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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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파이브, 쌍안경, 커피, 사과, 바나나, 브레첼, 꽃, 총, 휴대폰.

표지를 보며 공상하길 좋아하는 나로써도 코가 크고 눈매가 부리부리한 아랍인 만체보 씨와 이 소재들을 연관짓는데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책을 읽는 내도록 머리 속에 움텄던 아주 사소한 추측까지도 모조리!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틀렸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평화로운 저녁, 파리 한 켠에서 운영 중인 만체보 씨의 식료품 가게로 앞건물 부녀자 캣이 뛰어들 적만 해도 나는 이 책이 파리에 걸맞는 심오하고도 난해한 심리 미스터리이지 않을까 추측했었다. 그녀가 작가 남편의 불륜 행각을 집 앞에서 감시해 달라고 할 적에는 혼인파탄 막장 미스터리인가 보다 환호했으며 (막장은 언제나 은혜로우니까!!) 뜬금없이 등장한 신문기자(현 우울증 환자) "나"와 의문의 사무실, 암호처럼 도착해 전달하기를 명령받은 비밀 숫자들, 항공사 발권 번호, 음험한 행각의 스릴러 작가, 아랍인 만체보 씨를 엮으며 옳거니! 테러 집단을 물리치는 전직 기자와 만체보 씨의 스펙타클한 코믹 모험물이구나!! 예견하기도 했지만... 다 틀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1도 맞는 게 없었다.

"한두 번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적이지만 거듭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패배하고 말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존재감 없이 흘러간 무수한 시간들. 28년을 같은 자리에 의자를 두고 지켜온 식료품 가게 주인장으로서의 삶은 지루한지도 모르고 살아낸 골기퍼 같은 인생이었다. 바란 적 없던 탐정 놀음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찰력을 갖게 된 중년 남자 만체보 씨가 건너편 집을 감시하던 시선을 집 안으로 돌리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아내와 사촌동생, 제수씨의 비밀들은 소소하면서도 놀랍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진 또 다른 화자 "나"의 앞에 선사된 미지의 위험과 유혹들은 일견 부럽기도 했다. 앞집 남편을 뒤쫓다 신경성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아내로부터 정신병자 의심을 받고, 앞차를 들이받고, 난생 처음 중국인의 문구점에서 노트를 사는 만체보 씨와 테러리스트 집단에 취업한 게 아닐까 불안에 떠는 "나"의 심심했던 하루하루를 뺑소니처럼 치고 지나가는 엉뚱한 사건들이 유쾌하고 기분 좋다. 아! 이래서 담배가! 쌍안경이! 빵! 꽃! 총이! 표지에 등장한 거였구나 하나하나 알아갈 적마다 만체보씨는 편두통을 앓았고 "나"에겐 편집증이 왔지만 나는 정말 너무너무 웃겼다. 평행선을 달리듯 일체의 접점도 없이 따로따로 놀던 만체보씨와 "나"가 기어이 만남을 가지게 되던 그 거대(?) 비밀에는 어쩔시구 하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러면 뭐 어떠랴. 평범을 쫓아 않고, 그래서 진실에 눈 감지 않고, 재미없는 인생에서 등 돌린 채 나아가는 걸음이 그렇듯 씩씩한데 말이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십지가가 보이는 파리의 뒷골목, 용과 토끼가 그려져 있는 중국노트를 흔들며 뛰어가는 뒷골목의 아이들, 매케한 담배연기와 연기를 내젓는 누군가의 손길, 도로 반대편으로 보내는 반가운 인사, 갓구운 초콜렛 에클레어와 커피,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로열층의 풍광. 일상을 뒤흔드는 비일상을 만나고 나니 나 또한 파리 뒷골목으로 뛰어들고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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