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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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의 할머니 아자리는 아프리카 태생이다. 다호메이족을 침입한 백인 장정들은 처음에는 남자들을, 그 다음 달이 뜨는 밤엔 여자와 아이들을 납치해 갔고 그들 중에 아자리가 있었다. 흑인은 가축과 같아 달러와 설탕 등으로 거래되었고 아자리는 노예를 거느리려는 많은 주인들은 거쳐 미국 남부의 대농장 목화밭까지 팔려왔다. 윈스턴 처칠은 지옥을 걷고 있다면 계속해서 걸어가라고 말했지만 지옥의 끝이 더 큰 지옥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자리가 지옥을 걷고 걷고 또 걸어 도착한 랜들가의 농장은 흑인들의 등에 채찍을 휘둘렀고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목화솜을 따는 길고 고된 노동으로 착취했으며 병든 노예들을 방치했다. 입으로는 가축이라 말하면서 가축과도 흘레 붙으려는 짐승 같은 욕망으로 어린 영혼들을 파괴하는 손길은 또 얼마나 무수했던가. 훔친 땅에서 일하는 훔친 몸들(p136) 떼도적 같은 미국이 배를 불리던 시기였다. 권성징악이 존재하지 않는 무참하고도 잔인한 시간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상영을 금지한 미국 극장에 대해 그저 영화인데 무어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죄스러울만큼의 끔찍함으로 소설을 읽는 내내 몇 번이고 질끈 눈을 감아야 했다. 스칼렛의 거대한 저택과 화려한 복식, 풍성한 식탁, 파티의 놀음이 흑인 노예들의 비참과 울음과 절망과 노동과 무엇보다 피, 생명으로 갈음한 낭만이었음을 다시 한번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조차 아침의 해가 떠오르지 않길 바라는 노예들에게 있어선 얼마나 가증스럽고 배부른 희망이었을지.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런 지옥 속에서도 생명이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지옥 간수들의 부추김 속에서 지옥의 아가리는 재산을 불려가길 희망했다. 그런 강제 속에 메블리가 태어났고 다시 코라가 탄생했다. 랜들의 대농장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으나 목화밭에서 피를 토하고 죽은 아자리의 손녀이자 유일무이하게 농장을 탈출한데 성공한 메이블의 딸. 같은 종족의 흑인 남자들에게 몸을 갈취 당하고 흑인 여성들에게 배척 당하고 백인 지주의 주먹질에 정신을 놓으면서도 홀로 단단한 영혼을 꾸리던 그녀가 자유노예가 되기를 희망하는 시저와 함께 "지하철도"에 오른다.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납치됐던 그 밤 이후로 그녀는 값이 매겨지고 또다시 매겨지고, 자고 일어나면 날마다 새로운 저울판 위에 있었다. 자기 값을 알고 나면 갈 자리를 알게 됐다. 농장을 탈출하는 것은 곧 존재의 근본 원칙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불가능했다." (p17)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려는 의지가 철로의 여정을 이끄는 듯 했다. 코라의 의지가 아니라 운명의 의지였다. 그녀를 지옥에서 벗어나게끔 하려는 떠밀음과 지옥으로 다시 끌어들어려는 추포가 엇갈려 등장하는 운명의 놀음이었다. 조지아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인디애나 그리고 여정의 말미일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북부 속으로 운명은 구세주와 같은 역장과 차장과 노예해방 동지들을 내려보냈고 동시에 노예 사냥꾼 리지웨이와 백인 앞잡이 흑인 호머를 등장시켰다. 평화 속에 정착하고픈 코라의 의지는 운명의 의지에 꺾여 계속해 지하철도를 오른다. 처음엔 승객이었으나 철로를 놓고 철로를 운영하고 철로를 지켰던 이들이 스러지며 마지막엔 스스로 핸드카에 펌프질을 했다. 시저와 로열. 그녀 인생에 사랑할 수 있을만한 남자들을 뒤안길에 놓고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로 코라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 지하철도를 벗어나 빛이 있는 도로 위로 전진했고 마차에 올라탄 그 날을, 살아남은 생을 그녀가 축복처럼 떠올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 길이 지옥의 끝이었기를. 부디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았기를 말이다.

"꾀와 결단. 그 책 속의 백인 걸리버는 위험에서 위험으로 옮겨 다녔고, 새로운 섬에 도착할 때마다 새로운 곤경에 맞닥뜨렸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 남자의 진짜 곤란은 그가 맞닥뜨린 야만적이거나 기괴한 문명이 아니었다 ㅡ 그는 그가 가진 것을 계속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백인은 그랬다. 학교 건물을 지어놓고 썩어가게 두고, 집을 만들고는 버려둔다. 만일 집으로 가는 길을 알아낸다면 시저는 다시는 여행하지 않으리라.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 채, 세상이 다 부서질 때까지 괴로운 섬들을 전전할 것만 같았다. 그녀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코라와 함께라면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266. 시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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