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느긋한 생활
아마미야 마미, 이소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인생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얼마든지 있다." (p19)


그것이 내 방을 이상적으로 꾸리는 일이라면 선택은 더욱 단순하고 확고할 것이다..하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독립만 하면 내 뜻대로 꾸미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년 살고 나갈 거 집에 돈 들이기는 아깝다는 이유로 주인분이 도배해 준 멋없는 민무늬 흰벽지(아마도 가장 값싼 것이었으리라)에도 손대지 않았고 성급한 독립에 가구 보러 다닐 여건도 되지 않아 가구점 근처도 가보지 않은 채 책상도 책장도 때마침 인터넷 쇼핑몰에 올라온 할인 품목으로 선택했다. 디자인이나 튼튼함은 일절 고려하지 않은 가격 맞춤형 쇼핑이었다고나 할까. 이불만은 맘에 드는 것으로!! 라고 결심했지만 출근하고 돌아오니 이미 보라색 환장파티가 펼쳐져 있었다. 엄마의 취향이었다. 그 후로도 딸보다 부지런하신 엄마가 반찬과 함께 여름 이불과 겨울 이불을 장만해 오셨을 때 나는 어쨌든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므로 군말없이 덮고 잤던 것이다. 돈 앞에 취향 그까짓. 박봉에 뭔들 ㅡㅡ;; 이라고 내 집 장만의 그 날까진 꾹 참으리라 할 적에 통장요정 김생민씨는 그레잇~!!을 외쳐주셨겠지만 마음 한켠은 스튜핏이 고팠다. 아마도 다른 많은 자취생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취향을 배제한 소비로 가득한 공간에 지금도 몸을 파묻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러한 사실에 별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은 자신의 그런 환경에 의문을 가졌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사할까." (p14)

'방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사할까?... 이사하자!' 고 말이다. 
프리랜서 작가 야마미야 마미(마미라니 이름이 독특하다. 일본 이름으론 흔한가?)는 충동적인 이사, 거주지 선택 실패, 재이사를 거치며 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정립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돈 앞에 타협하고 공간에 타협하고 귀찮음에 타협하며 초라해져만 갔던 방을 깨닫고 정말 좋아하는 물건과 취향으로 채워나가며 자신만의 이상적인 방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책 속에서 느긋하게 펼쳐진다. 손님을 초대하는 것조차 부담이 되었던 일전의 부끄러운 방과는 달리 새로운 방에는 소박한 소통과 행복이 담기기 시작한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머무는, 내가 잠드는, 내가 일상을 영위하는 이곳 내 방에 충분한 즐거움을 담아보자는 작가의 생각에 폭 안겨 읽는 에세이가 마음에 들었다. 돈을 많이 들인 아름다운 인테리어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근사하고 보기 좋은 것이겠지만 내 방을 아름답게 구성할 더욱 귀한 가치는 취향에 대한 소신이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취향이 아닌 것을 내 방에서 정리할 수 있는 소신, 버릴 수 있는 소신, 사지 않을 소신. 또 가끔은 정말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비싸더라도 큰맘 먹고 지를 수 있는 소신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자리에 누우려고 보니 고작해야 이불인데 이걸 굳이 일이년을 더 기다렸다 바꿨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생긴다. 당장 집을 사는 건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이불 정도면 가뿐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인 것을 왜 이런 것마저도 아깝다며 미루고 살았을까. 조금씩 하나하나 취향이 아닌 것은 덜어내고 취향인 것을 모아가며 내 마음에 꽉 차는 이상적인 방을 오늘부터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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