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이야기 중에 가장 무서운 이야기, 남이 돈 번 이야기 중에 제일 기막힌 이야기, 누구 바람난 이야기 중에 최대한 길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 셋 중에 하나 골라서 이야기해주세요." (p12)
차세대 인터넷 미디어 벤츠라는 회사의 사장 이인선으로부터 면접 문제를 받아든 한규동은 취직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사무실을 뛰쳐나가고픈 심정이 된다. 망한 학원을 고스란히 빌린 듯 초등 아이들의 규격에 맞는 책걸상이 화려하게 흐트러진 자리에 임산부 검진용 침대까지 놓여있고 언제 주문한지 알 수 없는 식은 탕수육과 탕수육 위를 맴도는 파리와 그 탕수육을 다시 먹으며 졸린 눈을 하고 있는 사장까지 보고 나니 아무리 취직이 어렵다지만 딱 봐도 망하기 직전인, 무얼 하는지도 모르겠는 회사에 몸 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낙방에는 존엄이 없다는 말도 생각이 나고 이런 회사에서까지 면접에 떨어진다면 땅에 떨어지다 못해 지하를 뚫고 들어간 자존을 도무지 회생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에 어느 덧 주섬주섬 이야기를 줏어 넘기고 있다. 주제는 그거다. 무서운 이야기. 한규동이 전 여자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어느 공장의 기이한 이야기의 시작은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패악이 하늘을 찔렀던 왜정 말기. 옷 공장의 사장 임만섭이 친일 세력에 잘 샤바샤바한 덕택에 공장에는 일거리가 넘쳐난다. 아들 유학비에 허리가 휘는 임만섭은 직공을 늘리기 보다 그들을 가열차게 굴려 인건비를 줄일 생각을 하게 되고 직원들이 피로에 떠밀려 기계에 부상을 입거나 생산량이 주는 것에 대한 대비책으로 마약을 투여하기 시작한다. 마약에 중독된 직공들이 차례차례 죽어 나가던 어느 날 일본이 폐망하는 그날이 오고 미군이 조선을 점령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임만섭은 두려움에 남은 직원들과 함께 공장의 문을 닫아걸고 무절제하게 마약을 놓다가 사망한다. 그 후 그들 직공 중 한 명이 (마약으로 생사를 넘으며 도를 깨쳤대나 뭐래나) 귀신이 되어 현재까지도 공장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는데 이인선은 이 이야기 속 귀신을 추적하여 방송국에 팔자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해온다. 알고 보니 차세대 인터넷 미디어 벤츠라는 이 긴 이름의 회사는 방송국이나 언론사 등에 기삿거리나 소재를 파는 정보 중개상이었던 것. 취직이 되었음에도 한치 기쁨도 없이 퇴사하겠습니다!는 말을 하리라 나간 이틀 상간에 진짜 귀신을 만난 한규동의 좌충우돌 귀신 쫓는 이야기는 어쩐지 매가리 없이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재미만큼은 아주 스펙타클 하니 끝장이 난다. 귀신이 등장하는 시간을 적재적소에 파악하는 외국인 근로자, 처음 공포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던 공장 입구의 산동네 가난한 사람들, 공장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귀신 같이 알고 등장하는 여자 귀신, 그리고 표지의 물고기, 주사, 카메라의 비밀까지. 무서운 이야기 속 수수께끼의 정답을 해답편까지 가서야 알 수 있었지만 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한톨도 없다. 독특한 인물들(p95까지 나는 이인선이 남사장인줄로만 알았다. 털털함이 지나쳐 그에서 그녀로 호칭 변경이 있기 전까진 감히 상상도 못했다.), 독특한 미스터리, 이 책의 독특한 출간 이력까지 맞물려 너무너무 재미났던 곽재식 작가의 다음 사건까지도 기대해 본다. 부디 1편 2편 3편 시리즈로 꼭!! 엘릭시르에서 출간되어 나오길. 한규동 이 자식, 힘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