은 볼런티어 호가 묻는 것만 같다. 희망이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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