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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0
쥘 베른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8월
평점 :
런던에서 불상을 훔친 성룡은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선 과학자 필로스 포그의 하인으로 위장취업을 하게 되는데요. 고향으로 안전하게 불상을 옮기기 위해서였죠. 불상을 훔치려는 악의 무리 전갈단과 필로스 포그를 파산시키려는 영국 과학부 조무래기들의 방해공작을 물리쳐가며 세계일주에 성공한다는 성룡식 액션으로 가득찬 이 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아봐야지 했던 것이 벌써 십년도 더 전의 일이니 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누구는 80일에 세계일주를 성공시키는데 누구는 3650일이 넘도록 책 한 권을 못읽다니 이 좌절감!! 이 패배감!! 이 무기력!!!! 까지는 아니고 흐, 어쨌든 이번엔 성공했습니다. 영화도 아니고 티비 만화도 아니고 1873년에 쓰여진 쥘 베른의 명품 과학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입니다.
마치 철학자 칸트 같이 철저한 시간관념으로 유명한 필리어스 포그는 부유한 독신 남성입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직업도 없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려진 바도 없지만 확실한 건 그가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결벽스런 성격인데다 괴팍하다는 것이죠. 세숫물이 정해놓은 온도보다 1도씨 떨어졌다고 구 하인을 자르고 새 하인 파스파르투를 고용할 정도니까요. 시간개념도 얼마나 철저한지 매 같은 시간 개혁클럽(이름은 그럴 듯 하지만 영국 상류층 컨트리클럽)으로 출근하여 매일 같은 시간 점심과 저녁을 먹고 매일 같은 시간 카드놀이를 하고 매일 같은 시간 퇴근해 씻고 잠자리에 드는 독특함을 발휘합니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개혁클럽 사람들과 내기를 합니다. 80일 동안 세계일주를 할 수 있냐 없냐 하구요. 총 이만 파운드라는 본인 재산의 절반이 걸린 이 내기에 하인 파스파르투를 달고 남은 절반의 재산인 다른 이만 파운드를 짐가방 하나에 쑤셔 박은 채 영국 밖으로 떠나는 포그 일행들. 홍해와 인도양을 거쳐 싱가포르와 홍콩과 일본을 건너 태평양을 넘어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코끼리와 배와 기차와 썰매를 타고 귀환하는 80일간의 여정이 그야말로 시끌벅적, 다사다난, 유쾌발랄한데요. 무뚝뚝한 영국남자 포그가 내 하인에겐 다정하겠지 모드로 몇 번이나 파스파르투를 구하는 장면도 우습구요. 원숭이 같이 활발한 프랑스 남자 파스파르투의 깨방정도 귀엽습니다. 이런 여행에 미인도 빠질 수 없는 법!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당할 위기에서 포그와 파스파르투에게 구해진 인도 미망인 아우디(와 포그의 로맨스를 바랬지만 끝에 조금 나와요!), 포그가 대도라고 생각하고 뒤쫓는 형사 피그 등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고전으로는 드물게 지루함 없이 톡톡 튀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내기에 졌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원인을 제공한 파스파루트, 아우디, 피그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남은 재산으로 아우디의 살길을 모색하는 포그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사랑이란~~~. 19세기에 쓰여진 재벌이 길바닥에 돈 뿌리고 다니는 이야기! 세계일주 이동비용으로 전재산의 반을 쓰는 하늘의 별도 사다줄 것 같은 남자 포그와 집의 가스불을 켜놓고 나와 가스비가 얼마나 나올까 세계일주 내내 전전긍긍 하는 소시민 파스파르투의 신나는 여행!! 저는 인디고 번역판으로 만났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열림원의 김석희님 번역으로도 재독해 보고 싶은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였습니다.
근데 참 쥘 베른이 프랑스 작가인 거 다들 아셨나요? 저는 여태까지 영국 작가인 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