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공포가 주는 카타르시스에 흠뻑 빠져 읽은 책 <부유하는 혼> 속에 이상의 시 오감도가 등장한다. 오감도 제10호ㅡ나비와 오감도 제1호. 황희 작가는 이 두 시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딴 것 같다.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에낙역되는비밀한통화구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결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찢어진 벽지에 붙어 죽어가는 나비는 사람이다. 사람의 몸뚱이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통하는 은밀한 통로라 부유하는 혼이 그 통화구로 육체를 먹으면 다 죽었던 이가 생생한 나비로 화해 살아간다. 시와 때, 영혼끼리의 궁합만 맞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귀신이 들리기도 한다. 빙의한다, 또는 영혼의 합일이 가능하다.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몸인 척 남의 육체를 강탈해 이승에서 살아가는 그이들을. 잃어버린 누군가의 삶을.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부유하는 혼>에는 무서운 아해들(혼)과 무서워하는 아해들(생전의 사람)과 그들과 합체하려는 3인의 아해들(빙의의 비밀을 알아내 혼을 바꿔치기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등장한다. 죽었다 살아나니 배운 적도 없는 한국어를 하고 있다는 레이. 레이의 동료이자 괴팍한 성정의 시어머니에게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하는 일본인 며느리 란코. 치매에 걸린 미스터리 작가 노모와 그녀의 딸 양희주. 살인 전적이 있는 곽새기로부터 도피 중인 의붓자매 주미와 나영. 어린 딸을 살해하고 자살해 버린 곽새기의 아내 이수인 등.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평균적인 평범함에서 벗어나버린 이들의 히스테리, 폭력, 사기, 살인, 강간 등의 범행과 난폭한 감성이 내내 어지럽고 소름끼친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이리저리 연결되며 비밀한 통화구를 파헤치는 내내 주변 기온까지 쑥 낮아지는 느낌에 으슬으슬 떨었다. 서사를 지배하고 공포를 가중하는 인물들의 핵심감정이 다름아닌 "모성애"이기에 이야기가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반신 마비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손자를 죽여버리는 란코의 시어머니나 치매 속에서 육체를 이탈하여 딸의 복수를 대신하는 양희주의 모친, 사후에도 함께하자며 딸을 목 조르는 이수인의 정신병적인 집착에 몰골이 송연해진다.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사랑, 가련한 모정, 나이듦에 대한 공포, 내 생에 대한 무책임, 도피에 대한 욕망, 부유하는 혼을 끌어들이는 각양각색의 이탈들이 서글프다. 

귀신 가라사대 "사람의 몸은 대문 없는 집"이라 한다.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 속에 파고드는 부유하는 혼들이 그냥 만들어진 이야기이기만 할까. 어쩌면 오늘 내가 지나치며 마주한 누군가의 몸에도 저쪽 세상의 누군가의 혼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오늘 내 몸의 주권을 빼앗기는 위협을 나도 모르게 당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하도록. 그에 이끌려 찾아온 영혼과 내 육체 속에서 동거하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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