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사본사 - Novel Engine POP 오리에란트 시리즈 1
이누이시 토모코 지음, R.알니람 그림, 주원일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오른손에 월석, 왼손에 흑요석, 입 속엔 진주. 세 개의 돌을 가지고 태어난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품에서 여마도사 에일랴의 품으로 넘어갑니다. 마법적 기운이 넘쳐흐르는 세계라도 기원을 알 수 없는 돌들이 내 아기와 함께 뱃속에 잉태되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겠지요. 부모가 포기한 아이 카류도를 여마도사는 책과 두루마리와 양피지와 넘쳐나는 마법의 언어 속에서 사랑으로 성장시킵니다. 소년은 어느 덧 13살이 되었고 존재의 근원과 가치를 두고 고민하던 순간 그의 삶이 완전히 파괴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에즈키움의 지배자 안지스트의 등장, 여마도사 에일랴와 그녀의 후계 핀의 죽음, 또다른 마도사 케르시의 실종이 그것이었죠. 안지스트는 에일랴와 핀의 목을 꺾은 것으로도 부족해 짐승을 조종하는 에일랴의 마법 위다치스의 기운마저 모조리 흡수해 가는데요. 실로 광오한 그의 기운들이 살해와 약탈에 기원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마도사로서 복수할 길이 요원하다는 것도 카류도에게는 뼛 속 저미는 좌절감이었을 겁니다. 그 분노가 어찌나 절절했던지 맥주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마저 독처럼 새카맣게 변해버렸으니까요. 

카류도는 안지스트가 알아보지 못하고 그래서 빼앗아갈 수 없는 마법 아닌 마법의 힘을 얻기로 합니다. 사본사,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 종이에 한 장 한 장 책을 베끼어 적고 그림을 그리고 제본을 해 책을 만들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기술로 글자 위에 마법적 기운을 씌울 수 있었던 밤의 사본사가 되어 복수를 하기로 다짐하지요. 사본사로서의 능력이 일취월장 할 때 월석과 흑요석, 진주의 비밀들이 깨어나고 비밀이 풀릴 때마다 해방되는 카류도의 힘도 커집니다. 달과 어둠과 바다라는 여자의 힘을 빼앗고 여자들의 지위를 가축화 시킨 저주 받은 마도사 안지스트와 카류도의 뿌리 깊게 얽힌 전생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어마무시하던지요. 갈래갈래 뻗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쫓아가기 위해 만화 같은 상상력을 총동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십이국기처럼 체계적인 세계관이나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는 마법의 계파, 책 속 세계로 빨려들던 잉크스펠처럼 책을 읽는 순간 이어지는 전생의 기억들, 파두키아와 에즈키움의 이국적인 풍광들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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