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전건우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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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가 쏟아져 내리는 새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물귀신이라는 전통적인 소재로 90년대 추억 위에 귀기 어린 공포를 덧씌우는 전건우님의 신간 미스터리 호러물, "소용돌이" 입니다. 

"그때도 여름이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모기가 몸을 불려가던 칠월.
여름방학, 수영, 서리, 저수지, 비밀 아지트, 독수리 오형제, 그리고......
내 인생을 바꿔놓았던 1991년 여름"

국민학교 친구 유민의 장례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광선리로 향하는 사진작가 민호의 머릿속엔 어제의 일처럼 1991년의 여름이 떠오릅니다. 집을 나간 아버지, 외할머니 댁에 자신을 버린 어머니, 배고픔 보다 끔찍했던 외로움, 그 외로움을 달래주던 광선리의 친구들 독수리 오형제. 똑똑한 행동대장 창현과 순하고 마음 약했던 유민, 코찔찔이 뚱보 길태, 사슴 같은 다리로 뜀박질을 잘했던 첫사랑 명자 그리고 무뚝뚝한 민호까지 더하여 결성됐던 광선리의 독수리 오형제는 의붓 아버지에게 학대 당하던 유민을 구하기 위해 마을 뒷켠 솥뚜껑이라 불리는 저수지의 물귀신을 불러내기로 합니다. 분신사바 같은 주문을 읆을 적만 해도 장난 같은 마음이었던 그들은 주문이 실체가 되어 자신들을 덮치자 그야말로 혼비백산 하여 소용돌이 같은 공포에 매몰됩니다. 유민의 의붓 아버지와 또다른 친구 동철의 어머니가 물귀신에 홀려 앉은 자리에서 익사를 했고 귀신은 더하여 유민의 몸을 가로채기에 이르니까요. 박수 남 법사의 도움으로 물귀신을 봉인하고 유민을 구한 그들은 공포를 등지고 뿔뿔이 흩어졌지만 평범한 일상을 갉아먹는 솥뚜껑의 소용돌이는 악몽이란 실체로 그들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혼을 앞둔 시간강사, 술집 마담, 건달, 죽음을 쫓는 찍사, 어린 시절의 원대했던 꿈에서 한껏 멀어진 변변찮은 인생들이 유민의 죽음으로 광선리 초등학교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마치 옛시절로 모례시계를 돌려놓은 듯 죽음이 재상영 되기 시작하는데요.

누가 남 법사의 봉인을 깨트리고 물귀신을 불러내었는가?
유민의 몸을 탐냈던 물귀신이 누구의 몸을 빌려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가?
솥뚜껑 물귀신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토록이나 큰 원한을 이고 광선리를 징벌하려 하는가?
이 모든 무시무시한 일들이 물귀신이 저지른 짓이 맞기는 한 것일까?

소설이 던지는 의문에 눈을 부릅뜨며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에도 혼령은 연속해서 익사 사건들을 만들어 나갑니다. 더욱이 개발에 관한 마을 사람들의 아귀 같은 다툼까지 더하여져 광선리의 현실은 더욱 지옥 불구덩이 같은 모습이 되어버리는데요. 죽음을 손에 든 채 한 발 한 발 다가와 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물귀신과 그에 맞서 싸우는 광선리 독수리 오형제가 벌이는 태풍 속 악전고투! 이들의 전투는 과연 승리의 깃발을 내걸며 물귀신이 만든 소용돌이를 잠재울 수 있을까요. 광선리는 혼령의 손길과 개발을 향한 자본의 무자비한 욕심에서 벗어나 마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귀기 서린 공포와 90년대 초반 대중문화의 추억이 한자리에 어우러져 불량식품 같은 맛으로 유혹하는 소설입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스러워지는 훈훈한 결말이 조금 당혹스럽긴 하지만 그런 허점까지도 별스러운 맛으로 기억할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니까요. 이 더위가 가시기 전에 한국장르소설로 조금 더 으스스한 밤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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