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공포소설이 아닌데도 무서웠다. 스릴러가 아닌데도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소설의 문장들이 바늘처럼 마음을 찔렀고 사람을 바보 취급 말라는 찰리 고든의 목소리가 나를 꿰뚫으며 심장을 홈질하는 느낌이었다. 답답해 가슴을 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찰리 고든을 붙잡고 설명하고 싶었다. 오해야 찰리, 미안해 찰리,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며 이제껏 내가 의도없이 상처입혔을지 모를 누구에게라도 계속해서 사과하고픈 이 마음의 정체는 뭘까.

"당장 그만두지 못해요! 저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세요! 저 아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지금 저렇게 된 건 저 아이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발, 인격을 존중해줘요! 저 아이도 인간이니까요!" (p295)

지능 70의 지적 장애인, 가족 없음, 삼촌 사후 삼촌 친구의 빵집에서 17년째 청소부로 근무 중,  읽고 쓰기를 열망함, 앨저넌이라는 쥐의 임상실험 후 첫 인간 뇌실험체로 선정. 32세 찰리 고든의 데이터이다. 지능이 낮은 모집단의 분류표 안에서 적대성, 공격성이 낮고 협조적이며 무엇보다 "똑똑함"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수술의 적합체가 된 그는 하루 아침에 인생이 달라졌다. 똑똑해졌다. 아이큐 180의 천재가 되었다. 수학과 의학, 경제학, 심리학을 아우르며 고어와 사어를 비롯한 12개 언어 정도는 거뜬히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분야에 상관없이 평생을 한 학문에 몰두해온 교수조차 이론으로 우습게 까내릴 수 있는 부류의 지적 초인이 된 것이다. 그는 똑똑해지면 빵집의 친구들이 자신을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도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와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교육원의 키니언 선생으로부터 더 많은 칭찬을 듣게 되리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어떠했는가. 그는 지능이 올라간 후 그의 좋은 친구들이 실지로는 자신을 괴롭히고 비웃고 폭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부모가 그를 어떤 식으로 방치하고 학대했는지 그가 어떤 칼부림 속에서 쫓겨났는지도 기억하게 되었다. 대학의 전문가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완벽한 인간들이 아니며 지능이 높아진 후에도 그를 계속해서 실험체로 본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긍정적인 사회성과 자존감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한 순간에 높아진 지능은 점차로 찰리를 무너뜨렸다. 키니언 선생을 사랑하며 욕망하는 것은 괴로움이었고 천재가 된 그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세상은 그의 적이 되었다. 똑똑함은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다. 지능 70일 때에도 찰리는 평범한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지능 180일 때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과거의 그는 행복했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하고 싶지도 않다. 바보 취급은 질색이다. 어째서 찰리는 그러한 형태로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는가. 높은 지능은 그에 대한 해답을 내어놓을 것인가. 시간을 관통하는 적의, 분노, 폭력에의 욕구가 칼바람처럼 시리게 마음을 저민다. 찰리에게는 세상도 신도 온몸을 던져 부수고 싶은 벽이었을 테다.

"지능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숭배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모두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p366)     

애정, 사랑, 욕망, 친애 무어라 이름 붙여도 좋을 그 감정과 용서와 이타를 그럼에도 찰리는 배워가고 있었다. 실험쥐 앨저넌과 도망쳐 홀로 꾸린 아파트의 자신의 공간에서 그는 점차로 그 자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을테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실험이 완벽했더라면. 앨저넌의 이상증세가 찰리와 독자의 절망을 부추기는 와중 제발제발제발! SF잖아! 외계인이라도 등장시켜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이야! 하고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장벽과 한계와 무능력함의 나열들. 점차로 난잡해져 가는 찰리의 경과 보고서를 읽는 것은 고되고 힘들었다. 마음이 아프다. 할 수만 있다면 나 또한 그 작은 무덤 위로 앨저넌에게로 꽃 한 송이를 바치고 싶다. 인간을 위해 죽어간 모든 생명들에게로. 상처받은 마음 위로. 헌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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