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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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 우리는 여기서 을이 아닙니다. 그냥 병이에요. 자, 찌푸리지 말고 얼른 스마일" (p30)

작가 박생강은 실제로 사우나에서 일했다. 거의 일년쯤, 글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주머니 사정이 빈한해서, 기타 여러 이유의 결합으로 어찌저찌 가서 일한 곳이 대한민국 1퍼센트의 부자들이나 이용할 수 있는 멤버쉽 회원제 사우나였다. 부자들 등짝에 로션도 발라줘가며 세탁물도 나르고 운동복도 정리하는 시간이 끝이 난 후 쓰기 시작한 소설이 "살기좋은나라?"였다. 출판사에서 새마을운동 하던 시절도 아닌데 제목 좀 바꾸자 해서 변경된 것이 지금의 매력 넘치는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라고 하니 담당자분이 누구신지 칭찬 스티커 한 오백개 붙여 드려야 할 듯. 위대한 개츠비의 처음 제목도 "쓰레기더미와 백만장자들 사이에서"였다는데 둘 다 첫 제목 그대로 달고 나왔으면 난 이 책들 쳐다도 안봤을테니까.

주인공 손태권.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의 남극 탐험기(김근우 작)" 속 "나"처럼 등단은 했는데 인기는 없는 무명작가다. 연극하는 애인이 있고, 논술학원 강사를 뛰다가 백수가 된 뒤 헬라홀이라는 별칭의 사우나에 매니저로 취업한다. 별스러울 정도로 유유자적하고, 자의식 강하고, 게으르고, 남 눈치 안보는 성격 등은 김근우 작가가 만든 "나"와 비슷한데 남극탐험기의 환성적인 느낌이나 판타지적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된 채 지극히 현실적인 심심함과 지루함에 더하여 지각과 맨틀 사이 모호로비치치불연속면 같이 끼인 부자 남자들의 별 거 없는 얘기가  탄탄하게(?) 반영한 소설이 "우리 사우나"라고 하면 이거 말이 되나 안되나. 사우나만큼이나 덥고 습한 여름이라 생각이 어렵다. 남극과 사우나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른 배경의 이야기지만 읽는 내내 어쩐지 우리의 남극 탐험기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남극은 실패도 성공이라고 부르짖고 사우나는 인생 별 거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주제의식에 차이가 있긴 한데 주인공들이 다 작가라 그런가,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는 기본 골자가 비슷해서 그런가. 어쨌든 계절상 남극쪽이 좀 더 낫긴 하다. 거긴 상상하면 시원해지니까. 남다른 직업 탓인지 태권은 보잘 것 없게 느껴지는 사우나 매니저 일에도 깜찍한 교훈을 달고 퇴직을 한다. "보험 없는 삶이지만 내가 사는 삶이니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자", 잘난 부자놈들도 벗겨놓으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놈이 그 놈이고, 나이 들면 불쌍한 거 똑같고, 여기서 갑질하던 놈 저기 가선 을 되는 것도 비슷하고. 그러나 보수이기에 결코 JTBC는 안보고, 채널은 아예 삭제돼 있고 기타등등. 근데 모르겠다. 책을 읽어도 사는 게 비슷한 게 맞는 건지, 타인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있는건지. 갑질하는 그들과 다르게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종업원을 부르는 태권의 모습이 애인과 헤어지고 다시 백수가 되는 모습에 나는 왜  울적해지기만 하는건지. 남탕을 너무 오래 쳐다본 후유증인걸까. 텁텁하고 지저분한 인생살이 이야기들이 녹아있어 그런가 비위도 상하고 머릿속이 미식미식한다. 입맛이 되게 쓰다 이런 건 아닌데, 재미도 있는데, 여름밤에 읽기엔 사우나 천장 곰팡이를 들이키 듯 콤콤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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